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맨 인 더 다크〉(Don't Breathe, 2016)를 보고
이 영화의 잘 짜여진 서스펜스(히치콕을 언급한 마케팅은 무리수라고 생각하지만……) 와 빠른 리듬으로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강도 높은 폭력은 보는 동안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또한 디트로이트주의 유령마을, 그리고 맹인이 거주하는 집을 보여줄 때 그 공간의 아우라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아마도 기술적인 면에서 이 영화는 뛰어난 것 같다. 이러한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고 실제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장르영화로써 맘 편히 즐기기 힘들었다.
하나, 맹인이 여주인공을 잡은 뒤 바닥에서 구타할 때, 이를 비추는 카메라의 로우앵글. 둘, 지하실에 끌려와 묶여 있는 주인공에게 맹인이 다가갈 때 손에 들린 스포이드에서 정액이 한 방울 떨어지는 쇼트의 슬로우모션. 그리고 셋, 그 후 이어지는 유사강간 장면의 쇼트들. 영화를 보면서 역겨움을 느꼈던 지점들이다. 그리고 폭력의 장면들을 다루는 이 영화의 태도에 의문이 생긴 지점들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하게 다가왔던 지점은 스티븐 랭이 연기한 퇴역군인의 육체와 그 움직임의 이미지들이었다. 압도적인 근육과 광포한 짐승을 연상케 하는 몸짓. 소리와 냄새로만 사냥감을 감지하는 어둠 속의 괴물. 이 영화가 전달하는 폭력의 쾌감은 이 퇴역군인의 짐승 같은 움직임에서 대부분 발생한다. 인간임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한 마리 짐승의 육체. 맹인이라는 핸디캡이 주는 서스펜스. 주인공을 잡아 바닥에 눕히고 구타할 때, 로우앵글을 통해 크기와 역동성이 극대화된 채 비추어지는 그 폭력의 이미지. 영화는 이 캐릭터가 뿜어내는 폭력의 쾌감에 매혹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캘리포니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여동생과 함께 공항에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엔딩씬. 이 장면을 마냥 해피엔딩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공항 내 티브이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에서 맹인의 생존 소식을 주인공이 목격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판단을 미뤄둔 채 고난을 통과한 주인공에게 큰 보상을 안겨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것은 장르영화 엔딩의 클리셰이다(가장 최근의 적절한 예시로 한국 영화 〈끝까지 간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영화〈맨 인 더 다크〉의 엔딩씬은 이러한 클리셰에 대한 일종의 도덕적 보완으로 보인다. 고난과 역경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은 부당한 방식으로 큰 보상, 혹은 꿈을 이루게 된 주인공에게 공포의 족쇄를 남겨둠으로써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아마도 주인공은 바다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도 맹인에게 쫓기는 듯한 심정으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영화 〈맨 인 더 다크〉에서 가장 큰 악행을 저지른 자는 과연 누구인가? 주인공이 맞이한 엔딩의 도덕적 문제를 환기하기 위해 생존시킨 자는 더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자가 아닌가. 영화는 주인공의 보상에 대해서는 엔딩씬을 통해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지만 이 남자의 악행에 대해서는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 인물을 다른 인물의 도덕적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한 용도로 생존-재등장시켜도 되는 일일까. 맹인에게 어떠한 법적 처벌이 가해졌다는 뉴스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엔딩 끝까지 주인공에게(그리고 관객에게) 감정의 해소를 선사하지 않는 영화의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영화는 누구의 편에 서 있는 걸까? 아니, 누구의 잘못에만 관심이 있는 걸까?
영화를 처음부터 볼 때, 관객은 어느 편에 서서 감정이입하게 될까. 맹인이자 퇴역군인, 딸의 교통사고 사연, 딸의 어릴 적 비디오를 튼 채 홀로 외로이 잠든 독거노인일까 아니면 그의 집에서 돈을 훔치려는 어설픈 삼인조 도둑일까. 앞을 못 보는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Who are you?"라고 내뱉는 노인이 안쓰럽지 않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윽고 지하실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관객은 감정이입할 대상이 사라지는 혼란을 겪게 된다. 결국 다시금 주인공들이 살아남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관객의 몰입에 대한 경고를 엔딩에서 하는 셈이다. 주인공은 '남의 것을 훔친 도둑'이고 '부당하게 취한 이득으로 이룬 꿈에서 평온을 찾을 수는 없어야 한다'고 이 영화는 믿는다. 하지만 영화는 맹인의 악행에는 관심이 없거나 은밀하게 매혹되어 있다.
폭력의 쾌감을 즐기는 것은 장르영화를 즐기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 폭력이 영화 안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어떠한 맥락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맨 인 더 다크〉는 장르영화라는 틀 안에서 도덕적 질문을 던지기 위한 의도를 담은 쇼트를 엔딩씬에 배치함으로써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질문이 가리는 것, 질문되어지지 않은 쪽에 영화가 매혹되어 있고 그래서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