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옛 물건
미술관이라 하면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장소이다.
건조한 공기와 어두운 조명, 바라봐도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미술품.
반면 그런 미술품을 보기 위해 우글우글 모여있는 사람들.
그런 공기만으로 몸이 간지러워지는 공간이 미술관이요, 박물관이다.
그래도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공간에 대한 친숙함을 키우기 위해서 우선 책으로 먼저 접해보자.
1학년 때였나, 교양으로 중국문학 수업을 배운 적이 있었다. 첫 수업 날 교수님께서 항아리 하나를 가져오셨다. 그러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번에 중국에 다녀오서 가져온 물건이라고 소개하셨다. 수많은 문명이 피고 진 중국답게 장터에 있는 물건만 집어와도 역사가 새겨져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계속 들어보니, 항아리에 새겨진 문양이 옛 문명의 흔적이라고 하셨지만... 사실 흥미는 없었다. 그저 저런 열정을 가져야 교수를 하는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이 책은 이런 열정 넘치는 사람이 나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북경 고궁박물원 시청각연구소 소장이며, 예술학 박사. 다큐멘터리까지 감독한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을 시대 흐름에 맞게 소개하며 해당 물건에 담긴 스토리를 풀어준다.
기존의 전시 방식이 지루한 이유는 흥미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전시품과 이름, 간단한 설명은 적혀있지만 관람객이 이를 보고 상상하기에는 제한이 있다. 큐레이터와 함께 이동하며 시대 배경을 듣고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관람할 때와 혼자 둘러볼 때의 감동이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시품도 결국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누군가의 물건이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인지하기 어려운 일반인들에게는 그냥 '물건'일뿐이다. 수많은 문명이 피고 진 중국 대륙을 단 18개로 설명하기란 매우 부족하다. 그럼에도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역사의 시작인 하나라를 모래와 연결 지었고, 청동기시대를 관통하여 피바람이 부는 전국시대, 안정된 왕조가 들어서 예술이 꽃피운 명, 청 시대까지 짧은 문장으로 시대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대표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고궁'이라는 키워드에서 마치 사극을 보는듯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 준다.
웅장하게 시대를 아우른 왕조의 설립과 몰락, 그 안에서 수십 번은 넘게 일어났을 부흥과 피바람, 이 모든 것을 꼭 끌어안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바로 '고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웃고 떠들었을까. 반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까.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고귀한 공간 이이도 하다.
아쉽게도 역사를 대변하는 유물들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왕조가 교체되면서 이전 왕조의 역사는 모두 불태워버린 사례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땅 속에 묻힌 물건을 모으고 모아 조각나 있는 역사를 붙여 모은 것이 지금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역사이다. 분명 땅 속 어딘가에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묻혀있는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땅 속에 있는 씨앗처럼 그들을 찾아낼 순간에 더 재미있고 풍부한 역사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