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국가의 선택을 받아버렸다, 300:1의 확률로
01.
" 미친! 이게 되네?"
2022년 5월의 어느 날, '지잉-'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 위로 진동이 울렸다.
무심결에 확인한 문자 위로 당첨 축하 문구와 함께 계약 안내문에 관한 내용이 이어졌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하던 중 잠시 짬을 내어 화장실로 향하던 나는 가만히 자리에 서서 멍한 표정으로 그 문자를 5초간 바라봤다. '미친' 험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절로 입이 벌어졌다. 휴대폰을 쥔 손으로부터 시작된 소름이 발끝까지 퍼져나갔다.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그 해 내가 지원한 행복주택은 300:1이 넘는 미친 경쟁률을 자랑했고,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집을 선택하자!'라는 생각으로 어차피 지원은 공짜! 일단 되고 생각해!! 를 외치며 접수했다. 그런데 이게 된다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금 사무실에 앉았다.
금세 현실적인 문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 이 집.. 감당 가능할까?
혼자 고민하는 것보단 주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보고자 했다. 다들 그 가격에 서울살이 시작할 수 있는 게 어디 흔한 기회냐며 적극 추천했지만 그중 가장 와닿는 조언은 그 주변에 살아보셨던 분의 이야기였다. 근방에서 그 금액대로 오피스텔도 구하기 어렵다며, 기회가 왔을 때 좋은 인프라와 컨디션의 집을 경험해 보라고 해주셨다. 그러면 절대 그 밑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살게 될 거라는 말. 그와 함께 속으로 외쳤다.
'그래! 결심했어!!'
그리곤 바로 가족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엄마 나 독립해.. 그렇게 됐어' 가족들은 당황해했지만 좋은 기회라고 축하해 줬다.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단 하나 보증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등 떠밀려 시작하게 된(?) 독립에 제대로 된 준비는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지만, 뭐든 닥치면 하게 돼있는 게 인간이기에. 빠르게 돈을 긁어모아 계약금을 넣고 남은 준비 기간 적금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내 목표는 단 하나, 최소 필요금액만 맞춰서 일단 들어간다!! 였기에.. 나머지는 대출받으면 알아서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안일함의 극치였음을...)
02.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당첨 일로부터 약 2년의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입주가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내가 할 일은 오직 최소 보증금을 위한 적금 붓기와 하루가 멀다 하고 LH 사이트에 들어가 오늘은 우리 집이 얼마나 올라갔나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은 참 잘도 흘러갔다. 국제 이슈로 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입주시기가 좀 더 밀리긴 했지만 한겨울 추운 날 손 호호 불면서 입주할 일이 사라져서 오히려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긍정 맥스인 상태로 하자 점검의 날이 밝았다. 내 생에 첫 하자 점검이었다.
미친. 내가 나라가 주는 새 아파트에 들어가면서 이런 걸 하다니! 엄청나잖아!! 도대체 뭐 하는 건지도 잘 몰라서 유튜브 영상도 엄청 찾아보고, 양팔에 부모님 팔짱도 끼고 방문했다. 내 생에 가장 든든한 방패를 좌우로 끼고 있자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입주자 센터(오래돼서 정확한 명칭을 잊었다.)에서 동호수 확인하고 안내를 받아 설렘 가득한 사람들을 지나쳐 내 집으로 향했다. 그제야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내가 세대주라니! 문이 열리고 간단한 안내를 해주신 뒤 안내원분이 자리를 비켜주셨고, 부모님은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하셨다. 건설업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꼼꼼하게 이곳저곳 살펴 알려주시면 나는 열심히 쫓아다니며 스티커를 부착했다. (아빠 최고) 가구 배치를 위한 실측도 잊지 않고 콘센트 위치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해가 잘 들어오는 게 비타민D가 부족할 일은 없어 보였다.(그땐 몰랐다. 여름엔 너무 잘 들어와서 문제라는 것을..) 주변은 아직 공사 중이라 허허벌판이었지만 알 게 뭐람 내 집은 완공됐는데! 상태로 하자 점검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어차피 평생 살 집은 아니니 살면서 불편한 것들만 정리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이 더 편했던 것 같다. 이후 부모님이 먼저 자리를 비우시고 혼자 빈집을 한번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어서 더 넓어 보이는 이곳에 내가 채우게 될 시간들을 상상하며 현관문을 닫고 나섰다.
03.
그 뒤로 한동안 아주 바빴다. 집에 채울 가구를 선정하며 오늘의 집 3D 인테리어로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르겠다. 내가 원한 인테리어의 큰 두 가지 틀은 다음과 같았다. 하나. 방은 오롯이 휴식하는 공간, 둘. 다양한 취미생활이 가능한 작업실 같은 공간. 거실을 정말 쉬는 공간으로 꾸밀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냥 소파에 누워 티비보다 리모컨 떨구고 잠든 내 모습만 떠올랐다. 어우 너무 뵈기 싫을 것 같았다. 생산적인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내 거실의 테마는 작업실이 되었다.
인테리어 소품과 LP 플레이어를 올려둘 수납장과 최대 6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큰 가구 외 가전도 얼마나 고민스러웠는지 모른다. 새로운 시작은 그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인데 새로운 것들을 사고 장바구니에 넣는 건 도파민이 끊임없이 터져 나와 매일이 신났다. 지인들로부터 선물도 쏟아졌다. 독립 선배님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선물들을 내게 보내주셨고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입주가 시작되는 첫날. 나는 수일간 왔다 갔다 하며 애먹이던 대출을 실행했고 카드키를 수령함으로 그 집에 드나들 권리를 취득했다. 실제 내 짐이 들어오는 날은 그다음 날이었지만, 하루 일찍 쥐어진 카드키를 들고 고요한 단지를 가로질러 내가 배정받은 집으로 향했다.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집 문이 열렸고, 지난 하자 점검날 만났던 공간이 쏟아지는 볕과 함께 나를 반겼다. '세상에나! 정말 독립이라니!!' 텅 빈 집을 둘러보며 그 순간 처음으로 현실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이제 온전히 나를 책임져야 했다.
다음날, 셀프 입주청소를 하고 열심히 포장해 뒀던 이삿짐을 옮겼다. 텅 빈 집에 생활감 가득한 짐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며칠에 걸쳐 수납장이 들어오고 화장대, 작업 테이블, 등등이 자리를 잡고 나니 오늘의 집 3D 인테리어로만 보던 내 집이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집처럼 보이기 시작한 건 그 뒤로 한참이 더 지나서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