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버릇을 바꾸니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 편집 후기
제가 이번에 맡은 책은 《말버릇을 바꾸니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입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에 이어 대화법 자기계발서를 다시 한번 맡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출간된 책으로, 원제는 '말하는 법이 9할'입니다.
이번에는 '기획' 면에서는 딱히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제가 이직하기 전부터 이미 계약되어 있던 타이틀이었고, 회사 내에서 이미 '말하는 법을 바꾸면 운이 좋아지고 인생이 좋아진다'라는 컨셉으로 기획을 이미 정해뒀기 때문이지요.
이미 온갖 종류의 대화법을 내세운 자기계발서들이 즐비한 대화법 자기계발서 분야에서는 '한 끗' 다른 컨셉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회사에서는 이미 '운'이라는 키워드, '인생이 좋아진다'는 메시지를 내세우는 컨셉을 준비해뒀던 것이죠. 이 컨셉이 과연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 회의에서 논의해보기는 했지만, 회사에서 이전부터 정해둔 기획이었던 만큼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따라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버릇을 바꾸니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는 아주 쉽게 읽히는 대화법 자기계발서입니다. 일본에서는 출간한 지 1년도 안 되어 18쇄, 판매량은 30만 부(제겐 꿈 같은 숫자)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따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호평받았다고 하는데요. 원서 표지에 실린 독자평 중에 이 책을 읽은 덕분에 학교 토론수업에서 말을 잘할 수 있었다고 하는 초등학생의 독자평이 있어요. ㅎㅎ 그만큼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대화의 본질은 '소통'이라는 점, 기술보다는 태도와 진심을 말에 담는 것을 강조하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글에도 저자가 나름의 진심을 담으려 한 게 느껴져서 좋기도 했구요.
사실 '운'이라는 불확실한 요소가 말버릇 하나 바꾼다고 절로 굴러들어오진 않겠죠. 그리고 말하는 법을 바꾼다는 것은 노력을 요하는 일인데 그로 인해 무언가 잘 풀렸다고 해서 그게 '운'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셀프디스 아니냐고요? 네,, ㅎㅎ '운'은 맥거핀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몇 달전 방영되어 트롯 열풍을 몰고 온 <미스터트롯>이란 티비 프로그램 보셨나요? 저는 어머니를 따라 우연히 보기 시작했는데, 방송을 보다가 알게 된 가수 주현미의 <추억으로 가는 당신>이란 곡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습니다. 한동안 이 노래만 주구장창(규범 표기는 '주야장천'이지만 '주구장창'이 좀 더 말맛이 살지 않나요?) 들었던 것 같네요. 세련된 리듬과 애절한 가사, (다른 트롯 곡들보다) 절제된 기교(꺾기) 덕분에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주현미 - '추억으로 가는 당신'【KBS 토요대행진】, https://youtu.be/P06YORjY_2w)
편집 후기에서 뜬금없이 노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번에 편집한 책의 교정을 보면서 '당신'이라는 대명사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추억으로 가는 당신>에서 애절하게 부르는 그 '당신'. 사실 '당신'에 대한 고민은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의 본문 교정을 볼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쩌면 대화법 자기계발서의 교정 과정에서 자주 마주칠 만한 문제 같기도 합니다.
제가 교정을 보다 고민을 하게 된 부분을 보겠습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의 2부의 21번 글의 제목은 "'당신'을 주어로 말하는 데 익숙해져라"입니다. 이 파트의 핵심 내용은 무례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공격적인 발언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대(무례한 사람)를 문장의 주어로 삼아 말하라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면서 상대를 주어로 삼는 말의 예시를 충분히 보여주지요.
"당신 행동은 내 맘에 들지 않아요."
"그런 말은 당신 자신에게나 해요."
대화법 자기계발서는 이처럼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실제 대화 상황에서 응용해 써먹을 수 있도록 대화 사례를 많이 들어주는 편입니다. 책에 문장으로 쓰이는 글(문어체)과 실생활에서 입으로 하는 말(구어체)의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은 어쩔 수 없이 생기지만, 그래도 저는 교정 과정에서 어색하지 않도록 최대한 구어체스럽게 고치는 편입니다. 하지만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의 이 파트에서는 '당신'을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난감했습니다. 분명 어색하기는 한데, 현대 한국어에서는 (원서에서 쓴) 'You'에 대응할 만한, 실생활에서 범용하게 쓰이는 2인칭 대명사가 없다는 게 문제였지요.
현대 한국어에서는 대화 상대의 직위나 연령 등에 관계없이 상대를 부를 만한(범용하게 쓸 만한) 2인칭 대명사가 없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인칭 대명사로 '너' '그대' '자네' '당신' 따위가 있다고 설명하지만, '너'는 수평적 관계나 아랫사람에게만 쓸 수 있고, '자네' '그대'도 마찬가지지만 실생활에서 입 밖으로 내뱉기엔 너무도 문어체스럽지요. '당신'도 마찬가집니다. 시비 걸고 싸울 때("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나 노래 가사("추억으로 가는 당신~") 말고는 실제로 '당신'을 입 밖으로 꺼낼 일은 거의 없지요.
한국어에서 손윗사람이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상대를 부를 때는 존칭을 붙이거나 직함 등으로 대신 불러야만 합니다. "○○ 씨"가 가장 무난하고 범용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손윗사람에게 쓰는 것은 무례하다 느끼는 사람들이 있긴 하더군요. 이외에 ○ 부장님, ○ 선생님, ○○ 님 등등……
이러한 범용하게 쓸 만한 이인칭 대명사의 부재는 호칭을 신경 써서 골라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관계에 있어 끊임없이 위계를 나누고 상하관계를 의식하게 만드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이처럼 범용하게 쓸 만한 이인칭 대명사가 없는 언어가 전 세계 200개 언어 중 (한국어 포함) 7개밖에 없다고 합니다([슬기로운언어생활] "실례지만 나이가...?" 처음 만난 상대의 나이, 왜 궁금한걸까? https://bit.ly/37VC2Rk).
다시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으로 돌아가서, 본문에 쓰인 '당신' 주어는 대화 상황을 가정한 예시 문장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면에 담기는 글인 만큼 '당신'이라 쓰는 게 그리 어색하게 다가가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결국 '당신'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문제는, 《말버릇을 바꾸니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파트를 다시 만난 것입니다. 이번에는 대화 상황에서 '당신'이라는 말을 많이 넣으면 상대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초고에서는 해당 파트의 제목이 "'당신'이라는 말을 자주 써서 상대를 자신의 팬으로 만든다"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역시나 대화 기술의 용례가 나오지요.
“당신을 만나면 안심이 됩니다.”
“언제나 기분 좋게 대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그런 점이 좋습니다.”
“다들 당신처럼 되고 싶대요.”
역시나 '당신'을 그대로 쓰고 있고, 역시 어색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좀 덜 어색하게 바꾸기로 했습니다.
“너를 만나면 안심이 돼.”, “언제나 기분 좋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그런 점이 좋습니다.”, “다들 ○○ 씨처럼 되고 싶대요.”……
'당신'이란 표현을 일관적으로 쓴 기존의 문장을 수정해 '너'를 쓴 경우와 '○○ 씨'를 쓴 경우를 추가했습니다. 관계의 양상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는 한국어의 특수성에 맞게 대화의 예시 문장들을 손보았습니다. "'당신'이라는 말을 넣어라"라는 식으로 본문에서 설명하는 부분은 "'상대 위주의 언어'를 사용하라"는 표현으로 바꿨습니다. "상대 위주의 언어"도 원서에서 비슷한 의미로 쓰고 있는 표현이므로 대체할 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소 길고 산만하게 쓰긴 했지만, 중요한 건 교정 과정에서 제가 한 고민입니다. 두 권의 대화법 자기계발서를 편집하면서 비슷한 문제에서 다른 선택을 내리긴 했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어의 특성에 맞게, 독자들이 직접 따라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교정을 보는 것이 더 독자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말버릇을 바꾸니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에서는 손을 보긴 했지만…… 사실 제가 신경 쓰는 만큼 독자들은 신경 쓰지 않고 유연하게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면 위에 쓰인 '당신'을 쓴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실제로 대화 상황에서 책의 내용을 응용할 땐 당연히 입말에 맞게 자연스레 바꾸어 적용하겠지요. (독자에게 그 정도의 유연성도 없으리라 예상하는 것 또한 오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권의 대화법 자기계발서를 편집하면서 교정 과정에서 제가 한 고민은 결국 쓸모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편집자의 일이라는 게, 책을 만든다는 게 태반은 그렇게 여겨질 만한 일(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냐는 타박을 받을 만한) 아닐까요? 특히 교정을 볼 때는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오탈자(오타는 자연발생)와 비문처럼 옳은 것과 틀린 것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티가 나겠지만, 몇 차례에 걸쳐 단어 하나하나를 골라가며 섬세히 윤문을 하는 과정은 사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1교를 하고, 2교를 보고, 3교를 거치는 건 그 티나지 않는 디테일이 책을 읽는 독자의 독서경험에 스며들길 바라기 때문이겠지요.
책에서 가끔 서문이나 작가의 말, 혹은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들어가며'와 '나가며'로 쓸 때가 있습니다. 그걸 볼 때마다 가끔 어딜 들어오고 어딜 나간다는 거야?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저도 '나가며'를 쓰고 있자니 나는 어디를 나가야 되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드네요. (물론 지금은 회사이기 때문에 격하게 어디로든 나가고 싶긴 합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어쨌든 편집 후기이니 《말버릇을 바꾸니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의 근황(?)을 소개합니다. 출간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2쇄를 찍었습니다! 회사에서 나름 홍보에 힘을 좀 쓰기도 했고, 오프라인 서점 중심으로 꽤 잘나간 거 같아요. 이직 후 편집을 맡은 책 3종이 모두 올해 안에 2쇄를 찍었습니다. 엄청난 판매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담당 편집자로서 기쁜 일이지요. 지금은 또다른 외서(역시 일서)를 편집 중입니다. 이번엔 건강정보서에요. 드디어 편집 후기가 저의 편집 진행 상황을 따라잡았군요……ㅎㅎ 다음번엔 출간 직후에 편집 후기를 올리는 걸 목표로 삼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