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7일 월요일
구찌 오너가에 갔다. 그들은 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집 가장은 실크 셔츠에 블랙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셔츠 단추는 두세 개 정도 풀러져 있었고 셔츠 아래로 탄탄한 근육이 엿보였다. 그의 얼굴 위쪽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가면을 쓴 오페라의 유령이 하관만 보이는 것처럼 그의 모습도 그렇게 보였다. 그림자 처리된 얼굴 위쪽이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곳의 거대한 대리석 테이블에 신문지를 펼쳐 두고 아빠는 십자말 풀이를 하고 있었다. 블랙 원피스에 화이트 러플이 달린, 역시나 구찌의 원피스를 입고 모 배우가 등장했다. 그는 역시 마블링된 쟁반에 정물 같은 과일들을 들고 와 아빠 앞에 놓아두었다. 나는 그곳에서 어떤 롤이 있다기보다는 카메라아이처럼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장소가 옮겨졌다. 우리는 거대한 그 저택을 벗어나 이재민 수용소 같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몸을 새우처럼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대저택의 대리석 바닥은 온데간데없고 누런 장판 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나는 이 꿈을 잊지 않으려 잠깐잠깐 깰 때마다 구찌, 아빠, 십자말 풀이…라고 되뇌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되풀이하다 보니 아침이 밝았고 세 시간 정도 단잠을 이룬 것 같았다.
2020년 7월 28일 화요일
네일숍에 갔다. 처음 보는 네일숍 쌤이 인생의 바닥까지 가 봤냐고 바닥 청소를 하며 물었다. 흰 티에 질끈 묶은 머리칼을 하고 그는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바닥을 아냐고, 바닥을! 쌤의 볼멘소리에 나는 기가 죽어서 쭈글이처럼 쭈글쭈글해졌다.
새벽 네 시에 깨어 이 꿈을 잊지 말아야지 생각한 뒤 다시 잠들었다.
곧 일어날 시각이었다.
2020년 7월 29일 수요일
1.
회사에 있었습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퇴근 후 백화점에 갔습니다. 열심히 쇼핑을 했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백화점 지하에 있는 식당엘 갔습니다. 거기서 동료들을 또 만났습니다. 중식을 먹었던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백화점과 연결되는 지하철 통로가 있었는데 밥을 다 먹고 지상으로 향하는 그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때에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다시 회사로 출근했고 팀원과 밥을 먹었고 미팅을 했으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2.
옅은 갈색의 흙을 밟았다. 눈앞에는 에펠탑의 축소판 같은 어떤 탑이 있었다.
3.
세 명의 아가들이 있었다. 두 명은 남아, 한 명은 여아였다. 여아는 대뜸 일어나서 잘도 걸었다. 다른 남아들은 걷질 못했다.
- 역시 여자아이라 그런지 일찍 잘 걷는다!
남아의 엄마들이 부러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여아의 엄마였던 모양인지 나는 머쓱해하며 말했다.
- 빨리 걷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냐. 나도 어릴 때 돌도 되기 전에 걸었지만 너무 빨리 걸으면 다리 성장이 잘 안 된 채 걷는 거라 올바른 걸음걸이를 못 익히는 경우도 있대. 그래서 그런지 나도 어릴 때 얼마나 자주 넘어졌는지 몰라. 지금도 마찬가지고.
내 딸처럼 보이는 그 아이는 아장아장 잘도 걸어서 현관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2020년 7월 30일 목요일
1.
모자를 쓴 남자들이 일렬로 앉아 있었다. 대개 50대 또는 60대로 보였다. 그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처럼 과장된 형태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어르신도 보였다. 그는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채였는데 양손으로 빨간 실을 늘어뜨려 코 한가운데를 지나가게 하고 있었다.
2.
대학로의 어떤 카페에 앉아 있었다. 예전에 함께 독서모임을 했던 언니, 오빠들과 함께였다.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방탈출 카페의 대기실이었다. 진초록의 푹신한 가죽 소파에 우리는 저마다 앉아 있었다. 테이블은 진갈색의 우드였고 전체적인 카페의 구조는 한옥카페의 그것이었다.
모든 구성원들이 한 번씩 방탈출을 경험한 뒤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갔다. 대청마루 같은 곳을 지나 이불을 켜켜이 쌓아둔 안채로 들어갔다. 그곳에선 지령이 늘어진 테이프처럼 나오고 있었는데 귀가 안 좋은 나는 제대로 알아듣질 못했다. 몇 번이나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찰나 진동음이 울리며 메시지가 들어왔다. 어머니께 메시지가 온 것이다. 나는 지령에 집중하기 위해 다시 한번 애썼지만 이미 집중력은 사라진 터라 어쩔 수 없이 운영진을 불렀다.
두 번째 문제를 풀기 위해 이불속을 뒤져 보았다. 해답은 없었다. 그때 다시 한번 진동음이 울렸다. 어머니가 문자를 읽었으면 왜 답을 안 하냐고 힐난하는 메시지를 보내셨다. 아팠다고 할까, 생각했지만 그러면 집에 찾아와 간호를 해주시겠다고 할 것 같아 그만뒀다. 배터리가 닳아서 문자를 못 보냈다고도 할까 떠올리고 "어머니, 죄송해요. 배터리가 없어서"까지 쓰다가 또 그만뒀다. 어쨌든 지금은 방탈출이 목표인 것이다. 이렇게 하다가는 오늘 날을 꼬박 새울지도 몰랐다.
세 번째 문제에 이르러서야 나는 가까스로 해답을 찾아냈다. 두 번째 문제 때까진 사람들이 없었지만 세 번째 문제에 이르러선 나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약 그릇과 약을 빻는 도구, 소스가 올려진 접시, 그리고 또 하나의 백자의 짝을 맞춘 뒤에서야 환호성을 지를 수 있었다.
방에서 탈출해 다시 나를 기다리는 멤버들이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맨 마지막이라 그들을 기다리게 하는 게 못내 억울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다가가 어머니께 이런 문자들이 왔다고 보여줬다.
3.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나비를 무서워하는 상태를 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나비가 전혀 무섭지 않았어. 나는 상태가 아니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오늘 꿈을 통해 나는 나비도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승용차의 뒷좌석 안에서 나는 겁에 질린 채 웅크려 있었어. 양쪽 차창 밖에선 나비 떼들이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었지. 나비들은 이미 차장 양쪽에 잔뜩 붙어 있었지만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말았어. 살짝 열린 차창 틈 사이로 나비가 들어왔어. 한 마리, 두 마리… 나비 한 마리가 내가 입은 티셔츠 위에 붙었어. 가슴께였지, 아마. 나는 제발 얼굴에만 붙지 말라는 듯이 양손으로 귀와 얼굴을 감쌌어. 창문을 완전히 닫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나비들은 일제히 날아올랐고…
2020년 7월 31일 금요일
우리 집은 꼭 괴짜가 거주하는 집 같았다. 각종 잡동사니가 나만 아는 질서로 배열돼 있었다. 집에는 노래방 기계까지 갖추었다. 잠에서 깬 나는 집에 노래방 시스템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도원경의 <다시 사랑한다면>이라는 노랠 너무 부르고 싶었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망설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오른쪽 꼭짓점에 노래방 책자가 세 권 배열돼 있는 걸 봤다. 그건 세로로 놓여 있다거나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닌 가로로 ‘배열’돼 있었다.
<다시 사랑한다면>은 어떤 책자에는 있고 어떤 책자에는 없었다. 355로 나와 있는 번호를 눌러야 그 노래가 재생되는데 이상하게 355를 누르려고 할 때마다 다른 번호를 누르게 됐다. 결국엔 355를 누르고야 만 나는 <다시 사랑한다면>을 부를 수 있었지만 옆집 남자가 소음이라고 뭐라 할까 봐 정말 작게 노랠 불렀다. 남편에게 이렇게 작게 부를 거면 내가 노래방 기계를 왜 산 건지, 내가 노래를 불러도 다른 이웃이 듣지 못하는 기능은 없는 건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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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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