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상 Dec 31. 2020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제목부터 타이핑하기 참 길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외출보다 집 안에 있는 생활이 익숙해진 요즘, 주말만 되면 우리 집은 티비 앞에 모인다. 보통 늦은 점심을 먹고 한가로움이 지겨움이 될 즈음에 리모컨을 바꿔 든다. 넷플릭스를 뒤적이고 왓챠를 뒤적인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집안 내력이 있기에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vod 서비스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다 봤거든. 

거기다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집안 내력 덕분에 최근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는 이미 다 본 상태이다. 그리고 연초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주말을 영화와 함께해서 점점 더 볼 영화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주로 첩보나 액션 영화를 자주 보는데 화려한 불꽃과 사운드, 격정적인 장면 전환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피곤해 잠시 쉴 겸 힐링 영화를 주제로 잡고 뒤적이다 발견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 사실! 


이 작품, 영화와 연극 둘 다 봤다! 


이미 작년에 연극으로 먼저 본 작품이었다. 그래서 더 영화에 눈길이 갔다. 원작이 소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화도 굉장히 인기가 좋았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의심 없이 재생을 눌렀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연극의 특징은 한정된 공간과 인력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무대라는 작은 공간에 세트를 꾸며놓고 배경의 변화를 준다. 특히 내가 본 연극은 4명의 배우가 1인 다역으로 수많은 역할을 수행하는 형태를 뗬다. 의상에 변화를 주고, 액세서리에 변화를 주며 지금의 내가 어떤 인물인가를 표현한다. 그렇기에 배우의 역량에 따라 몰입도는 천차만별이다. 개인의 상상력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설의 내용을 '한정된' 자원으로 구성하는 연극,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인 것이다. 



반면 영화는 규모가 크다. 예산부터 인력까지 전반적인 부분이 늘 스케일이 크다. 영화를 틀면 나오는 여러 회사들의 영상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잠시 검은 화면이 나오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영화의 장점이라면 상상으로만 펼쳐왔던 세상을 스크린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드넓은 초원은 물론이고 판타지에서나 볼 수 있는 용과 마법의 이야기도 cg로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스토리에 힘을 실어줄 배경을 만들어낸다. 




알란의 10대부터 100세까지 다녀간 공간들을 제약 없이 보여준다. 어릴 적 살았던 가난한 집에서부터 포탄이 오가는 전장, 일반인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정부기관, 그리고 그보다 더 비밀스러운 조직까지. 스토리가 진행되며 어떤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알란의 100세 여행이 마무리되는 순간의 풍경이다. 우연히 만난 동료들을 끝까지 책임지며 발리의 파라다이스로 안내하는 장면은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인생을 후대에 전해주는 것만 같은 감동을 주었다. 



사실 나는 영화나 소설, 공연 등 작품을 보고 그것의 원작이나 리메이크를 다시 보지 않는다. 처음 작품을 감상했을 때의 감동과 추억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아도 자꾸만 비교를 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말이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특별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만약 당신이 혼자서 영화를 봤다면, 혹은 혼자 볼 예정이라면 잠시 멈추고 당신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알란의 이야기는 곳곳에 주옥같은 메시지를 품고 있다. 동료를 하나하나 만나면서 그들의 역경을 함께 해쳐나가고 그들의 가치관에 변화를 준다. 



어쩌면 사회에서 소외된 부적응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100세가 되었을 뿐인 노인과 곧 요양원에 들어갈 또 다른 노인,

호기심과 학구열이 뛰어나지만 학위 하나 없는 2% 부족한 학생,

사람에게 상처 받고 서커스단에서 고통받던 코끼리와 함께 작은 농장을 꾸리며 살아가는 여성. 


이들이 모여 여행을 하며 (사실은 갱단을 피해 도망가는 중이지만) 각자의 상처를 치유받고, 또 치유하며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모습은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상호작용의 중심에는 주인공 알란이 있다. 언뜻 보면 눈치 없게 행동하는 듯하지만 인생을 통해 깨달은 삶의 지혜는 자연스럽고 부담가지 않게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