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레보스키>(원제 : The Big Lebowski)
코엔 형제는 시나리오 천재다. 캐릭터들은 독특하고 대사엔 냉소와 위트가 가득하다. 주인공들은 늘 어떤 돈을 따라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해에 오해가 더해지고 오해와 오해가 껴안다가 오해와 오해가 섞여 들어 결국 스토리 전체적으로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 한 명은 씁쓸한 행복을 맞기도 하기 때문에 완전한 새드엔딩으로 보기는 어렵다.
화이트 러시안과 볼링으로 남는 코엔 형제의 1998년 작 <위대한 레보스키> 역시 그 흐름을 따라간다. 1990년대 초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를 기습 침공한 뒤 당시 조지 H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이 군사작전을 준비하던 시절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주인공 제프 레보스키(제프 브리지스 분)는 본명보다 '듀드(Dude, 놈·인마)'로 불리길 좋아하는 볼링 성애자다. 직업은 무직. 다른 건 다 포기하고 좋아하는 볼링과 술, 우유에만 돈을 쓰며 살아간다(이쯤 하면 듀드가 부러운 건 왜...? 히피 듀드 넘나 멋진 것!). 그의 곁에는 원칙주의자인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 출신의 월터(존 굿맨 분), 조용하지만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도니(스티브 부세미 분)가 있어 셋은 언제나 함께 볼링을 친다.
어느 날, 마트에서 우유를 사고 0.68달러짜리 수표책을 쓰고 돌아오니 괴한들이 집에 들이닥쳐 있다. 그중 한 놈은 듀드의 얼굴을 변기 물에 처박으며 와이프 버니가 빚진 돈을 내놓으라 하고 '우'라는 놈은 방안을 환히 비추던 양탄자에 질질 오줌을 싸제낀다. 그러나 우리의 듀드에겐 와이프가 없었으니, 듀드는 괴한들에게 동명이인을 찾아가라 말한다.
듀드 역시 동명이인 빅 레보스키(데이비드 허들스톤 분)를 찾아가 양탄자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본인 피셜 자수성가한 레보스키는 듀드를 사회 부적응자 취급한다. 듀드는 아무 말 없이 돌아 나와 양탄자 하나를 가지고 간다(왜냐하면 지금은 더러워진 그의 양탄자는 방안을 환히 비춰주었기 때문이다. 알라딘에게 하늘을 나는 양탄자가 있었다면 듀드에겐 방안을 환히 비춰주던 양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베드에 앉아 초록색 패디큐어를 바르고 있던 문제의 버니와 맞닥뜨린다. 버니는 1000달러, 100달러만 주면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해주겠다고 말한다.
며칠 뒤 듀드를 야멸차게 대했던 레보스키가 버니가 납치됐다며 납치범들에게 100만 달러를 전달할 전달책이 되어 달라고 말한다. 그러면 대가로 2만 달러를 주겠다는 거다. 2만 달러 받고 100만 달러 주려는데 월터가 100만 달러 가방 대신 본인 속옷이 들어 있는 가방을 건넨다. 그런데 100만 달러가 들어 있는 가방을 태운 차는 래리 샐러스라는 고등학생이 훔쳐 가고, 불쌍한 듀드는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로 2만 달러도 받지 못하고 괴한들과 마멋에게 거세당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때 레보스키의 딸 마우드(줄리앤 무어)는 100만 달러를 찾아주면 사례비로 10%를 주겠다고 하고 듀드는 그녀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 와중에 재키 트리혼 역시 버니가 본인에게 진 빚이 있다며 100만 달러를 찾아주면 역시 사례비로 10%를 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듀드는 여기저기 사례금 주겠다는 곳에 불려 다니다가 사건의 전모에 가 닿게 된다.
[스포일러 구간]
알고 보니 빈털터리였던 레보스키가 재단의 100만 달러를 횡령해 본인 소유로 만들고자 했던 것. 그에게 버니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실제 버니는 납치극 따윈 모르고 말없이 플로리다에 있던 친구 집에 갔다 왔던 게 다다. 그 사이에 듀드는 아이를 원하는 마우드와 관계도 가지고(말 그대로 아이만 가지고 싶었던 마우드는 절대 양육권을 주장하지 않을 것 같은 아이의 아버지로 듀드를 택한다) 내레이터와 맥주도 마신다. 100만 달러를 얻을 생각으로 여자 친구의 발가락까지 자른 멤버가 있는 신나치주의자 팸과 듀드 무리(사실은 월터 혼자라고 해야 할까)와의 한 판 싸움이 벌어지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이를 바라보던 도니가 심장마비로 전사한다.
이 영화에서 듀드가 자주 마시는 ‘화이트 러시안’은 보드카에 커피 리큐어를 섞는 전통적인 칵테일 ‘블랙 러시안’을 응용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대학 시절 즐겨 마셨던 깔루아 밀크 생각이 났다. ‘화이트 러시안’에 사용할 수 있는 커피 리큐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 깔루아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레보스키>는 2014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의해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미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아 미국 국립영화 등기부에 선정, 보존되었다. 로저 디킨스의 섬세한 촬영이 눈에 띈다. 1998년 영화로,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작품이지만 전혀 낡지 않았다. 스토리도, 패션도, 미술도, 연출도, 촬영도 모두 그렇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볼링이다. 본격 볼링 예찬 영화, 볼링 치고 싶게 만드는 영화, 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볼링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주인공들은 24시 볼링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흡사 뮤지컬 영화처럼 공을 들인 볼링 신도 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인 듀드가 스트라이크를 치는 신은 없다. 끝내 도니의 뼛가루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듀드 운명의 복선일까. 몇 개의 핀을 맞춰 봐도, 볼링공처럼 되돌아오는 총체적 난국의 형상화일까. 어쩌면 그 둘 모두일 수도 있겠다. 사실 레보스키(부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빈 깡통이었던 레보스키 말고 우리들의 히피 듀드)가 아닌 우리들도 모두 '듀드'라 불릴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 180달러라는 유골함 가격에 놀라 커피캔 안에 친구의 뼛가루를 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엇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게 우리들 삶이니까.
또 코엔 형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스토리 기법이 등장한다. 코엔 형제는 늘 주요 사건과 무관한 듯 보이는 또 다른 축의 사건을 배치하여 두 사건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데,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듀드의 스토리 외에 중요한 사건으로는 배경이 되는 걸프전을 들 수 있다. 이쯤 하면 왜 이 영화가 미국 국립영화 등기부에 선정, 보존되는 영화인지 알 수 있다. 영화도 제목 따라간다고 <위대한 레보스키>는 역시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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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