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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모 Jan 28. 2022

편집은 누군가의 인생책을 만들 수 있을까

독서모임 다다다_인생책 함께 읽기_《책이 입은 옷》

*이 글은 독서모임 다다다의 첫 문집 《섭동》에 실린 글입니다. 2021년 독서모임 다다다에서 진행한 '인생책 함께 읽기' 모임에서 읽은 책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2018년 3월 무렵이었다. 출판 편집자로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며 도서관과 카페를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독서모임 다다다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한겨레출판학교의 편집자 교육과정이 2017년 12월 초에 끝났으니까 네 달가량 백수로 지내던 때였다. 공고가 나는 출판사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그해는 내가 서른 살이 된 해였고, 그때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꽤나 늦은 나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매우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속절없이 가는 시간이 야속했고, 이력서를 넣은 곳의 수가 늘어날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파고 내려만 갔다.

그날도 느려빠지고 낡아빠진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머리 빠지도록 자소서(ㄹ)를(을) 고치고 있었다. 한참 그렇게 창작의 고통과 씨름하다 지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서가를 거닐며 하나같이 손길을 많이 탄 티가 나는 도서관 책들의 지친 등을 보며 쉬던 차에, 눈길을 끄는 제목을 발견했다. “책이 입은 옷.” 간결한 제목이지만, 눈길이 갔고, 곧 손길도 갔다. 서가 앞에 서서 몇 쪽을 훑어보다가 이내 책상에 자리를 잡고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싶었기에, 이 책의 제목에 더 관심이 갔고, 책 표지를 다루는 내용에 더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아직 편집자로서 일을 해보지 않은 채, 꽤나 낭만적으로 편집자라는 직업을 바라봤던 그때는 아래의 문장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비평가 S. P. 로젠바움은 헨리 제임스의 표현을 인용하며 버네사 벨의 표지를 텍스트의 ‘시각적 메아리’라고 정의했다. 작가로서 나는 이 ‘시각적 메아리’를 찾지만 자주 실패한다. (38쪽)


나도 텍스트의 ‘시각적 메아리’를 찾아줄 수 있는 편집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좀 생각이 다르다. 다르다기보다는, ‘텍스트의 시각적 메아리’와 함께 또 하나의 표현을 동시에 떠올리며 고민한다.


책이 세상을 향해 짓는 표정

(민음사TV, “어서와, 출판사는 처음이지? 출판사 A to Z | 민음사가 알려드림”, 2019.5.31., https://youtu.be/KOB1toJuX7E)


이는 민음사의 박혜진 편집자가 민음사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책 표지는 어떻게 결정되나요?”라는 질문에 답하며 나온 말이다. 그는 덧붙여 세상이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우리도 다른 표정을 짓듯이, 책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나는 편집자로서 책의 표지를 고민할 때, ‘텍스트의 시각적 메아리’와 ‘책이 세상을 향해 짓는 표정’ 사이에서 진동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책이 담은 텍스트에 충실한 표지가 될지, 아니면 세상과의 접점을 넓히는 데 비중을 두는 표지가 될지 고민하는 것이다. 더 거칠게 말하면,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고민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줌파 라히리는 어디까지나 책에 담긴 텍스트를 직접 창작하는 저자이기에, 아무래도 자신의 텍스트를 잘 대변해줄 ‘시각적 메아리’를 찾고 싶어하는 것 같다. 반대로 출판사 마케터나 영업자, 대표는 얼마나 잘 팔릴 것인가에 주로 비중을 둘 것이다. 편집자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로 그 중간 어드메인 것 같다. 편집자의 일 대부분이 저자든, 역자든, 디자이너든, 마케터든, 독자든 책을 둘러싼 모든 이의 중간에서 원고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도록 ‘조율’하는 것이니까.

다만, 책이 짓는 표정이 원고가 품은 속내와 너무 괴리될 때,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속마음은 그렇지 못한데 억지로 즐거운 듯 웃음을 짓는 것만큼 어색하고 안타까운 게 있을까. 보기 좋은 표정은 웃는 표정이 아니라 속마음을 제대로 드러내는 표정이 아닐까. 진심으로 슬퍼서 짓는 울상보다 티 나는 억지웃음이 더 보기 싫지 않을까. 물론 울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는 원고라면, 적어도 억지웃음을 짓게끔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윗 문단의 문장 대부분이 의문문인 이유는 내 안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로서 표지에 대한 내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서 적었듯, ‘텍스트의 시각적 메아리’와 ‘책이 세상을 향해 짓는 표정’ 사이에서 진동하며 나아가고 있다. 진동하는 과정은 어질어질하지만, 그래도 기준이 되는 축이 있다는 게 어딘가. 『책이 입은 옷』은 내가 진동할 수 있는 하나의 축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인생책으로 고른 건 이 때문은 아니다.


내가 『책이 입은 옷』을 인생책으로 고른 진짜 이유는, 이 책과의 만남이 순전히 예측하지 못한 우연한 발견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일상은 예측 가능한 독서로 가득 차 있었다. 독서모임 두 곳에 참여하고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점점 계획적인 독서의 비중이 늘어갔다. 자소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기 위해, 면접에서 한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 지원할 출판사의 책들을 사전 조사하여 분석적으로 읽던 때였다. 내가 읽을 책이 어떤 주제를 다루는지,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분야는 무엇인지… 사전에 정보를 접하고 독서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한 일상에서 벗어나 정말 오랜만에 “예상할 수 없고 참조할 것 없는 자유로운 독서”를 한 기분. 물론 『책이 입은 옷』은 엄연히 제목도, 표지도, 표짓글도 있는 만큼 줌파 라히리가 말하는 “발가벗은 책”이라 할 순 없다. 다만 적어도 이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한 과정이 우연했기에 “발가벗은 책”에 가깝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읽은 『책이 입은 옷』은 오랜만에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 나만의 책을 발견한 듯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다. 구직의 초조와 불안에 떠밀린 독서만 하다가 그와 전혀 상관없는 독서를 하게 된 것이 해방감을 주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읽었던 책이 되려 편집자로 일하는 지금 내가 일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발가벗은 책의 침묵, 그 미스터리가 그립다. 보조해주는 자료가 없는 외로운 책 말이다. 예상할 수 없고 참조할 것 없는 자유로운 독서를 가능케 하는 미스터리. 내 생각에 발가벗은 책도 스스로 설 힘이 있다. (49쪽)


편집자로 일하는 나의 일상은, 어쩌면 그때보다 더 예측 가능하고 계획된 독서로 가득찼다. 편집자로서 알게 된 것들이 더 많아지고 알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기에, 앞으로 우연한 독서를 다시 하긴 더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예측 가능하고 계획된 독서라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결국 좋은 책은 울림을 남긴다.

다만 가끔은, 『책이 입은 옷』을 발견했던 그때처럼 “예상할 수 없고 참조할 것 없는 자유로운 독서”를 해보고 싶다. 우연한 만남이 주는 예측 불가능한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다시 한번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나의 인생책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겠지.


한편으론 내가 『책이 입은 옷』을 읽게 된 과정이 우연해 보이지만, 그 우연이 성립할 수 있도록 만든 수많은 요소 중에는 편집자가 개입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도서관 서가를 따라 펼쳐진 낡은 책등의 배열 속에서 나는 ‘책이 입은 옷’이라는 제목 덕분에 눈길이 멈추었고, 만만해 보이는 책 크기와 두께 덕분에 쉽게 손길이 갔고, 아담하지만 야무진 양장제본과 무난하지만 평온한 느낌을 주는 표지 그림 덕분에 지친 와중에도 별다른 저항 없이 페이지를 펼쳤다. 페이지를 스르륵 훑었을 때 눈에 들어온 책 말미의 컬러사진들 덕분에 한 번 더 흥미가 동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에 편집자는 편집으로 개입할 수 있다. 『책이 입은 옷』이 내게 인생책이 될 정도로 특별한 독서경험을 안겨주었던 것은 당시 나의 아주 사적인 심리 상태가 좌우한 면이 크지만, 그 만남의 과정에 편집이 은근하게 스며들어 있지는 않았을까 되짚어본다.

내가 편집한 책이 누군가에게 우연한 만남으로 가닿아 특별한 순간으로 남는다면 좋겠다. 그 특별한 우연을 만드는 게 과연 ‘편집’일까. ‘편집’은 누군가의 인생책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만들기 위해, 편집이라는 과정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나는 부단히 진동하며 조금씩

나아가고자 한다.


표지는 책에 비하면 피상적이고 무시해도 좋을 만큼 무관하다. 표지는 책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이 두 문장은 다 옳은 말일 수 있다. (27쪽)


《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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