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착각』
그저 좋았다, 라고 쓰기엔 이 책 『오늘의 착각』과 허수경 시인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치열하게 자신의 삶과 시를 탐구한 시인에게 좋았다, 는 말이 물정 없이 들릴까 싶어서다. 뼈를 드러내고 누운, 처연하게 한낮의 볕을 감내하고 있을 유적의 발굴지 앞에 선 느낌이 이러할까. 쓸쓸하고 아름다워서, 그게 꼭 우리들 삶 같아서 나는 시인의 글 앞에서 방향을 잃고 만다.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방향을 잃는 것"도 "쓴다"는 것도 결국 "인간의 일이다". 삶이란 "방향을 가리키는 전치사와 후치사 사이에 있다가" 가는 것. " 착각은 우리 앞에 옆에 뒤에 그리고 언제나 있다." 그리고 이 여름, 역시 시인의 말처럼 "이 착각이 나를 아리게 살게 할 것이니 좋은 일, 아닌가."
『오늘의 착각』 속엔 페소아와 하이네와 허수경이 섞여 녹아든다
하녀들은 빨래를 희게 하고,
풀밭 속에 이리저리 뛰네.
물레바퀴는 다이아몬드를 흩뿌리네.
나는 듣는다 먼 중얼거림을.
오래된 회색의 탑 옆에
작은 초소는 서 있고
붉은 치마를 입은 젊은이는
그곳에서 위로 아래로 걷는다.
그는 소총놀이를 하네.
태양의 붉음 속에서 번쩍이는 소총.
그는 받들어총을 하고 어깨에 메네……
나는, 그가 나를 쏘아 죽였음, 했네.
- p. 37, 하이네의 연시 「귀향」 중 일부
언젠가 내 속에서 모든 예술이 하나가 되어 내가 천재적인 일필에 이른다면 나는 잠에 대한 칭송을 쓸 것이다. 나는 삶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쾌락을 알지 못한다. 삶과 영혼으로부터 완전히 꺼져버림, 모든 존재와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남, 회상도 착각도 없는 밤, 어떤 과거도 아직 미래를 가지지 못함,
- 페소아, 『불안의 서』 부분
소녀와 가난과 착각과 바다가 뒤섞인다.
묘지와 묘지 사이에서 빨래를 하던 열 살가량의 한 소녀가 날아가는 새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새들 가운데 하나가 대열을 이탈하고 잠시 아래쪽으로 날아왔다. 그러고는 소녀의 주위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 순간 소녀의 눈과 새의 눈이 마주쳤다. 새는 곧 대열로 합류했고 소녀는 하던 빨래를 계속했다. 날아가는 생명과 무덤 사이에서 사는 한 생명의 눈 마주침. 그 둘 사이에서 거대도시의 탁하고 숨막히는 공기는 잠시 맑아졌다. 그 맑음을 보았다고 말하는 필리핀 여행자는 문명의 멜랑콜리 속에서 잠시, 착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착각을 잠자는 방의 전등에 걸어두었다.
- p. 13
화어는 참새우, 달강어, 북어, 학꽁치, 붉은메기 등을 말려 꼬리를 노란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인 음식이다. 지금도 귀하고 값비싼 화어를 어찌어찌해서 어린 시절에 먹어보는 영화를 나는 누렸다. 짜고 너무나 달아서 딱히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먹거리에다 예술적인 감각을 더하는 이들이 이 지상에 있다는 걸 나는 그때 눈치챘다. 그때는 가난한 시절이었다. 화어를 만든 이가 한 인간의 예술적인 포만감을 위해 그리 귀한 시간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나는 한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상의 물질적인 부를 뜨악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면서 가난이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온전히 다 빼앗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어를 만든 이는 수산가공품의 부가가치를 염두에 두기는 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다 곁에서 보내는 새벽과 아침, 오후와 저녁, 그리고 밤. 그 생애 동안 바다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벼려지고 벼려지다가 마침내 화어를 만들자, 작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 p. 16
나는 모빌을 올려다보며 잠이 들곤 했고, 잠을 설치거나 꼬박 눈을 붙이지 못하기도 했고, 책을 읽고 메모를 하기도 했다. 해가 뜨고 지고 살았던 그날의 날들, 행운의 날들. 그 시간 동안 물고기 모빌이 있는 한 내 침실은 가상의 바다였다. 그 바다는 휴식처였고 불면의 해풍이었고 심해 속에서 부유하는 그림자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관념적인 싸움이 일어난 싸움터이기도 했다. 그 사이 사이, 나는 바닷가를 다녀오기도 했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근처의 식당으로 가서 생선국을 먹고는 했다. 배를 타고 어딘가를 건너가기도 했다.
- p. 19
책장을 덮으며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다"는 시인의 말에 적잖은 위로를 얻는다. 당신의 영혼도 내 몸 "어디인가에 남아 있다". "아름다움을 가장한 죽음, 아니 시인이 아름다움으로 착각한 죽음은 언제나" 내게도 "가까이에 있었다". "경계에 대한 원경험. 착각에서 착란으로 넘어가면서 시가 쓰이던 시 역사의 그 수많은 순간. 무섭고도 아득하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시의 순간들"은 극단적이다.
"이곳에 있는데 이곳에 없다는 느낌.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p. 28「김행숙과 하이네의 착각, 혹은 다람쥐의 착각」 중에서) "언젠가는" 나"를 잃어버릴 거라는 이 확연한 사실을" 여전히 착각으로 위장하여 저녁 어둠에 놓아두는 일은 괜찮을까. 이 균열을 계속 견뎌낼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세계 앞에 서 있는 불안"(p. 103). 이 거대한 불안이 낳은 착각들에 대해 시인은 120쪽에 걸쳐 노래한다. 타인이 되어 보고 과거가 되어 보고 미래가 되어 보라. 폐허가 된 도시에도 태양은 뜨고 그곳에 서 있는 우리들의 그림자는 아주 아주 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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