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문장들

- 『브루노 슐츠 작품집』 중에서

by 김뭉치

바퀴는 달콤한 향을 풍기는 침엽수림 위에서 부드럽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잠들었다. 시간은 가는 길에 낯선 마디와 축약을 만들며 아무도 모르게 흘러갔다. 어둠은 뚫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둥근 천장이 있는 넓은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어둡고 따뜻하고, 새벽에 오븐이 아직 차가울 때의 오래되고 텅 빈 빵집이나 혹은 어둠 속에서 버려진 욕조와 대야들이 점점 식어 가고 수도꼭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침묵에 박자를 맞추는 깊은 밤의 터키식 목욕탕 같았다.


느릿느릿하게 의식이 없는 채로 나는 별이 가득한 밤의 산들바람이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 감긴 내 눈 위를 쓸고 지나가는 동안 계속 헤엄치고 또 헤엄쳤다. 밤의 호흡은 고르고 순수했다. 마치 투명한 커튼을 들어 올려 드러낸 것처럼 별들이 가끔씩 잠자는 나를 바라보기 위해 나타났다. 감긴 눈꺼풀 아래로 나는 촛불이 밝혀진 방, 촛불의 빛이 금빛 선과 소용돌이 장식 무늬를 드리우고 있는 방을 보았다.

- '아버지, 소방대에 입대하다', 「모래시계 요양원」, 『브루노 슐츠 작품집』, pp. 278~279


아버지는 불빛에 갑옷을 번쩍이며 돌아섰다. 우리에게 말없이 경례를 하고 팔을 벌린 채 유성처럼 빛나면서 아버지는 수천 개의 불빛이 반짝이는 밤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 우리 모두 즐거워하며 환호했다.

- '아버지, 소방대에 입대하다', 「모래시계 요양원」, 『브루노 슐츠 작품집』, pp. 284~285


2018-10-13-20-28-32.jpg 『브루노 슐츠 작품집』, 브루노 슐츠 지음, 정보라 옮김,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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