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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duaa Oct 22. 2022

나 별일 있이 산다

나 경원쓰, 서른인디, 커서 뭐가 될지는 모르겠어

햇수로 6년을 다닌 첫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동안 출판 편집자로 62권의 격주간 잡지와 20권의 단행본을 만들었다.


별다른 일도, 하루 이틀도 아닌데, 회사를 직원들에게 나눠 주고 싶다는 대표의 호의가 불쑥 '너 평생 이렇게 일해도 괜찮겠어?'라는 자문으로 돌아왔다.


지금의 직장은 평생의 복을 다 끌어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커리어로도 존경할 만한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었고, 일도 손에 익어 처음만큼의 긴장과 스트레스 없이 해낼 수 있게 된 참이었다.


누군가 어떻게 지내느냐 물으면, "나야 늘 똑같지"라는 대답을 몇 년째 반복하던 단조로운 날들. 장기하의 노래에 따르면 남들이 들으면 배 아파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지 못할 정도로 부러운 별일 없이 별다른 걱정 없이 사는 팔자였다.


아랫목처럼 뜨뜻하고 안락한 이곳을 박차고 나가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하려고, 돈 받고 하는 일이 다 똑같지, 이 일도 좋아서 시작한 일이잖아, 하고 마음은 호기로운 나를 열심히 뜯어말리고 있었지만, 머리는 그만두겠다는 말을 어떻게 전할까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고 있었다.


쓰다 보니 보통은 이성이 객기를 말리고 감성이 충동을 저지른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감성이 퇴사를 뜯어말리고, 이성이 퇴사해야 할 이유를 톺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영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아 아주 조금 안심이 된다.


하여간 그래도 뭐가 불안한지 오랜만에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쓴다. 보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팀장님들은 모두 퇴사하고 책 한 권씩 쓰셨더랬다. 전에 그 책들을 읽을 땐 마냥 멋있었는데, 퇴사라는 첫 경험을 하고 보니 무작정 때려치울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과 막무가내 퇴사의 당위성을 찾기 위한 버둥질로 다가온다.


지금부터 쓰게 될 나의 글 역시 대책 없이 호기로운 선택을 한 나 자신을 설득하는 과정이자, 직업 없이 너는 어떤 모양으로 세상에 발 붙이고 서 있을래? 하고 닦달하는 물음에 답하는 과정이 될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무난하고 성실한 99%의 일상과 똘기와 객기라 부를 수 있는 선택을 내지른 1%의 순간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삶의 큰 방향은 어쩐지 그 1%의 선택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떠다녀온 지금의 행적이 그리 나쁘지 않으니, 이번의 선택도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려나.


별일 없는 삶에 별일을 만들어 놓으니 일단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누군가 어떻게 지내느냐 다시 물어온다면 신이 나서 말할 것이다.

"나 경원쓰, 서른인디, 커서 뭐가 될지는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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