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만 지키면 돼

by 김뭉치

소문 자자한 한의원에 다녀왔다. 지독히 더웠던 여름을 보내며 부쩍 체력이 달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의사는 양손 번갈아 찬찬히 맥을 짚어보고 수차례 질문을 던졌다. 원래 나의 얼굴빛이 흰 편인지 검은 편인지, 요즘 평소보다 더 입맛이 당기는 것 같은지, 명치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이 자주 있는지, 땀은 얼마나 흘리는지 등등. 마지막 질문은 이거였다. “여기 왜 왔어요?”


한의사는 여기는 대개 중증·만성 환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며 나더러는 건강하다고 했다. 과로 때문에 리듬이 망가지면 염증이 생기는데, 그건 당장 약을 먹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서 한의사는 “리듬 좀 지키며 사세요!”라고 일갈했다.


그렇다. 한의사 말대로 계속 주먹으로 아프게 몸을 때린 뒤 거기에 연고를 바르고 소염제, 진통제를 먹어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때뿐이지 또 때리면 몸은 아픈 게 당연하다. 그 당연한 이치를, 나는 그날 눈 맑은 한의사와의 대화에서 깨달았다.


한의사는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면 앞으로도 계속 건강할 테고 나의 경우, 뭐든지 억지로 하면 안 되는 체질이라고 했다.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로이, 골고루 먹되 먹기 싫어지면 안 먹으면 그뿐이라고. 그게 커피든 녹차든 당기면 먹으라고 했다. 한의사의 이 지침은 생활 전반에 적용되지 않을까. 그게 무엇이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니, 고민의 실타래가 단번에 풀렸다.


굳이 안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몸을 보한다는 한 달분의 한약을 주문했다. 며칠 뒤 도착한 한약 박스를 열어보니 한약이라면 늘 따라 붙는 ‘가려야 하는 음식’란에 ‘없음’으로 표시돼 있는 게 아닌가. 절로 웃음이 났다. 한의원이 아니라 지리산 깊은 곳 어느 골짜기에 있을 법한 철학관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질문하고 답을 구해 하산한 느낌. 이제, 리듬 지키며 살 일만 남았다.



2020년 11월 5일 <조선일보> '일사일언' 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573844?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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