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 나의 심리 상담 일기 2

by 김뭉치

첫 번째 상담을 마치고 나는 네 가지 심리 검사, 그러니까 다면적 인성검사(MMPI), 기질 및 성격검사(TCI), MBTI, 문장성분검사를 메일로 진행했다. 문항을 채우면서 대충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이 됐기에 두 번째 상담 시간을 선생님이 어떻게 채워줄지가 관건, 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나의 예상과 비슷한 결과도 있었고 전혀 예상을 빗나간 결과도 있어 놀라웠다.


1. 다면적 인성검사(MMPI)

상담 선생님이 내게 권하지 않았던 건 다면적 인성검사(MMPI)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결과를 보고 이 검사를 받길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사실 선생님이 내게 이 검사를 권하지 않은 건 첫 상담 때의 나의 모습 때문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나와의 첫 상담에서 받은 인상은 나는 딱히 큰 고민도, 스트레스도 없어 보인다는 거였다. 진지하고 차분한 인상이었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할 것 같았고 그래서 사람들도 나를 좋아할 것 같았다고. 그렇기에 정말 힘든 사람들이 받는 다면적 인성검사(MMPI)를 권하지 않은 거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힘든 사람"이었다. 다면적 인성검사(MMPI)의 결과가 그를 말해주었다. 이 검사는 61점 이상 점수가 나온 부분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데, 특히 72점 이상의 점수가 나오면 '심리적으로 힘들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엔 스트레스가 긴장성 두통이나 소화불량으로 나타나는 항목인 '신체적 증상'에서 78점, 우울감으로 인한 무기력 항목이 70점이었다. 성격은 안정적이나 일을 할 때 걱정과 생각이 많고 예민한 편이라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이 심하다. 이상하게 이 부분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들며 눈물이 날 뻔했다. 현재 스트레스 해소가 잘 안 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일까.


자존감과 자아효능감도 꽤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36점이었는데 간혹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의 경우, 내가 생각하는 이상이 높기 때문에 이 항목에서 낮은 점수가 나오기도 한다고. 어쨌든 이 부분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바닥 점수가 30점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2. MBTI

MBTI 결과도 충격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INFJ로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재미로 보는 MBTI와 실제 MBTI가 다르긴 한가 보다. 내가 INTJ 유형이라는 거다. 내가 나서는 것보단 뒤에서 묵묵히 받쳐 주는 걸 선호하는 타입.


3. 기질 및 성격검사(TCI)

TCI 결과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선생님도 놀랐다고 했다. 기질과는 사뭇 다른 성격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놀랄 만큼 사회화가 잘 이뤄진 것 같다고 했다. 기질적으로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를 거라고 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걸. 그래서 혼자 속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자극을 추구하면서도 놀랄 만큼 신중해서 위험을 회피하는 기질 점수가 98점이다. '자극 추구'와 '위험 회피'는 상충되는데 각각 점수가 높다. 그런데다 또 자율성과 연대감 점수가 매우 높은 성격이다. 후천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통해 지금처럼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내가 된 것 같다고 했다. HHL 유형이다. 순발력과 열정, 자유분방함이 돋보이지만 자신의 강점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탐색적 흥분이 높다는 건 호기심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검사 결과, 나는 호기심이 많고 내가 관심 있는 것에선 몰입도도 굉장히 높다. 그러면서도 어떤 일에 뛰어들 땐 늘 심사숙고해서 결정한다. 전반적으로 질서 정연하고 매사에 조심하는 성격이며 혼자 고민하는 스타일이다.



정서적 감수성이 매우 높지만 사람들에게 절대 의존하지 않는다. 친밀해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친밀한 관계를 원하면 오히려 부담스러워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에 연연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놀고 잘 지내는 기질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을 개의치 않는 특성이 있으며 호불호도 강하다.


인내력이 높아 무슨 일이든 막상 시작하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선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해도 끝내는 열심히 하고야 만다.



'자율성' 부분을 보면 내가 인생의 중심을 잘 잡고 살아가고 있는 게 보인다고 한다.


반면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 민감성 점수는 낮으면서도 연대감이 높다는 점이라고 했다. 후천적 노력으로 사회적인 성격을 개발해 타인을 늘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다고 했다. 연대감이 높기 때문이 업무적인 면에서도 늘 원활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자기초월'이란 시야를 크게 볼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고 한다. '합리적 유물론'에 방점이 찍힌 걸 보면 나는 현실적인 사람으로 현재를 중시하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4. 문장성분검사

한때 즐겨 보던 예능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때때로 문장성분검사를 하는 모습이 나왔다. 문장성분검사란, 주어진 문장을 보고 빈칸을 채우는 검사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항목마다 빈칸을 채우지 못했던 아이다.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하느라 '나'는 뒷전이 된 아이, '나'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아이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아이의 심리적 상태를 해석하는 오은영 박사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 검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해 보게 됐다.


각 문장을 읽으면서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으로 뒷부분을 이어 문장이 완성되도록 하면 되는 검사인데, 시간제한은 없으나 되도록 빨리 빠짐없이 빈칸을 채우는 게 중요하다. 예상치 못하게 성생활과 관련된 딥한 문항도 있어서 놀라웠다. 문장성분검사를 진행하면서 내가 유난히 엄마와 관련된 문장들로 빈칸을 채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상담 선생님도 검사지를 분석하시면서 그 점을 지적했다.


이후 남편에게도 빈칸을 채워보라고 하고 남편이 채운 빈칸을 보면서 더욱 흥미로움을 느꼈다. 문장성분검사는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으로 빈칸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건들게 되고 그 무의식이 지면으로 드러나게 되는 셈이다.


다음은 문장성분검사의 항목이다. 여러분들도 빈칸을 채워보며 무의식을 따라가 보라.





위와 같은 심리 검사들은 6개월마다 한 번씩 다시 진행해 마음 상태를 따라가며 챙기는 것이 좋다고 한다. 6개월 간 상담을 지속하면서 마음을 점검하다 보면 더 좋아지고 안정된 검사를 얻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검사에 대한 상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점(占)보다 더 재미있는 심리 검사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됐다. 우리가 사주나 점을 보러 가며 무릎을 치는 것은 역술인이나 무당이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잘 말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 아닐까. 비슷한 맥락에서 심리 검사의 경우에도 내가 알고 있는 나와 객관적인 검사로 알게 된 나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비슷하면 그래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 느끼고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다르게 나오면 나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다니, 하면서 감탄하는 셈이다.


상담 선생님은 스트레스가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에 한해서는 진통제 등의 먹는 약으로 그때그때 치료를 해야 하며 과로로 인한 무기력증 부분은 앞으로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나는 나와 한 발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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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뭉치의 에세이 『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도 많이 사랑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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