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래시계 요양원」, 『브루노 슐츠 작품집』 중에서
새벽 5시, 이른 햇살로 반짝이는 시간에 우리 집은 벌써 열정적이지만 조용한 빛에 싸여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엄숙한 시간, 차양을 내린 반쯤 어두운 방이 여전히 잠자는 사람들의 고른 숨소리로 채워져 있는 시간에 집의 정면은 이른 아침의 조용한 아지랑이 속에 마치 그 표면이 행복하게 잠자는 눈꺼풀로 장식되어 있기라도 한 듯 햇빛에 목욕을 했다. 그렇게 이 이른 시간의 침묵 속에서 집은 찬란한 햇빛 속에 녹아드는 졸린 얼굴로 격렬한 꿈에 조금씩 몸을 씰룩거리며 아침의 첫 번째 불꽃을 흡수했다. 집 앞 아카시아 그림자는 헛되이 깊은 황금빛 잠 속을 뚫으려고 노력하면서 뜨거운 표면을 따라 파도치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리넨 차양이 한 쪽씩 아침의 열기를 흡수했고, 한없는 불꽃 속에서 숨 막혀 했다.
그 이른 시간에 아버지는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어 책과 장부를 짊어지고 건물 1층에 있는 가게를 열기 위해 내려왔다. 아버지는 잠시 동안 반쯤 감은 눈으로 태양의 강력한 맹공격을 견디면서 문가에 가만히 서 있었다. 집의 햇빛에 젖은 외벽이 아버지를 더없이 즐겁게 수평을 이룬 부드러운 표면으로 가만히 끌어당겼다. 아버지는 잠시 납작해져서 건물 정면의 일부가 되어 쭉 뻗은, 떨리는 당신의 따뜻한 손이 금빛 장식 벽토 속으로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많은 다른 아버지들이 새벽 5시에 층계의 마지막 계단에 서서 집의 정면에 영원히 스며들었는가? 얼마나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게, 한 손은 현관문 손잡이에 대고 얼굴은 평행하고 행복한 고랑으로 녹아 버린 채 자기 집 현관의 수위가 되어, 넓게 낸 창문에 납작하게 부조가 되었는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들들이 훗날, 이제는 영원히 집 현관의 보편적인 미소의 일부가 되어 버린 부모를 추억하며 그 손가락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어루만질 것이다.) 그러나 곧 아버지는 몸을 비틀어 빠져나와 3차원의 입체를 되찾고 다시 인간이 되어 금속 테두리를 두른 가게 문을 걸쇠와 빗장과 자물쇠에서 해방시켰다.
아버지가 그 무거운 쇠문을 열고 있는 동안 투덜거리는 어스름은 문에서 한 걸음 물러나 몇 치 더 깊이 움직여 위치를 바꾸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 낮게 웅크렸다. 아침의 신선함은 보도에 깐 차가운 갓돌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라 자그맣게 떨고 있는 한 줄기 바람에 섞여 문지방 위에 수줍은 듯 올라섰다. 가게 안에서는 지난 많은 낮과 밤의 어둠이 아직 뜯지 않은 옷감 뭉치 속에 잠복해 있다가 스스로 겹겹으로 정리되고 가게의 가장 중심인 창고 안에서 소진되어 자연스레 포화된 채 눈에 띄지 않게 흩어져서 둔하고 어렴풋하게 보이는 옷감의 주요 질료로 변해 버렸다.
아버지는 세워 놓은 옷감 뭉치를 따라 애무하듯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 체비엇 양털과 노끈의 높은 벽을 따라 걸었다. 아버지의 손길 아래 언제나 질서를 깨고 넘어질 준비가 되어 있던, 줄지어 선 눈먼 토르소들은 얌전해졌고 옷감의 위계질서와 우선권에 따라 늘어섰다.
아버지에게 우리 가게는 영원한 번민과 고통의 장소였다. 아버지의 손에 있었던 이 피조물들은 그것이 성장하던 몇 년간, 날이 갈수록 더 거세게 반항하며 올라왔고 끝내 웃자라 버렸다. 아버지에게 가게는 거대하고도 동시에 숭엄한, 감당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이 되어 버렸다. 그 거대한 요구 앞에서 아버지는 공포에 질렸다. 아버지의 삶조차 그 무섭게 확장되는 범위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그 위대한 기업 경영의 가장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점원들의 경솔함과 바보 같고 태평한 낙관주의, 농담과 부주의한 속임수를 보며 절망했다. 씁쓸하게 빈정거리는 기분으로 아버지는 어떤 걱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련의 얼굴들과 아무 생각 없는 이마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회의의 가장 작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 그 의심 없는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 '죽은 계절', 「모래시계 요양원」, 『브루노 슐츠 작품집』, pp. 292~294
점원들은 옷감 뭉치 위에서 공중제비를 하고 선반 위에 직물의 텐트를 던져 올리며 두꺼운 커튼 천을 흔들어 댔다. 그들은 옷감을 풀어내고 단단히 말아 놓았던 부드러운 고대의 어둠을 풀어 주었다. 오랫동안 팔리지 않고 처박혀 있던 펠트 천으로 된 어스름은 이제 자유로워져서 천장 아래의 공간을 다른 시간의 냄새, 오래전의 시원한 가을날 동안 수많은 층층으로 참을성 있게 배열되어 있던 지나간 날들의 향기로 채웠다. 눈먼 나방들이 어두워진 공기 중으로 흩어졌고, 깃털과 모직물의 보풀이 나방을 따라 가게 안을 온통 휘저었으며, 깊은 향, 가을날과도 같은 끝손질의 냄새가 피륙과 공단의 이 어두운 야영지를 채웠다. 그 야영지에서 소풍을 즐기며 점원들은 장난칠 궁리를 했다. 동료의 손을 빌려 그들은 짙고 차가운 옷감을 자기 몸에 귀까지 단단히 감아 올린 다음 옷감 뭉치 더미 아래 행복하게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줄지어 놓았다. - 자신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란 척 눈을 굴리는, 미라와도 같은 살아 있는 옷감 뭉치들.
- '죽은 계절', 「모래시계 요양원」, 『브루노 슐츠 작품집』, p. 298
여름에 가게 뒤편은 뜰에서 자라는 갈대 때문에 어두웠다. 뒤뜰을 내려다보는 창고의 창문은 나뭇잎의 움직임과 고동치는 그 반영에 파묻힌 잠수함처럼 온통 녹색에 무지갯빛이 되었다. 파리들은 그 어두컴컴한 긴 오후에 그곳에서 단조롭게 윙윙거렸다. 그들은 아버지의 달콤한 포도주에서 생겨난 괴물 같은 표본이었고, 길고 단조로운 전설 속에 날마다 밤마다 자신들의 저주받은 운명을 슬퍼하는 털 난 은둔자들이었다. 근친상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부자연스러운 표본에 많이 일어나는 예상외의 돌연변이를 제멋대로 일으키곤 하는 이 파리들은 타락하여 가장 무거운 거인들, 깊고 우울한 윙윙 소리를 만들어 내는 베테랑의 우수한 종족이 되어 버렸다. 늦여름이 되면서 어떤 표본들은 죽은 후에 쓸모없는 날개를 달고 알에서 깨어 나왔다. 그것들은 침묵한 채 목소리를 잃고 그들 종족의 마지막 일원으로서 거대한 푸른색 딱정벌레와 닮은 모습으로, 그리고 바쁘지만 무익한 임무를 띠고 녹색 창틀을 아래 위로 내달리다가 슬픈 삶을 마쳤다.
- '죽은 계절', 「모래시계 요양원」, 『브루노 슐츠 작품집』, p. 299
여기서 묘사된 사건의 대부분은 여름철의 정신 이상, 한여름의 반현실성, 죽은 계절의 경계를 따라 무책임하게 흐르는 가장자리 시간으로 인해 손상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죽은 계절', 「모래시계 요양원」, 『브루노 슐츠 작품집』, p. 302
가게 문의 캔버스 천으로 된 차양이 맹렬하게 펄럭거렸고 오후의 더위는 햇빛에 젖은 평원 위로 몇십 킬로미터에 걸쳐 드리워져 그 아래의 먼 세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었으며, 반쯤 어스름이 내린 가게 안의 어두운 천장 아래 아버지는 필사적인 지그재그를 그리는 비행에 점점 더 단단히 걸려들어 절망적으로 돌고 또 돌았다.
- '죽은 계절', 「모래시계 요양원」, 『브루노 슐츠 작품집』, p. 303
아버지는 일에 집중하는 척 책상에 앉아 검게 흩어진 별들과 잉크 얼룩, 당신의 환상 속에 맴도는 가느다란 선들, 창문 밖의 위대한 여름밤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어둠의 분자들을 편지 가장자리에 표시하고 있었다. 그동안 밤은 둥근 등잔 아래 말불버섯처럼 그림자의 소우주가 되어 흩어졌다. 안경에 등잔불이 반사되어 아버지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별과 먼지 얼룩의 어두운 은하수가 흐르는 종이의 흰빛을 쳐다보며 귀를 기울이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 '죽은 계절', 「모래시계 요양원」, 『브루노 슐츠 작품집』, p.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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