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2
감독 : 박지인
어디 서류전형이라도 통과해야 면접을 보고, 면접을 봐야 소위 ‘사회인’ 구실을 할 수 있는데 첫 문턱도 넘어본 적 없는 취업준비생 이진. 평행우주 너머 쌍둥이 지구에서 사람들이 넘나드는 시대, 저쪽 지구에서 신혼에 죽어버린 쌍둥이 이진의 남편이라는 훈남이 찾아와 자존감 바닥이던 이진에게 함께 가자고 눈물 글썽이며 매달리는데.. 아예 ‘취직 대신 시집’? 여태까지의 세계관을 뒤집고 다른 지구로 가야 하는 걸까? (이안)
평행우주, 같지만 다른 세계를 말한다. 내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 평행한 또 다른 우주, 그 안에는 우리와 똑같은 환경이다. 그곳에서 갑자기 쌩판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내가 당신 남편이오 하면 어떤 기분일까? 당혹을 넘어 공포의 영역일 것이다. 같지만 다른, 인지하고 있어도 모른척하는 게 좋은 평행세계와 교류하기 시작한 인류는 최초의 한국인 이주민을 만나며 평행우주(쌍둥이 지구)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사실 평행우주는 sf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이다. 서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며, 만약 어느 한쪽이 넘어가서 변화를 줄 경우 치명적인 변화가 나타난다는 등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주인공에게 찾아온 남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내였던 이진에게 찾아와 아내가 되어달라 한다. 가뜩이나 취직도 어려웠던 이진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남자를 따라가기로 하지만 결국 돈이다. '돈이 부족한' 이진이다. 스펙도 경험도 없는 이진에게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당연히 소득도 직장도 없는 이진은 비자부터 반려되어 쌍둥이 우주로 넘어가기 위한 필수 루트인 미국으로 가지도 못한다. 그렇게 나의 남편이 될 뻔한 사람은 저 멀리 가버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어려운 취업시장의 현실을 평행우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진은 가족, 친구를 모두 두고 떠나고자 했다. 이진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남자의 말 한마디만 믿으면서까지 말이다.
쌍둥이 지구에서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보다 누군가의 필요가 된다는 사실이 그녀를 이끌었다.
감독 : 민현기
미세먼지가 극심해져 더 이상 숨 쉴 수 없는 지구. 모든 사람들은 방독면을 쓰지 않으면 30초도 버틸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미세먼지에 면역력을 지닌 자가 있단 소식을 접한 방송팀. 소문을 찾아 당사자를 만난다. <사는게 먼지>는 점차 심해지는 대기오염으로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삶의 조건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다시금 되짚는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인물들과 코로나 상황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현 상황이 정확하게 겹쳐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이동윤)
미세먼지로 오염되어 숨도 쉬기 힘든 지구에서 인류는 마스크를 한 몸처럼 착용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던 시대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더 이상 영화의 장면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50년 뒤에나 마스크를 쓰고 다닐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현실 앞에 마주하고 있다. 물론 대기오염으로 인한 결과는 아니지만 이 또한 인간으로부터 시작한 환경오염의 일종이기에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답답함' 하나 때문에 마스크를 벗는 훈련을 한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반복 훈련을 하며 점차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목에 아가미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생기며 진화를 달성한다.
영화에서 눈에 띄는 소재가 있다. 바로 '오픈카', '돔', '달팽이'이다. 간단하게 순서대로 짚어보자.
창고에서 우연히 마주한 오픈카의 사진은 그에게 답답함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물이 되어버린 오픈카이지만 주인공은 홀리듯이 구매한다. 뚜껑을 열고 달리는 동안 그는 자유를 느낀다. 마스크에 억압되어 있던 자신을 벗어던지고 일직선으로 난 도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돔과 달팽이이다. 주인공은 집에 돔을 만들어 식물을 기르고 있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물과 토양, 식물까지 갖춘 온전한 온실이었다. 이는 지구를 옮겨놓은 듯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모습이지만 온실을 통해 작게라도 유지하고 있는 푸르름이다. 이런 공간에 멸종된 줄 알았던 달팽이가 등장해 희망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수행한다.
환경오염은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오존층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은 꾸준히 상승 중이다. 대기는 푸르름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며 바다는 쓰레기와 화학물질이 둥둥 떠다니는 곳으로 변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자각해도 때는 늦었다. 슬프지만 영화처럼 마스크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감독 : 최보규
남들과 다른데 빠져있다는 건 비주류로 따돌림당하기 딱 좋은 이유다. 사람들은 왜들 그렇게 유행에 휩쓸리는지, 요즘 댄스음악이 아니라 하필 옛날 음악, 그것도 로커빌리 문화에 푹 빠져있는 대학생 재익은 남들이 따돌리거나 말거나 오로지 엘비스 따라잡기가 소원이다. 그 간절함에 응답해 로커빌리 좀비들이 캠퍼스에 퍼져나가니 재익은 행복할 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불안하지만 이 로커빌리 좀비 바이러스는 유쾌하고 즐겁다. 그다음에 올 디스코까지. (이안)
엘비스를 끔찍이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집에 제단을 차려두고 모실 정도이다. 말과 행동은 이미 엘비스 그 자체기에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세상은 재익을 곱게 보지 않는다. 재익 나름의 개성을 표현했지만 시대에 맞지 않고 어색한 그의 모습이 오히려 거부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우리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선택적'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성향이다. 연예인이나 배우가 괴상한 옷과 행동을 하면 그것은 개성이 된다. 하지만 일반인이 똑같이 행동하면 '이상한 짓'이 되어버린다. 과연 기준은 무엇일까.
그래도 엘비스 바이러스가 퍼진 학교는 생각 외로 유쾌했다. 서로의 멋짐을 인정하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멋짐을 뽐내는 모습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괜히 나까지 멋있어지는 느낌?
감독 : 이연지
어른들은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별별 수를 다 쓴다. 자장가를 들려주기도 하고,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한다. 그런데 잠을 못 자게 된다면? 당연히 꿈도 꿀 수 없다.
어서 자라고, 그래서 꿈을 꾸라고 한 어른들은 알고 보니 어린이들의 꿈을 양식으로 삼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점점 더 잠들기가 어려워질 뿐.
불면증 소년 테오는 그럼 문제아로 찍히는 걸까? (이안)
애니메이션 속 세상은 꿈을 원동력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싱싱한 꿈을 주기적으로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아이들은 꿈을 꾼다. 그리고 꿈을 추출당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꿈을 추출한다. 시간이 되면 MRI처럼 보이는 곳에 누워 담당 의사의 말에 따라 작업을 시작한다. 마치 젖소에게 젖을 추출하듯 가차 없이 아이들의 꿈을 뽑아낸다. 꿈의 품질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고 순위가 매겨진다. 어른이 아이의 꿈을 응원하고 키워주는 것이 아닌 나이 들어 사라져 버린 순수함을 얻기 위해 아이의 꿈을 취하다니 너무나도 섬뜩한 이야기이다. 부모조차 자식을 꿈을 위한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불면증이 생긴 이유조차 궁금해하지 않고 타박할 뿐이다.
단편 2편은 1편보다 묵직한 주제들이었다.
취업을 하지 못하는 백수, 파괴된 환경, 개성의 부재, 꿈을 앗아가는 어른.
sf 장르를 달고 나왔지만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스토리라 더 깊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