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원래 한글에는 띄어쓰기가 없었다고,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가 임의로 만들어 낸 규칙으로 인해 7700만 명의 한국어 사용자가 고통받고 있는 거라고 설명해야 할까?
- 문지혁, 「1 코리안 알파벳」『초급 한국어』, 2020, p. 17
솔직히는 아주 간단히 말하고 싶었다. 난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고요. 그걸 연결 짓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하지만 새로 만난 한국어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선생님의 조언대로 나는 지난 1년간 내가 NYU에서 어떻게 코리안 랭귀지 튜터/그레이더로 일했는지, 주말마다 뉴저지의 한글 학교에서 어떻게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쳐 왔는지, 그리고 작가가 되려는 내 이력이 어떻게 한국어에 관한 내 애정과 관심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썼다.
그때는 이 모든 과정이 외국인으로 일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지 못했다.
- 문지혁, 「1 코리안 알파벳」『초급 한국어』, 2020, pp. 17-18
특별한 일이 없을 때 뉴욕 시내에 나가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왕복 버스비, 낭비되는 시간, 끔직한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원치 않은 사진의 배경이 되는 일)
- 문지혁, 「1 코리안 알파벳」『초급 한국어』, 2020, p. 19
아까 서명했던 서류 생각이 났다. 그래, 그건 계약서였다. 한 학기 동안 이 학교가 나를 고용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문서. 내 수업 정원은 20명이었고, 수업은 매일 75분씩 일주일에 월화수목 나흘을 진행하는 4학점 짜리였다. 2012년 기준으로 이 대학교의 한 학점(credit) 수업료는 1200달러. 학생들은 이 수업을 듣기 위해 4학점, 그러니까 48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20명이 내는 총액은 9만 6000달러. 수업당 거의 10만 달러, 1억 이상의 돈이 모이는 셈이었다. 거기서 나에게 만 달러를 주고 나면 나머지 9만 달러는 어디로 갈까? 나는 유리잔에 희뿌연 얼음만 남을 때까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교실의 컴퓨터나 중앙냉난방, 프로젝터 같은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마다 사라진 9만 달러의 행방에 관해 의심했다.
- 문지혁, 「1 코리안 알파벳」『초급 한국어』, 2020, p. 20
- 근데 목소리가 왜 다 죽어 가. 신경 쓰이게.
- 그냥 추워서 그래. 추워서.
- 여름인데 왜 추워. 덥지.
- 몰라 나도. 왜 그런지.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강의 잘하라고, 네가 참 자랑스럽다고 엄마가 말해 주길 기다렸지만 엄마는 먼저 전화를 끊으며 한숨처럼 덧붙였다.
- 오늘은 왜 이렇게 춥니.
- 문지혁, 「1 코리안 알파벳」『초급 한국어』, 2020, p. 21
한국어는 '엄마', '하늘' 같은 35퍼센트의 고유어(native words)와 '학생', '대학' 같은 60퍼센트의 한자(Sino-Korean), 그리고 '커피', '버스' 같은 5퍼센트의 외래어(loanwords)로 이루어져 있다.
- 문지혁, 「2 안녕하세요?」『초급 한국어』, 2020, p. 32
은혜는 안녕할까? 아까 수업 시간에 웃던 학생들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그건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 문지혁, 「2 안녕하세요?」『초급 한국어』, 2020, p. 39
받침에 따라 '은'과 '는', '이'와 '가'가 구분되는 방식을 혼동하는 건 차라리 쉬웠다.
(중략)
어려운 것은 본질적으로 왜 '은/는/'과 '이/가'를 구분하냐는 문제다. 이를 나는 주로 의미의 관점에서 설명하곤 했는데, '은/는'은 맥락상 주제나 주체가 달라질 때 사용하고 '이/가'는 주어 자체를 강조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는 식이었다.
- 문지혁, 「4 어디에 있어요?」『초급 한국어』, 2020, p. 59
몇 학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받아쓰기에서 98점을 받은 적이 있다. 적은 감점이 있었던 걸로 미루어 아마도 받침이나 사소한 문법을 틀렸던 것 같은데, 시험지를 집에 들어 가자 엄마는 말했다.
"2점 어디 갔니?"
이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깊이 각인되어서, 누가 당신 엄마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때면 나는 '2점 어디 갔니' 일화를 소개하곤 했다.
- 문지혁, 「4 어디에 있어요?」『초급 한국어』, 2020, p. 61
나는 시인으로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토머스 하디의 시 「Neutral Tones」를 골라 소논문을 썼다. 어설프고 더듬거리는, 유창하고 매끈하지 않아 아름다운 그의 시어와 나를 영원히 매혹하는 회색과 경계, 중간 빛에 대해. 그리고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인 사랑이 이별로 변하는 찰나를 포착한 시적 순간에 관해.
- 문지혁, 「4 어디에 있어요?」『초급 한국어』, 2020, p. 62
이별의 순간에 은혜는 담담하게 말했다.
거기는 낮이겠네. 여긴 밤이고, 니가 볼 땐 어제야. 있잖아. 니가 미국에 간 뒤로는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겠어. 내가 늘 과거에 남겨지는 느낌이라서 그랬나 봐. 넌 어느새 저만큼, 미래에 가 있는데. 인생에도 시차라는 게 있을 거고, 오늘 니가 말한 건 우리 사이에 그만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과거의 목소리는 여기까지만 듣는 걸로 해. 어머니한테 잘하고. 안녕.
- 문지혁, 「4 어디에 있어요?」『초급 한국어』, 2020, p. 69
신입생 시절 썼던 일기에는 서정인의 「강」(문학과지성사, 1996) 한 대목이 적혀 있었다.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 가선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 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온다. 결국 이 열등생이 되기 위해서 꾸준히 고생해 온 셈이다. 차라리 천재이었을 때 삼십 리 산골짝으로 들어가서 땔나무꾼이 되었던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천재라고 하는 화려한 단어가 결국 촌놈들의 무식한 소견에서 나온 허사였음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못 된다. 그들은 천재가 가난과 끈질긴 싸움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열등생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누구나가 다 템스강에 불을 처지를 수야 없는 일이다.
- 문지혁, 「5 한국어를 공부해요」『초급 한국어』, 2020, pp. 84-85
나: 저녁에는 보통 뭐 해요?
앤드루: 학교 끝나며는, 인자, 쥠 가고요, 밥 먹고, 인자, 기숙싸 갑니다. 게임 해요.
나: 게임 좋아해요?
앤드루: 네? 네.
나: 가이드라인에 없는 질문도 할 수 있어요.
앤드루: 아, 오케이.
나: '인자'는 왜 하는 거예요?
앤드루: 뭐라고요? 잘 못 듣는데요.
나: 말 중간에 계속 '인자' 붙이는 거, 왜 하냐고요.
앤드루: 엄, 그게, 인자, 한국 사람들 다 한다고 그랬습니다.
나: 누가요?
앤드루: 미국말 할 때, 엄, 웰, 같은 거라고…….
나: 누가 그러던가요?
앤드루: 우리 할무니가요.
나: 할머니랑 같이 살아요?
앤드루: 네, 같이 삽니다. 와씽튼 디씨에, 인자, 할머니 있습니다.
- 문지혁, 「6 중간고사: 구술시험」『초급 한국어』, 2020, p. 90
Tongue Twisters 4
저기 계신 저분이
박 법학 박사이시고
여기 계신 이분이
백 법학 박사이시다.
제시카: 혀가 짤라질 것 같아요.
(영어로) 이거 정말 한국 사람들이 하는 말 맞아요?
나: 돈 스픽 잉글리시, 플리즈.
- 문지혁, 「6 중간고사: 구술시험」『초급 한국어』, 2020, p. 92
옆방, 그러니까 734호에는 첸 샤오라는 중국인 시니어 렉처러가 있었다. Q 선생은 그녀가 중국에서 소설을 다섯 권이나 낸 작가이며, 뉴욕에서 25년째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여전히 시간만 나면 연구실에서 글을 쓴다고 했다.
"유명한가요?"
내가 묻자, Q 선생은 안경 속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명한 게 중요한가요?"
- 문지혁, 「7 동생이 두 명 있어요」『초급 한국어』, 2020, pp. 98-99
주로 수업을 할 때 엄마 생각이 났다. 수업이 끝나면 그 생각도 같이 사라졌다. 어쩌면 나는 전화를 할 수 없을 때만 엄마를 생각하는 건지도 몰랐다.
- 문지혁, 「7 동생이 두 명 있어요」『초급 한국어』, 2020, p. 106
눈앞의 Q 선생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있죠, 이런 일이 있었어요. 우리 엄마가 방학 때 뉴욕에 놀러온 적이 있었는데, 나더러 자꾸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거기 가 봤자 돈 내고 배 타면서 물 맞는 게 단데 왜 가냐고, 난 운전하기 싫다고 버텼죠. 왕복 13시간 운전을 어떻게 해요. 폭포 하나 보자고. 그랬더니 엄마도 며칠 조르다 지쳤는지 우드버리 아울렛에서 쇼핑만 잔뜩 하고 돌아갔어요. 폭포보다 여기가 낫네, 하면서. 근데 한국에 간지 1년도 안 돼서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암으로. 나중에 장례 치를 때 상주실에 멍하니 앉아서 TV를 보는데, 글쎄 여행 프로그램에서 나이아가라가 나오는 거야. 배 타고 물 맞고 폭포 구경하고. 있지, 내가 여기서 비행기 타고 갈 때도 안 울고 입관할 때도 안 울었는데, 그거 보면서 오열을 했다니까. 그런 게 마음에 남아요. 아무것도 아닌 게."
- 문지혁, 「7 동생이 두 명 있어요」『초급 한국어』, 2020, p. 108
뉴욕에는 수많은 서점들이 있지만,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서점은 12번가에 있는 '스트랜드'다. (중략) 이 서점의 슬로건은 '18 Miles of Books'로, 절판되었거나 구하기 힘든 책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다.
(중략)
얼마 후 <뉴욕타임스>에서 유일하게 읽는 부분인 북 섹션에 '가장 많이 훔쳐 가는 책(The Best Stealer list)'라는 특집 기사가 나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출판되는 책을 보면 그 사회의 정신을 통찰할 수 있듯, 도난되는 책을 살펴봐도 그렇다는 게 기사의 기획 의도였다. 그렇다면 뉴욕에서는 어떤 책이 훔쳐지는가?
거기 스트랜드 서점의 주인 프레드 베스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맨해튼 북부에서는 주로 사진집이나 미술서,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소설들이 도난당하는 데 반해, '스트랜드'에서는 철학과 고등 수학, 학술적인 신학 서적이 가장 많이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뭐야, 이거 잘난 척이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읽고 있는데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식에 관해선 스스로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소위 그런 지식인들이 책을 훔치죠."
- 문지혁, 「8 서점에서 친구를 만나요」『초급 한국어』, 2020, p. 114
미국에 오기 몇 해 전 어느 일간지에서 어머니와 관련된 에세이를 모집했다. 외국 영어덜트 소설로 대박이 난 출판사가 후원하여, 입상자들은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온천 여행을 보내 준다는 공모였다. 쓸데없는 거 쓰지 말고 이런 것 좀 해 봐라. 괜히 사람이나 죽이지 말고. 엄마는 신문을 건네며 핀잔 주듯 말했다. 당시 '착한' 글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설 속에서 온갖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던 나는 순간 불쾌했지만, 오기가 생겨 그날 밤 바로 짧은 글 한 편을 썼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늘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사거리 한쪽에 위치한 작은 동네 서점. 위쪽에는 '한벗서점'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고, 문과 창에는 각종 잡지와 문제집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정면에 책방 아주머니와 계산대가 보이고, 사방은 책으로 가득하다. 서점의 오른쪽 구석에는 자그마한 빈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는 쭈그리고 앉아 키득거리며 만화책 같은 것을 들여다보는 어린 시절의 내가 있다. 바깥으 오가는 차들로 소란하지만, 서점 안은 고요한 가운데 오직 어머니와 책방 아주머니 사이에서 간간히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만이 들려온다. 한가로운 여름날의 저녁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풍경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내려놓을 때면 어머니는 내게 으레 "서점 갈래?"라고 물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그것이 어머니가 책방 아주머니와 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링 외로워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이라고. 나는 그 제안이 싫지 않았다. 서점 안에는 늘 새로운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나는 고대의 왕자도, 중세의 기사도 우주선 속의 비행사도 될 수 있었다. 만화책에서 잡지, 세계 명작에서 한국 소설까지, 엉거주춤 앉으 다리가 저려 오고 방광이 물로 가득 찰 때까지 책을 읽었다. 오직 어머니와 책방 아주머니의 대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서른을 앞둔 지금에서야 나는 깨닫는다. 그녀는 책방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러 나를 데려갔던 것이 아니라, 나를 서점에 데리고 가기 위해 책방 아주머니와 친해져야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목적은 대화가 아니라 책이었고 아들이었다. 아이가 자연스레 책을 읽는 그 몇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어머니는 별다른 내용도 없는 수다를 몇 시간이고 계속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유년의 기억 때문일까. 아직도 나는 어디든 책을 파는 곳에 들어서면 마음 한구석이 이유 없이 설레 온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한다. 이 설렘을 선사하기 위해 숨겨야만 했던 어머니의 작은 비밀을.
- 문지혁, 「8 서점에서 친구를 만나요」『초급 한국어』, 2020, pp. 116-119
물론 여기 등장하는 맨홀맨이나 3인조 흑인 강도 같은 건 진짜가 아니다. 내가 실제로 경험한 것은 작년 크리스마스에 학교 근처 노숙자에게 20달러를 주었던 일뿐. 그는 고맙다며 내 손을 굳게 잡았고, 그때 나는 그의 손이 너무 두껍고 거칠어서 조금 당황했었다. 나는 왜 그 현실 그대로를 소설로 옮기지 못했을까? 누군가의 이야기가 서사가 되기 위해서는 '극적이고' '놀라우며' '그럴듯한' 요소들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이를테면 플롯이나 개연성, 복선과 반전 같은? 그건 혹시 편견이나 선입견이 아닐까? 삶은 평범하고 소설은 특별하다는 고정 관념만큼이나 해로운 것은 아닐까? 현실과 소설 사이에는 대체 어떤 벽이 세워져 있기에?
- 문지혁, 「12 그레이스 피리어드」『초급 한국어』, 2020, p. 176
한 줄 평 : '엄마'라는 한국어와 엄마에 대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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