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모 Jan 12. 2021

건강서를 읽을 때 조심하라,
오타로 죽을 수도 있다

《몸은 얼굴부터 늙는다》 편집 후기

네 번째 편집후기이자 2020년 마지막으로 편집한 책은 건강서,《몸은 얼굴부터 늙는다》입니다. 

건강 분야 책은 또 처음이네요(뭘 하든 아직도 처음이 많은……). 

그리고 이 책은 갊(회사 이름 노출하기 싫어 무의미한 써방… 책 보면 다 나오는데 말이죠… 그래도 대놓고 쓰고 싶진 않네요… 일하는 거 같은 기분 들까 봐…)의 건강서 시리즈 '더 건강한 몸과 마음'의 네 번째 책입니다. 시리즈에 포함되는 책도 처음 작업해봅니다. 시리즈라곤 하지만 '건강서'라는 분야만 통일되어 있을 뿐, 형식적인 통일성은 없어서 다른 책 작업과 그리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원서 이야기


원서는 일본 책으로, 원제는 "몸은 얼굴부터 썩는다(부패한다)"입니다. 꽤나 자극적인 제목이죠? 몸 안에 문제가 생겨 몸과 얼굴이 늙고 제 기능을 잃어가는 과정을 책에서는 '썩는다'고 표현합니다. 제목이 어그로가 심하긴 하지만, 책의 내용은 충실합니다. 만성염증과 AGE(최종당화산물)가 우리 몸 안에서 어떻게 노화를 촉진하고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지를 의학적으로 꼼꼼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질병 예방 & 노화 방지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원서의 표지도 제목에 걸맞게 '썩은 얼굴(?)'을 형상화한, 조금 과격한(?) 디자인입니다. 책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효과야 있지만 일반 독자를 위한 건강서치곤 약간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 같습니다. 다만 원서는 글자에 금박을 입힌 띠지를 두르고, 표지 종이도 두껍고 빳빳한 걸 써서 전체적으로 책이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긴 합니다. 









저자는 'KRD Nihombashi 메디컬 팀'입니다. KRD Nihombashi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건강검진 의료시설인데요. 질병을 발견하는 데에만 그치는 기존의 건강검진의 한계에서 벗어나 눈, 치아, 혈액 중심의 상세한 진단을 통해 건강한 생활을 유지·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건강검진을 행한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의 건강정보 이해력, 즉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  향상에 힘쓰고 있으며, 인생 100세 시대에 맞춰 건강에 관한 생각과 건강검진의 개념을 재설계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KRD Nihombashi(KRD 니혼바시라고 표기하는 게 읽기도 쉽고 편하지만, 저작권자의 요구대로 영문으로 표기했습니다)가 지향하는 바가 책에도 아주 잘 녹아 있습니다. 


원서에는 책을 집필한 의료진의 면면과 편집, 감수, 병원의 원장 소개까지 책을 제작하는 데 도움을 준 다양한 인물의 소개가 본문 마지막에 따로 실려 있지만, 한국어판에서는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라도 간단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원장

다나카 다카시田中岳史

준텐도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케임브리지대학교 유학 후, 교토쿠종합병원 원장 등을 거쳐 현역에 이르렀다.


감수

야마기시 쇼이치山岸昌一 (내과의)

가나자와대학교 의학부 졸업. 쇼와대학교 의학부 내과학 강의 당뇨병, 대사, 내분비내과 학부 교수이다. 당뇨병과 심장병 연구에서 노화의 원인 물질인 AGE를 집중 연구해 일본 당뇨병학회상, 미국 심장병협회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AGE 연구의 일인자로 평가받는다.


다카하시 마사요高橋政代 (안과의)

교토대학교 의학부 졸업. 이화학연구소 다세포시스템 형성연구센터 망막재생 의료연구개발 프로젝트의 프로젝트 리더로서 타인의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로 만든 망막의 세포를 이식하는 세계 최초의 임상 연구에 성공했다. 주식회사 비전케어 대표이사이자 망막 연구의 일인자이다.     


이즈미 유이치和泉雄一 (치과의)

도쿄의과치과대학 졸업. 도쿄의과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종합남동부병원 오럴케어 페리오센터 센터장이다. 치주병과 전신과의 관련, 치주조직 재생치료, 치과 레저치료 전문의로서 다수의 난치병 사례에 임했다. 치주병학, 치주치료학의 일인자이다.


집필 협력

오타 노부다카太田信隆 

홋카이도대학교 의학부 졸업. 도쿄대학교 대학원 의학부 비뇨기과 조교수, 도쿄대학교 의학부 부속병원 혈액정화요법부 부부장 등을 거쳤다. 2003년 1~2월에는 헤이세이 천황의 전립선 적출 수술을 담당하고 도쿄대학교 병원 주치의단으로 진료에 종사했다. 2019년 4월 현재 오카모토이시이병원 비뇨기과에서 비뇨기 및 남성 갱년기장애 등을 전문으로 맡고 있다. 

    

마스다 유미増田由美

교린대학교 대학원 의학연구과 박사과정 졸업. 도카이대학교 의학부 의학과 객원 준교수로 예방의학, 심신의학, 항가령의학 전문이다.



집필진의 상세한 이력은 한국어판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는 아니었고, 이들보다는 KRD Nihombashi라는 의료시설이 어떠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고, 어떠한 가치와 지향을 담은 의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를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저작권자와의 협의를 거쳐) 저자를 'KRD Nihombashi 메디컬 팀'으로만 표기했습니다. 




제목과 표지 이야기


책의 편집 방향을 정할 때 가장 고민했던 것은 '원서의 컨셉을 그대로 살릴 것인가'였습니다. 제목은 원서의 컨셉(얼굴 노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서 가는 것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문제는 디테일을 어떻게 가느냐였습니다. 원서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서 "몸은 얼굴부터 '썩는다(혹은 부패한다)'"로 갈 것인지, 조금 순화시켜 '늙는다'로 바꿀 것인지, 아니면 좀 더 풀어서 문장형 제목("얼굴 노화를 멈추려면 염증부터 잡아라" 등)으로 갈 것인지를 두고 회의를 했습니다. 결국 원서의 제목이 가진 미덕을 살리되, 혹여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썩는다'는 표현을 포기하고, '늙는다'로 정했습니다. 


표지도 제목과 비슷한 맥락에서 정해졌는데요. 처음에 디자인 의뢰를 할 때는 얼굴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일러스트가 들어가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디자이너에게 의견을 드렸었습니다. 저희의 제안에 맞게 (이번에도 역시 하나하나 버리기 아까운 ㅜ.ㅜ) 시안들이 도착했고, 또 시안을 두고 여러 번의 지난한 회의를 거쳐…… 지금의 시안으로 정해졌습니다. 

현재의 표지는 사실 애초에 구상했던 방향과는 가장 거리가 먼 시안이었는데요. 비록 얼굴 형상은 아니지만, 쭈글쭈글한 사과의 형상과 "몸은 얼굴부터 늙는다"라는 제목이 간결하게 딱 배치되었을 때 오히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사실 한국어판 표지와 제목만 놓고 보면 꽤나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원서와 비교했을 때는 한국어판의 제목과 표지가 외려 조금 에둘러 표현하는 셈입니다. 원서의 직설적으로 꽂아주는 컨셉의 장점을 계승하되,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간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렇듯, 이번 책을 작업하면서는 원서와 계속 비교하면서 컨셉을 고민했다는 점이 지금까지 했던 다른 외서 작업과는 조금 달랐던 점이네요. 물론 이전 책들도 원서를 참고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원서 컨셉과 비슷한 결로 간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본문 이야기


정해둔 일정표대로 최대한 맞춰 진행하려는 편인데(일정 지키는 거야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워낙 변수들이 많은지라……), 이번에는 본문 교정에서 일정이 조금 밀려서 부랴부랴 후반 작업을 진행해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의학적으로 몸속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책인 만큼 전문적인 의학 용어가 많이 나오고, 이러한 용어들이 일본에서 쓰는 용어와 한국에서 쓰는 용어가 달랐기에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오래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우측 백면(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면)이 많이 나와서 백면을 줄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본문이 쭉 이어지다 왼쪽 면(페이지)에서 끝이 나고 다음 장이나 부로 넘어가면서 오른쪽 면(페이지)이 공백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오른쪽 면이 백면이 생겨버리면 독자 입장에선 인쇄 사고로 느껴질 수도 있기에, 단행본 편집에선 금기사항(?) 중 하나인데요. 이럴 땐 교정을 하면서 본문 양을 줄여서 왼쪽 면에서 끝난 본문 글을 그 이전 페이지(오른쪽 면)에서 끝나게 하거나, 늘려서 백면이었던 우면까지 글이 오게 만듭니다. 이번엔 아무리 궁리해도 본문을 늘리거나 줄일 수가 없어서 골치가 아팠는데요. 어쩔 수 없이 백면으로 내보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편집장님의 도움을 받아 우측 백면을 다 없애고 대수를 겨우 맞춰 마감했습니다……. 그래서 인쇄를 넘기기 전까지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 이렇게 쫓기면서 넘기는 게 너무 싫어서 인쇄 넘기는 날이 오기 전에 최대한 끝내놓으려 하는 편인데, 번번이 끝까지 이렇게……ㅎㅎ 


책의 5쪽에 보면, '얼굴'에 관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명언이 실려 있습니다. '얼굴'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의 메시지와 잘 어울려서 (사실은 대수 맞추는 데 2p가 부족해서……) 싣게 되었는데요. '얼굴'과 관련한 명언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던 중 이런 섬뜩한 명언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Be careful about reading health books. You may die of a misprint.     
건강서를 읽을 때 조심하라, 오타로 죽을 수도 있다.

- 마크 트웨인 Mark Twain


………………


건강서를 편집하고 있던 편집자로서 너무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명언을 보고 정신 차리고 열쓈히 교정을 봤던…… 저 말의 무게가 꽤 무거워서 건강서는 당분간 안 맡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지만, 생각해보니 건강서가 아닌 그 어떤 책이라도 오타(혹은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진실, 혐오의 메시지)를 담았을 때 누군가를 죽이거나 되돌리지 못할 상처를 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편집자의 책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 마크 트웨인의 명언, 인쇄해서 사무실 책상에 써붙여놔야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으로 가는 '당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