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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Jul 21. 2020

21세기, 새로운 영웅의 시대

- 젠더, 인종, 그리고 슈퍼히어로

         

1. 과거의 전형적인 슈퍼히어로는 백인 중심, 남성 중심, 미국 중심의 보수적 세계관에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신화를 상징했다면, 현재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보수적 성격에 기반을 둔 단일성에서 탈피해 문화적 다양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합니다. 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유 혹은 그 원리 설명)


제가 만들고 있는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에서는 지난 3월 5일 자에 발행된 507호에서 ‘슈퍼히어로는 한국에서 어떻게 소비되는가’라는 콘셉트로 특집을 꾸린 바 있습니다. 이 특집에서 김닛코 코믹스 칼럼니스트는 슈퍼히어로물의 최근 동향을 짚으며 “백인 남성 중심의 문화였던 코믹스도 세계시장을 의식해서라도 다양성의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2대 캡틴 아메리카의 자리를 흑인인 팔콘에게 물려준 점을 떠올려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라틴아메리카계 소년인 마일스가 또 하나의 스파이더맨이 된 사례도 있었죠(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중국과의 협업을 통해 중국의 슈퍼히어로 시리즈를 선보이는 사례 등은 아무래도 최대 규모인 중국시장을 겨냥해서일 겁니다. 다만 김닛코 코믹스 칼럼니스트에 따르면 무작정 다양성만을 내세워 역효과가 난 작품도 있다고 합니다. 김닛코 코믹스 칼럼니스트는 “북미 원주민을 묘사한 『레드 울프』 같은 경우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고 말했습니다.      


2. 과거의 슈퍼히어로 영웅상과 달리 현대의 슈퍼히어로들에게 보이는 특징이 있나요? 그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좀 더 다양해졌달까요. 문화, 젠더, 인종, 계급적으로 캐릭터가 다양해졌고 그에 따라 서사도 다채로워졌지요. 과거에는 날 때부터 힘이 센 주인공이 지구를 구하는 식의 1차원적 슈퍼히어로물이 성행했다면 최근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성장과정의 서사에 주목하는 식으로요. 캐릭터들이 하나의 세계에 공존하는 ‘유니버스’ 개념도 도입됐고요. 기존 백인 남성 중심이었던 향유자군에서 탈피해야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으니 타깃군을 더욱 폭넓게 본 거죠. 아이돌 그룹의 멤버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더 많은 향유자들의 각기 다른 취향을 만족시키려면 캐릭터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도 필수불가결했을 겁니다.       


3. 젠더: 원더우먼, 블랙 위도우 등의 여성 슈퍼히어로들은 최근 들어 그 주체성이 부각된 캐릭터들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과거 여성운동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또 현재의 그들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어떤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지, 더불어 여전히 나타나는 한계점은 무엇이 있는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토르의 연인이었던 제인 포스터가 새로운 토르가 되고 발키리가 왕이 되는 시대입니다. 미투 운동 이후 여성 인권과 평등이 전보다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에 PC함과 여성 향유자 모두를 잡기 위해서는 여성 캐릭터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겠지요. 영화 <캡틴 마블>은 ‘페미 영화’라며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는데요. 아직까지 논란은 있지만 더 많은 여성 히어로와 여성 서사를 보고 싶어 하는 향유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합니다. 코믹스와 영화가 시대를 반영하기 시작한 거죠.

원더우먼의 변천 과정이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과 놀라울 만큼 일치한다고 말하는 책이 있습니다. 질 르포어는 『원더우먼 히스토리』에서 성 참정권이 당연하지 않던 과거부터 낙태의 온전한 자유를 요구하는 현재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원더우먼을 여성인권의 바로미터로 재조명하는데요. 이처럼 여성 히어로의 역사는 우리 여성운동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그들의 코스튬 변화 역시 그 시대의 구성원들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맥락 없는 여성의 신체 노출이나 선정적 장면이 여전히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4. 인종: 과거 흑인과 같은 유색인종이 슈퍼히어로가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등장하더라도 팔콘처럼 불완전한 조력자의 형태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재조명된 흑인 슈퍼히어로 블랙 팬서의 경우, 어떤 측면에서 보면 다른 슈퍼히어로들보다 계급이나 그 능력, 기타 사항들이 매우 우수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과거 흑인 인권운동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기도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말컴X의 인권운동도 설명 가능하시면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그럼에도 나타나는 한계점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흑인 미국 영웅을 내세운 <블랙 팬서>는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세 개의 상을 받으며 비평가들의 눈길도 사로잡았습니다. 흑인 감독 라이언 쿠글러가 만들었고 거의 모든 캐릭터가 흑인인 점에 눈에 띕니다. Black Panther를 우리말로 바꾸면 흑표(黑豹) 정도가 될 텐데요. 이러한 이미지는 곧 그 자체로 강인함을 선점합니다.

특히 미국문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말콤 X와 흑표당이 떠오를 텐데요. 흑표당은 "흑인의 강인함과 존엄을 표현하기에는 검은 표범이 가장 알맞다"는 주장 아래 조직된 흑인 무장 조직입니다. 흑표당은 블랙 파워를 지원하며 동시에 흑인들의 자기 방어를 주장했는데, 비폭력주의로 대표되는 마틴 루터 킹과 달리 비폭력주의의 무력함을 강조한 말콤 X의 이론이 흑표당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결국 <블랙 팬서>는 영리하게도 오랜 역사를 간직해 온 ‘흑표’라는 강인한 이미지에 미국 영웅 이미지를 결부시킴으로써 ‘이상적’ 흑인상을 구현한 겁니다. 다만 반미국적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흑표당과는 달리 미국 영웅인 <블랙 팬서>의 모습은 그만큼의 한계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최근 히어로들의 인종은 더욱 다양해지고 있는데요. 한국계 소년인 아마데우스 조가 새로운 헐크로 등장할 영화도 기다려집니다.      


5. 계급: 최근 새로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들 – 예를 들어 데드풀이나 앤트맨, (뉴)스파이더맨 등 – 은 과거에 나타난 고위층 슈퍼히어로들과는 달리 사회적 계층이 낮거나 상대적으로 평범합니다. (슈퍼맨은 외계인, 블랙 팬서는 왕족,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상류층) 이러한 낮은 사회 계급 출신 슈퍼히어로들의 등장이 오히려 대중의 공감을 얻고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인데, 이에 관련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히어로물에서 계급 문제는 상대적으로 납작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히어로물에 계급 이슈가 들어가면 영화에 조금의 심도가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걸 진지하게 끌고 간다면 팝콘무비로서의 오락성은 확보할 수 없겠지요.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히어로라고 한다면 단연 ‘스파이더맨’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영화에선 아이언맨 덕택에 고급 슈트를 입게 되고 또 다른 세계로 편입 아닌 편입을 맞게 됩니다. 다크한 히어로물이 아니라면 계급 문제를 뚝심 있게 끌고 가긴 어려울 겁니다. 논란은 있지만 최근 DC가 <조커>에서 보여준 행보(가난, 차별, 계급 문제 등)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긴 합니다.       


6. 다소 추상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슈퍼히어로가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요? 슈퍼히어로는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왜 우리는 슈퍼히어로 컨텐츠, 혹은 슈퍼히어로 그 자체를 주목해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영웅이 없기 때문에 스크린과 페이퍼 속에서라도 영웅을 보고 싶은 게 아닐까요? 사실 슈퍼 히어로물은 전쟁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정치적이고 미국에서 태동했기에 미국적인 장르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히어로물에선 그 외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어로물 자체도 시대와 함께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설사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재미있다면, 그걸로 오케이 아닐까요? 콘텐츠의 제1목적은 아무래도 ‘재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웃음)     


7. 저의 경우, 앞으로도 슈퍼히어로 콘텐츠는 우리 사회 내에서 발전해 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슈퍼히어로 컨텐츠가 어떤 방식으로, 또 어떤 형태로 출현할까요? 지금까지 다룬 새로운 슈퍼히어로 영웅상처럼 사회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사회를 바꿔가는 역할을 수행할까요? 이에 대한 간단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프로토타입 형태의 슈퍼맨이 등장한 것이 1938년입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히어로물은 줄곧 자리를 지키고 있죠. 더 아래로 내려가 보면 ‘신화’가 떠오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언제나 영웅 서사를 소비해왔어요.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거겠지요. 그래서 앞으로도 히어로물 콘텐츠는 계속 진화, 변형되며 자리를 지킬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마블의 성공 사례를 보면 캐릭터가 대중과 소통하는 걸 중시하는 것 같아요. 대중문화의 전달자로서 히어로는 계속 옷을 바꿔 입으며 우리 곁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할리우드 입장에선 슈퍼 히어로물을 끊임없이 생산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소비행태가 고착되어 있는 이 장르를 왜 버리겠어요?(웃음)



인터뷰이 소개

김미향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장·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저서로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넥서스BOOK)가 있다. 문화콘텐츠학 석사 과정.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98


위 텍스트는 오승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기자와의 서면 인터뷰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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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http://bitly.kr/PH2Qw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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