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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사 Aug 28. 2015

아멜리에와 함께 하는 몽마르뜨, 파리여행

2002년도 기사

영화 아멜리에를 좋아해서 파리를 갔을 때 첨부된 지도를 보고 돌아다녔어요.

이후로도 블로그 옮길 때마다 누락하지 않게 리뉴얼하는 포스팅입니다.


'아멜리에' 트리비아 모음


아멜리에와 함께 하는 몽마르뜨-파리 여행

제5회 부천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많은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멜리에>의 촬영지를 찾았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멜리에>는 사 랑스런 여자 아멜리에의 엉뚱한 행복 릴레이로 영화 <델리카트슨> <에이리언 4>의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네 번째 작품. 영화 촬영 이후 몽마르트르는 `아멜리에 풀랭의 거리`가 되어 또다시 많은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파리에 들를 계획이라면 아멜리에의 자취를 따라 몽마르트르의 뒷골목을 산책하는 것도 색다른 여행의 즐거움이 될 것 같다.
                                                                  

르느와르가 즐겨 그렸고, 로트렉이 거주하며 많은 무희들을 그리던 물랭루즈가 있는 곳, 화가와 시인들의 만남의 장소, 준엄하지만 고압적이지 않은 사크레쾨르 성당과 그 뒤편 구석진 곳의 아기자기한 포도밭이 어우러진 곳, 그래서 '몽마르트르적인'은 '낭만적인' 또는 '예술적인'의 형용사와 등식을 이루는 곳, 지금은 눈썰미 좋은 화가들이 그 많은 중국인들과 일본인들 속에서도 한국인들을 알아보고 서툰 말로 "안뇽하세요"나 "초쌍화"라는 말로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관광 매커니즘이 자리잡아 낯선 거리를 내밀하게 느끼는 개인적인 기쁨은 덜해진 곳. 몽마르트르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이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에서 몽마르트르는 이 모든 것 이전에 '아멜리에 풀랭의 거리'가 되었다.  

아멜리에 풀랭. 지금 모든 프랑스인들이 거의 동시에 사랑에 빠진 여인이다. 빨간 옷을 즐겨 입고 취미로 하는 물수제비를 위해 늘 주머니에 조약돌을 챙겨두며, 주위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놓기 위한 선의의 사실 조작은 항상 완벽하게 적중하고, 못마땅한 이에게는 애교 있는 응징까지 서슴지 않는 이 순진한 소녀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어린 시절의 기억 저편에서 참으로 낯익다. 빨간 두건의 소녀, 엄지동자, 장화 신은 고양이, 선녀 등 익숙한 동화 속의 캐릭터들을 짜깁기한 듯한 아멜리에는, 그러나 말하는 동물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숲 속이나 호젓하게 자리잡은 마법의 성에 살지 않는다. 그녀가 사는 곳은 저마다의 걱정과 불만을 일상의 부대낌으로 그럭저럭 해소하는 이웃들이 모여 사는, 파리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작은 아파트이다.

아멜리에라는 커다랗고 까만 눈을 가진 소녀가 주위 사람들의 인생을 은밀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바꾸어놓고, 자신도 환상적인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 <아멜리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극장으로만이 아니라 영화가 촬영된 장소인 몽마르트르로도 끌어들였다. 브라질의 화가 후아레스 마카도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레드와 그린이 지배하는 화면 속에서, 몽마르트르는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현재와 노스탤지어가 사이 좋게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악평이 더 이상 관객몰이에 영향을 주지 못할 정도로, '이벤트'가 되어버린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새롭게 주목받는 장소가 되었다.


감독인 장 피에르 주네는 그의 세 번째 장편 영화 <에일리언 4>를 촬영하기 위하여 2년 동안 머물렀던 로스앤젤레스에서 파리로 돌아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스튜디오를 벗어나 촬영해본 적이 없는 그이지만, 눈앞에 펼쳐진 원하던 모습의 동네를 두고 돈이 많이 드는 스튜디오 공사를 따로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렌즈를 통하여 현실과 판타지, 특수 효과와 시적 정서가 절묘한 궁합을 이루는 장소로 몽마르트르의 뒷골목을 화장시켰다. 그들이 가진 몇 가지 호오에 대한 취향으로만 익살스럽게 소개되는 악의 없는 등장 인물들에 소소하고 남루한 일상을 불어넣어 현실감을 주듯, 영화를 위해 벽의 낙서를 지우고 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를 모두 철수시키고 브뤼노 테리의 포스터로 단장한 몽마르트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영화 속의 바로 그 카페, 그 식료품 가게 등을 통해 실재하는 장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사크레쾨르 성당 부근을 지나 아베스 광장 서쪽의, 삶의 현장감이 물씬 풍기는 곳에서 아멜리에와 그 이웃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언덕 위에 대문과 담장의 특징을 달리하여 위치한 고급단독주택들과 좁고 가파른 골목길의 허름한 아파트들이 대조를 이루는 주택가,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된 골목길과 사이사이의 작은 계단들, 낮은 건물에 다닥다닥 붙은 상가에서 북적거리는 동네 사람들. 바로 그곳에서 아멜리에가 일하던 카페, 심술궂은 식료품상, 정육점 등을 거짓말처럼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신은 지금 아멜리에 풀랭의 거리에 와 있습니다'라는 초록색 플래카드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울 만큼 평범하고 일상적인 곳이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철 12호선을 타고 아베스 역에서 내리면 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아르누보 스타일의 전철역이 우리를 맞아준다. 20세기 초에 세워진 것으로 1975년에 재보수되었다고 한다. 아멜리에의 집 앞 전철역이기도 하고 아멜리에와 남자 주인공인 니노가 처음으로 우연히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주변의 작은 상점들은 겉보기에 화려하진 않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감각과 창의성으로, 질리지도 않고 매번 감동하게 만든다. 하얀 벽에 단출하게 들여놓은 몇 개의 책상과 파란색 투명 패션 컴퓨터가 전부인 중개사 사무실에 트로이 헨릭슨의 작품을 전시하여 갤러리를 접목시킨 '코넥션'도 그 중의 하나이다. 개봉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멜리에>를 상영하고 있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르 스튜디오 28(Le Studio 28)'도 있다.   

개성이 다른 상점들을 지나 아베스 광장 서쪽으로 계속해서 걷다보면 르픽가에 들어서게 된다. 예쁜 미니 케이크들보다는 바게트와 다양한 종류의 푸짐한 빵들이 유리 진열장을 통해 보이는 제과점, 한쪽 귀가 떨어져 나간 소머리의 모형이 정문에 걸려 있는 정육점, 피에로 구르망의 사탕가게들을 파노라마하노라면 그 맞은편에 카페 겸 담배가게 두 물랭(두 개의 방앗간)이 보인다. 바로 아멜리에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곳이다. 아멜리에를 비롯해서 카페 주인 수잔, 담배가게 주인 조제트, 실패한 소설가 이폴리트 등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영화의 많은 부분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물랭 라데와 물랭 드 라 갈레트 사이에 위치해서 두 물랭으로 이름지었다 한다. 몇 개의 의자와 테이블을 문 앞에 내놓아 만든 노천카페, 카페 한 켠의 작은 담배가게, 바 등 평소에도 손님들로 북적거리던 이곳은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이제 먼 곳에서도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의 순례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영업을 중지하고 영화 촬영을 하던 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와, 자신이 배우이고 그래서 담배를 팔 수 없음을 설명하는 이자벨 낭티(담배가게 주인 조제트 역)에게 "그건 내 알 바 아니니, 어쨌든 내 담배나 주소"만을 반복해대던 동네 사람들이 간혹 있었을 정도로,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친숙하고도 필수적인 곳이다. 채 썬 당근 샐러드와 바삭바삭하게 튀긴 치킨이 특히 맛있다고. 커피는 바에 서서 마시면 6프랑, 테이블에서 마시면 11.5프랑. 맥주는 각각 12프랑, 22프랑선.

르픽가를 빠져나와 아베스가의 오른쪽으로 가면 트르와 프레르가가 나온다. 거의 모든 관객에게 타이밍이 일치하는, 공모와도 같은 웃음을 자기 한몸 희생하여 선사한 심술궂은 콜리뇽 씨가 운영하는 메종 콜리뇽이 있는 곳이다. 아멜리에가 사는 건물의 바로 옆 1층에 자리잡은 식료품점으로,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 파리의 동네 곳곳 대형 슈퍼 체인의 빈틈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로 주인은 아랍인이라는 점에서 전형성을 확보하고 있는 아랍상점들 중의 하나이다. 이 식료품점의 진짜 주인으로 형제인(대단한 우연은 아니지만 식료품점이 위치해 있는 길의 이름은 트르와 프레르, 즉 삼형제라는 뜻이다) 알리 엠두기와 압둘라 엠두기 씨는 영화의 데커레이션을 위해 붙여놓은 '메종 콜리뇽, 1957년 창립'이라는 간판을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 진짜 '메종 콜리뇽'이 된 것이다. 단 벽에는 '알리네 가게'라는 같은 스타일의 글자를 덧붙여 놓았다. 아멜리에의 상상 장면에 쓰인 꽃과 나뭇잎 장식도 그대로 두어 조촐한 길가의 한 켠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장소가 되었다.


이제 아멜리에가 니노와 처음으로 랑데뷰를 하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회전목마로 가보자. 하얗게 솟아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을 배경으로 하얀 목마들이 알록달록한 불빛을 번쩍이며 돌아가고 있는 회전목마 광장에는 이미 아멜리에가 효과적으로 이용하던 공중전화는 없다. 그렇지만 니노가 어리둥절함과 설레임으로 수수께끼를 풀듯 오르던 언덕은 있다. 언덕을 오르며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자면, 장소가 이야기를 만들고 등장인물들에게 생기를 부여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계단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면 단칸 지하철 같기도 하고 대형 케이블카 같기도 한 퓌니퀼레르를(요금은 지하철과 동일하다) 타고 올라가 파리 시내를 전망한 후, 슬슬 내려올 때 계단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그밖에 영화 속에서 아멜리에가 변장을 하기 위해 들르는 파티용품점과 물수제비를 뜨는 셍 마르탱 운하도 몽마르트르와 더불어 반가운 장소가 되었다.
팍스 코티옹이라는 파티용품점에는 모형 쥐와 거미, 폭죽, 자석을 이용한 피어싱, 잘린 손가락, 각종 가면 등 자잘하고 기발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물건들이 잔뜩 들어 있어 가게 안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들뜨고 재미있는 기분이 된다. 2층에는 슈퍼맨, 캣우먼, 광대, 후크 선장 등 얼마든지 각종 영화나 동화 속의 인물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의상들이 소품과 함께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대여료는 의상의 가격에 따라 3백~9백프랑 선이며, 최근에 영화 속에서 아멜리에가 입었던 조로 복장(4백 프랑)을 대여해 가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고.

파리의 동북쪽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며, 발미 부두와 제마프 부두 사이에 있는 셍 마르탱 운하는 도시 한복판에서 시골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와 운하의 양편에 늘어선 나무들이 특히 여름에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산책하거나 벤치에 앉아 담소하는 사람들, 운하를 마주한 도시를 그림으로 옮기는 사람들, 풍경에 구색을 맞추려는 듯 지나치게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는 연인들을 볼 수 있다. 좀 앉아 있다 보면 정기적으로 지나가는 유람선을 위해, 간격을 두고 안배된 다리들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것도 구경할 수 있다. 


만약 파리에 오게 된다면 아멜리에의 자취를 따라 셍 마르탱 운하를, 몽마르트르의 뒷골목을 산책해보자. 영화 속의 바로 그 장소를 찾아 사진만을 찍기보다는, 직접 들어가 보기도 하고 천천히 거리를 둘러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분위기를 느껴보자. 그건 유명 박물관을 방문 코스로 지시되는 화살표를 따라 설명서를 참고하며 일괄적으로 둘러보는 것보다는, 아무런 매뉴얼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 장소일 뿐인, 사르트르가 자주 들러 글을 썼다는 카페를 찾는 것 같은 행위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낭만적이고 이상화된 추상적 세계를 실재하는 공간을 통해 구체화하려 애써 보는 것 말이다. 커피를 마시다가 카페 안의 어디선가 운 좋게 사르트르의 정신세계와 교감하듯, 몽마르트르의 어느 골목에서 불현듯 당신의 운명을 바꿀 아멜리에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디터·신영미 / 글·장소미(프리랜서) / 사진·알렉상드르 베샹브르(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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