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우리의 마음이 바빠졌다. 주어를 늘려나갔을 뿐인데. 나에게서 남으로 시선을 옮겼을 뿐인데. 그가 있던 자리에 가봤을 뿐인데. 안 들리던 말들이 들리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슬프지 않았던 것들이 슬퍼지고 기쁘지 않았던 것이 기뻐졌다. 하루가 두 번씩 흐르는 것 같았다. 겪으면서 한 번, 해석하면서 한 번. 글을 쓰고 누우면 평소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채로 잠이 드는 듯했다.
우리는 글쓰기의 속성 중 하나를 알 것 같았다. 글쓰기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우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다른 이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갇히지 말자고 글쓰기는 설득했다. 내 속에 나만 너무도 많지는 않도록. 내 속에 당신 쉴 곳도 있도록.
-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문학동네, 2020, pp. 6-7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사리 '친절하다'라고 쓰지 않는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쌍둥이는 친절하다는 말 대신 이렇게 쓴다. "그는 우리에게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쌍둥이는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좋아한다'는 단어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이 마을은 아름답다"와 같은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둘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에 충실한 문장을 연습한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묘사를 훈련한다.
-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문학동네, 2020,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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