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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사 Sep 01. 2015

알랭드보통 -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보편화를 통한 특별화 전략

소설이란 무엇일까.

이것저것 적잖게 읽어댔지만, 가장 쉬운 말로 해보자면 역시 소설은 이야기일게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람을 홀리는 구석이 있다. 우리는 보통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가가 펼쳐놓은 세상 속에 빠져들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희노애락을 겪으며 소설 속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이처럼 소설은 작가가 뽑아낸 사건이 시작과 끝이요, 그 사건의 주체로서 활약하는 인물이 그 이야기 속의 가장 중요한 것을 쥐고 있는 주인공이 된다. 현실에서 우리의 삶은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사건들에 의해 묻히고 평범해진다. 그러나 그것이 소설이 된다면 달라진다. 미미한 일상은 특별한 사건이 되고, 평범한 사람 역시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설 읽기를 즐기는 이유는, 아마도 바로 그 특별함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은 소설의 이런 '특별화 전략'을 완전히 뒤집는다.


이야기는 줄거리를 말해보자면 참으로 민망스럽다.

한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파리발 런던행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 만남을 지속시키며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 속에서 행복해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한때 삶의 일부를 나누다 결국은 헤어지고 홀로 남은 남자는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고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는 이야기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길 작가가 소설로 쓴다면, 남자와 여자는 주인공이 되고, 이들의 연애는 아주 특별한 색채로 빛나는 근사한 로맨스가 되는 법이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은, 그렇게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는다.


철학을 전공했고, 이 처녀작 이후로 상당히 많은 재미난 에세이를 쓴 작가는 소설이 가진 태생적인 특별화 전략대신 에세이의 보편화/객관화 전략을 끌어온다. 그리고 뻔하디 뻔한 로맨스를 분석하고 일반화시킴으로서 소설속 주인공들의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행동과 말을 분석해 그들의 감정을 보편화시키고 주인공들을 다른 보통 사랑에 빠진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강등시켜버린다.


그것은 목차만 보아도 명확하다.


낭만적 운명론, 이상화, 진정성, 회의주의와 신앙 등등.

작가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에서부터 그들의 만남과 사랑을 특별화시키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와 사고 패턴을 분석하고 보편화시켜 하나의 명제-목차 제목-로 끌어낸다. 그리고 이 방식에서 그는 수많은 서양철학을 레퍼런스로 사용하여 자신의 설득력 있는 해석에 권위마저 부여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계획보다 우연에 의해서 목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실증주의와 합리주의의 정신에 심취한 구애자, 세심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사랑에 빠지는 법칙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믿는 구애자에게는 기운이 빠지는 이야기다. 구애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덫에 걸 사랑의 고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일을 진행한다. 어떤 웃음, 의견, 포크를 쥐는 방식 같은 것. 그러나 불행하게도, 설사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고리가 존재한다 해도, 구애의 과정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계산이라기 보다는 우연에 의해서이다. 사실 클로이가 어떤 행동을 했기에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장점에 대해서 그녀가 나와 의견이 같다는 사실만큼이나 그녀가 웨이터에게 버터를 주문하는 모습이 귀엽다는 사실과도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들과 그들의 찬란한 로맨스를 평범하고 보편적인 하나의 명제로 만듬으로서 자신의 소설 자체를 다른 로맨스 소설들과 차별화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나면 남는 것은 클로이와 나, 혹은 그들의 사랑이 아닌 이렇게 독특하게 사랑 이야기를 쓴 '알랭 드 보통'이다.

참으로 영리한 작법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서 끝났다면 우리는 이 소설을 이토록 즐겁게 읽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사실은, 알랭 드 보통이 자신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불멸의 로맨스를 희생함으로서 아이러니하게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 개개의 경험을 투영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위에 적은 인용문을 예를 들면, 보통이 객관화한 저 사실은 클로이와 화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나와 내 연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쓴 이 즐거운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읽으면서 두 사람의 연애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둘이 어떻게 연애를 하고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보다는 각자가 체험했던 연애의 과정들을 되짚으며, 알랭 드 보통이 정의해준 명제에 나의 경험을 비교하고, 상당히 적극적으로 작가의 생각과 나의 것을 상호교환함으로서 생동감 넘치는 독서의 즐거움을 얻게된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소설인가.

단지 읽는 것만으로도 내 이야기가 그 속에서 뽑아져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가장 매력적이고 근사한 점이다.




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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