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귀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첫인상 리뷰

- 진정한 작가란

by 김뭉치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1도 없었다. 제목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유치했다. 호밀밭의 '반항아'라니, 호밀밭의 '파수꾼'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무지를 고백하자면 샐린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중학생인가 고등학생 시절 『호밀밭의 파수꾼』을 사긴 했었다. 범우사판이었을까. 굉장히 얇았던 게 기억난다. 온라인서점에서 주문했는데 사고 나서 펼쳐 보니 그건 소설이 아니라 샐린저에 대한 전기였다. 소설부터 읽어야지, 했던 나는 결국 그 책을 처박아두고 펼쳐보지 않았다.


초창기 샐린저의 뮤즈였던 우나 오닐.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로, 이후 엄청난 나이차를 극복하고 찰리 채플린과 결혼했다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기 전날 밤, 남편은 그래도 샐린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가야 재미있지 않겠냐며 나를 설득했다. 일찌감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던 남편은 그의 작품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었다. 남편은 가지고 있던 『샐린저 평전』과 『호밀밭의 파수꾼』을 번갈아가며 읽어주면서 작가에 대한 약력까지 상세히 소개해주었다. 결과적으로는 남편에게 들은 여러 이야기들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었다. 게다가 그가 읽어준 『샐린저 평전』이 알고 보니 이 영화의 원작이었다. 대체 어찌 이런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지,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이제는 때가 왔다. 남편이 책들을 들고 침실로 들어설 때만 해도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게 가장 재미있어, 외쳤던 나의 아집을 반성한다. 이 자리를 빌어 남편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남편이 읽어준 『샐린저 평전』(좌). 현재는 절판 상태다. 『호밀밭의 파수꾼』(우)은 샐린저의 요청대로 표지에 일체의 그림이 들어가지 않았다



<스킨스>와 <매드맥스> '엑스맨' 시리즈의 니콜라스 홀트를 좋아하지만 <호밀밭의 반항아>의 니콜라스 홀트는 샐린저가 되기엔 부족한 듯보였다. 특히 영화 초반에서 그의 모습은 제롬 데이빗 샐린저가 아니라 <매드맥스>의 눅스 같았다. 다행스러운 건 후반부로 가면서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샐린저의 모습을 연기하는 홀트는 그나마 안정돼 보였다는 점이다.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니콜라스 홀트의 필모그래피. 영국 드라마 <스킨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엑스맨' 시리즈, <호밀밭의 반항아>


참전 이후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는 샐린저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 뒤로도 샐린저가 손을 떨며 무언가를 쓰려다 실패하는 장면은 계속 반복되는데 이런 식의 연출은 평범하다 못해 지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샐린저를 입체적으로 그린다기보다 피상적으로 그린다는 느낌이 강해 아쉬웠다.


영화 속 『호밀밭의 파수꾼』 초판. 실제 초판과 표지 디자인이 같다


샐린저에게 진정한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주고 결국 『호밀밭의 파수꾼』을 쓰게 만든 이는 컬럼비아대의 교수 휘트 베넷이다. 그의 교수법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저런 교수님이 있었다면 지금쯤 내 인생이 얼마만큼 바뀌어 있을지 알 수 없을 테다. 그는 지루한 목소리로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낭독하기도 하고 머그컵 가득 커피를 채운 뒤 그 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에 수업을 끝내기도 한다. 그에게는 작가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가 자신의 글을 다듬고 도전하게 만든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의 수업을 들어보고 싶은 이유다. 휘트 베넷은 샐린저를 알아봤고 그를 격려했으며 아껴주었고,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었던 <스토리>지에 샐린저의 단편을 실어준다. 25달러의 수표를 샐린저에게 건넨 휘트 베넷은 이후 샐린저에게 말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지게 쓴 25달러였어"라고.


그런 휘트 베넷에게도 저간의 사정이 있었을 텐데 문집을 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간절한 요구들을 거절한 샐린저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그가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려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도 말했듯 훌륭하고 위대한 작가들에게는 인간적 결함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이라거나 하는 태도 말이다.


휘트 베넷 역을 연기한 건 케빈 스페이시였다. 그의 연기야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성범죄자로 낙인 찍힌 그이기에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의 출연 여부를 전혀 알지 못했고 영화를 본 뒤 찾아본 포털 사이트의 정보에서도 그는 조연 중 가장 마지막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엔딩크레딧에선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리는, 주연에 가까운 조연임에도 말이다. 따라서 그의 얼굴을 보기가 불편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선택할 때 주의해야 할 듯하다.


샐린저의 출판 에이전트 대표(좌). 언제나 "출판이 모든 것"이라고 말하던 그녀는 샐린저의 행복을 빌어주며 말한다. "왜, 내가 늘 말했잖아. 출판이 꼭 모든 건 아니라고."


샐린저는 전쟁의 트라우마와 『호밀밭의 파수꾼』의 대성공으로 은둔 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저마다 자신이 홀든 콜필드라고 하는 빨간 사냥모자를 쓴 사람들이 그의 집 앞에서 샐린저를 기다리는 생활이 이어졌다. 유명세의 고통은 작가에게도 찾아왔다. 각각 존 레논과 케네디를 암살한 이들도 홀든 콜필드의 뜻을 따랐다고 주장하며 살인을 했을 정도이니 작가에게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까.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에도 끊임없이 혼잣말로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를 읋조렸던 샐린저. 전쟁도 그의 창작혼을 빼앗을 순 없었다. 그는 늘 마음으로 소설을 썼고 끝내 휘트 베넷에게 편지를 쓴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노라고, 이제는 글쓰기가 종교가 되었노라고 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늘 샐린저에게 묻는다. "글은 쓰고 있나?"


당신은 왜 쓰는가? 당신의 뮤즈는 누구인가?


사실 이런 영화를 재미로 보는 관객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영화의 재미를 떠나 글쓰기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호밀밭의 반항아>를 추천한다. 글을 쓰는 이들은 누구나 작가이니까.


세상의 모든 작가들에게 <호밀밭의 반항아>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쓰는가?"


어쩌면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질문 아닐까.

당신들의 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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