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캠퍼스라이프

by 현상

대학을 가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할 줄 알았다. 청춘 드라마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캠퍼스 라이프는 없었다.


있었지만, 짧았다.


신입생이 되어 캠퍼스를 거닐 때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정해진 시간표와 수능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바라보며 기계같이 살았던 나날에서 벗어 나 처음 맛본 자유는 달콤했다. 내 마음대로 강의를 골라 시간표를 짜는 것도 즐거웠다.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이 10분이 아니라니, 원한다면 1시간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학기 초 대학가는 각종 동아리들이 신입 부원 모집을 위해 열을 올렸다. 토론, 영어회화와 같은 학술 분야는 물론이고 음악, 춤,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진 배움의 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방비 상태의 신입생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취미로 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음악동아리로 흘러들어갔다. 그렇게 캠퍼스라이프 가 시작되었다.


1학년 때는 좋았다. 아무것도 몰라 배우고 적응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가 바뀌어 2학년이 되고부터 본격적으로 전공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전공이 나와 맞지 않음을 느낀 것이다.


'적성'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이 열심히 하고 연구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핑계라고 생각했다. 공대를 진학한 나에게는 이론을 실전에 적용하는 사고회로 자체가 없었다. 이론은 그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내 것으로 바꾸고 응용해 적용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이었다. 여기까지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노력과 적성의 차이를 확실히 느낀 건 사회계열의 수업을 듣고 나서였다.


이론을 듣고 통계를 보고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해 내 언어로 발표하는 작업이 즐거웠다. 정해진 공식을 이용해 답을 도출해내는 공대의 사고과정에 어려움을 느끼던 나였지만 사회계열의 수업을 들었을 때는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웠다.
연구 자료와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한다. 가만 보면 공대의 사고 과정과 유사하다. 하지만 흥미를 느낀 차이는 '언어'였다. 유능한 석학들이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나만의 언어'로 만드는 과정은 굳어있던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도 즐거웠다. 서로 다른 의견을 두고 토론하며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신선했다. 마치 새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 길은 여기가 아니구나.


남중 남고를 나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남자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란 소년은 자연스레 공대를 선망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 역시 자연스레 ‘남자는 공대!’ 하는 분위기와 위기의 순간에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발명품으로 주인공을 도와 세계를 구하는 할리우드 영화 속 멋진 공돌이 콜라보로 공대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수시 준비 역시 하나의 흥미를 일관되게 주장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공돌이의 길을 걷고자 했었다.


그런데 한창 공부할 대학교 2학년 때 적성을 깨닫는다?


순간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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