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

by 김뭉치
창작의 욕구와 자기 파괴의 욕구가 다른 이름을 가진 하나라는 것이 언제나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20세기는 끔찍한 세기였고, 끔찍한 걸 너무나 많이 목도한 이들은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자살률이 높다지요? 한국 예술가들의 자살률은 아마 그보다 더 높을 겁니다. 언니들, 친구들, 동생들...... 거의 격년으로 한 사람씩을 잃었습니다. 예민해서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는 건 압니다.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해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그래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날들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 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 XX예술대학 특별 초청 강연(1996)에서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2회, 주간 문학동네 중에서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김뭉치의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이 글을 읽고 김뭉치가 궁금해졌다면 김뭉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edit_or_h/?hl=ko


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bitly.kr/PH2QwV

http://bitly.kr/tU8tzB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문학 명강 : 서양 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