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그렇지 못합니다.
요즘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다. ‘안녕하세요.’라는 흔한 인사말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물론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남들 보기에는 건강하고 활기차고 항상 밝은 모습일지라도 껍질을 벗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그저 하나의 덩어리일 뿐이다.
나는 거짓으로 뒤덮여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잘하는 척, 아는 척해야 하고, 날씨가 좋으면 ‘날이 좋네요.’라고 밝게 웃으며 인사해야 한다. 이와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나 의 나약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소유욕이 굉장히 강했다. 한번 얻고자 하는 것은 무조건 가져야 했고, 마음에 든다 싶으면 끝까지 집요 하게 파고들어 내 것으로 성취하고야 말았다.
오죽하면 딱 한번 초등학교 때 상장을 받지 못했던 적에 내 분에 못 이겨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아, 물론 물리적으로 표출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왜 이 상을 받지 못했는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을 뿐이다.
내 성격이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2번 있다.
첫 번째는 중학교 2학년, 두 번째는 대학 들어와서이다.
원래 나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나서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감성적이고 소심했던 탓도 있다. 하나 일화로는 4살 차이 나는 친누나 졸업식 때 형식적으로 낭독하는 송시를 듣고 펑펑 울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누나는 덩달아 주목을 받게 되었고 애써 시선을 회피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렇게 감성적이고 소심했던 아이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맞게 된다.
흑염룡이 날뛰던 중2병 말기, 한창 유행했던 밴드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명받아 밴드를 시작했다. 아는 것 하나 없이 오로지 독학으로 연습하고 친구들을 모아 밴드부를 창설하고, 아무튼 참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렇게 밴드를 하며 밖으로 돌아다니게 되었고 점차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아이가 되어갔다.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이 마인드는 잘 성장하여 일 명 '마이웨이' 성향을 강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부터이다.
남중 남고를 나와 마이웨이로 어쩌라고 하면서 살던 나에게 이성의 등장과 선배의 존재는 엄청나게 큰 변화로 다가왔다. 일단 여자만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고, 괜히 거리를 두기도 했었다.
선배들은 더욱 불편했다.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었고, 이를 어기기는 쉽지 않았다. 가만 보면 대학생 때의 경험이 사회생활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의 격변을 거쳐 내 성격은 적당히 마이웨이 하면서 주변에 잘 맞춰주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또 어떨까.
작년 이맘때쯤, 믿었던 사람들에게 크게 통수를 맞았고 그로 인해 그들과 관련된 장소에 가면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트라우마에 빠졌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 그렇다. 지금도 그쪽으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무덤덤하게 그 일을 견뎌내면서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에서부터 내 정신은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정리를 하러 해당 장소에 갔을 때 느껴지는 그 메스꺼움은 상당히 불쾌했다.
‘아니 내가 이런다고? 정말로?’
나름 멘탈도 강하고 털어내는 것도 빠르다 생각했었기에 위와 같은 현상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안 그래도 사람에게 다가가는 게 늦는 편인데 그때를 계기로 경계가 더 강해졌다.
어차피 마음 주어도 결국에 상처 받는 건 나일 텐데,
어차피 몸이 멀어지고 생각이 다르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등을 돌릴 것이 뻔한데.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쏟은 정성은 뭐가 되는 거지?
너와 나의, 너희들과 나의 유대는 무엇이었던 것일까?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지만 당사자가 아닌 나로서는 그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람을 멀리하게 되었고, 가면을 한 겹 더 쓰게 되었다.
사실 이제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그때의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과거를 연연하며 성장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겠지.
마치 주변에서 조언을 해줘도 내가 직접 겪기 전에 는 절대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 나의 시선이 딱 그 정도일 거라 생각한다.
나는 거짓으로 둘러싸여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일까,
진정 이게 내 모습이 맞는 걸까.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지 오래되었다. 지금도 핸드폰 앨범을 열면 내 사진은 한 장도 없고 남을 찍어준 사진만 가득이다. 기분이 정말 좋은 날 에도 카메라를 켜고 그 속에 비친 나를 보면 이 기분이 과연 어떤 근거로 생기는 것인지, 진실된 감정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다시 카메라를 내린다.
결국 순간의 감정인 것을.
누구를 만나도 어떤 일을 해도 뒤돌아서면 공허하다.
채워지지 않는다.
지금 내 처지에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 건가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사람 인가 의문 또한 든다. 무엇 하나 '나'라고 인정받는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 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내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지는 '쓸모'는 무엇인가.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도 어차피 언젠가 멀어질 사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곧 결혼을 할 것만 같았던 연인도, 평생을 함께 하고자 했던 부부도, 언제 나 곁에서 소통할 것만 같았던 친구도 환경이 달라지고 그룹이 달라지면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다른 곳에 집중함으로써 생기는 상대적 소외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야금야금 관계를 잡아먹는다. 굵고 튼튼했던 관계는 조금씩 앙상해지며 겨우 형태만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말로, ‘아이고 부질없다.’
내 이런 모습을 주변 누구에도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께도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드렸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깊은 속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이렇게 글로 남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또 억누를 뿐이다.
자연스레 삭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또 가면을 쓰고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