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이야기
줄거리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
1995년, 토익 600점만 넘기면 대리가 될 수 있다!
입사 8년 차 동기인 말단 여직원들이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에 모인다!
이번 주말도 할 게 없어 넷플릭스나 뒤적거리고 있던 차에 발견한 영화.
vod로 나온 걸 봤지만 그다지 당기지 않아서 미뤄두고 있던 영화인데, 이번에 넷플릭스에 풀렸다. 덕분에 고민 없이 바로 재생을 눌렀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성공스토리...인 줄 알았다. 처음에는 그랬다.
삼진 그룹에서 고졸 여직원으로 일하는 그들은 사무실 청소로 하루를 시작한다. 캄캄한 사무실에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환기와 재떨이 치우기, 책상마다 있는 쓰레기통 비우기이다. 직원이 하나 둘 출근하면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한다. 대리와 과장의 업무를 도와주며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들의 업무는 없다. 그저 남직원들을 서포트하면 될 뿐이다.
그러던 중 회사에 붙은 대리 승진 공고.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토익 프로그램으로 600점을 넘기면 대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공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토익 수업, 새벽마다 모여 공부하며 대리를 향해 나아간다.
어느 날 같은 부서 대리와 함께 생산공장 점검을 나선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공장은 돌아가고 있었고,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딴 길로 새어 풍경을 즐기려는 중에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공장 폐수를 여과 없이 하천에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후 줄거리는 주인공 3인방이 폐수 방류를 파헤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개 직원이 대기업을 상대하며 벌어지는 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밝혀지는 진실?
아니다.
스토리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야 실화 기반의 시나리오이기도 해서 흐름상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었다. 내가 놀란 부분은 당시의 모습이었다. 1991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니 이제 딱 30년 된 사건일 테지. 외관은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차이이지만 내부에서 일어나는 만행은 도저히 30년 전 이야기라고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있는 곳이 곧 흡연 장소라는 마인드의 시대상,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하지 못하는 차별적인 모습, 환경에 대한 인식과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 대우는 인권을 논하기 전에 남성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지 않았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여직원들은 삼진이라는 대기업에 맞는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상고에서 상위권을 달성할 기본적인 학업성취를 가지고 있었고, 빠른 업무처리능력과 시대 흐름을 읽는 혜안, 수학올림피아드 수상까지 하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능력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는다. 주인공보다 좀 덜떨어진 후배는 대리로 문제없이 승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능력적인 면은 둘째 치고, 회사는 무엇을 위해 이들을 채용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들게 한다. 청소부로 고용된 것도 아닌데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해 사무실을 청소하고 재떨이를 정리한다. 업무가 시작되면 각자 기호에 맞는 커피를 타서 나르고, 담배까지 개인별로 구분해 함께 놓아둔다. 과연 이것이 같은 월급을 받는 사원의 모습이 맞는 걸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불과 30년 전 이야기라는 게 놀라울 뿐이다.
사실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직접적인 경제활동이라고는 알바밖에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기업에서 여성인권에 대해 어떻게 다루는지 분명하게 비교해서 서술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과거에 비해 비교 가능할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경우 육아휴직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군경 소방에서도 여성비율이 점차 늘어나도 있다. 공공기관이라고만 명시한 이유는 아직 사기업에서는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할 것이다.
탁상행정으로 급진적인 변화를 추진하다 보니 부작용도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문제제기할 것 없는 이상적인 법안이지만 현장은 준비할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을 받아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성을 위한 시설의 부재도 큰 문제로 작용한다. 군경 소방처럼 남성이 대부분이었던 집단에 무리하게 여성비율을 높이게 되면서, 안 그래도 노후된 시설에 없던 시설까지 지으려니 실무자들은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뒤죽박죽 업무를 이어간다.
지금 세상은 혐오가 가득한 세상이다.
뉴스를 봐도, 인터넷을 봐도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치고받고 싸운다. 하도 시달린 나머지 이제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 관련 기사가 나오면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럼에도 인권은 필요하다. '성별'을 나누는 것부터가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는 행위이고 인권의 정당성을 저해한다.
인간으로서 바라보자.
내가 저 상황에 처하면 어떤 기분일까.
부당하나?
인간으로 접근해야지 성별로 접근하면 절대 답이 나올 수 없다.
결국 이성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인간적으로 접근하자.
90년도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행위들을 바라보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우리의 자식들이 그대로 느끼지 않겠는가.
불편하고 마주하기 싫은 문제일수록 똑바로 바라보고 인지해야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