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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보러 서울 간다

엄마의 서울여행

by 이디뜨

'딸 보러 서울 간다'

사십 대 중반의 엄마는 대학생 딸 보러 서울 가는 일정이 가장 설레는 일이었던 거 같다. 서울 가야 해서 이번 달 계모임에, 절에서 하는 봉사에 빠져야 한다고 신나게 선언하고 서울길에 오른다. 그것이 지방소도시 사는 엄마의 일탈이자 여행이었다.

무궁화호 기차를 타거나 일반고속버스를 타고 대여섯 시간을 달려가면 엄마 눈엔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였을 큰딸이 못 보던 옷을 사 입고 반짝반짝하게 마중을 나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3월 초 서울살이 해야 하는 딸을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터미널에서 터진 눈물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 고속터미널이 몇 달 사이에 딸과 만나는 설레는 여행지가 되었다.

장소는 채색이 안 된 스케치북이다. 딸을 두고 내려가던 터미널은 눈물로 그린 그림이었고, 딸 보러 여행 오는 터미널은 무지개색 반짝이 그림이니 말이다.

남대문, 홍대 앞, 이대 앞 딸이랑 호떡도 사 먹고 떡볶이도 사 먹고 돌아다니던 그때 그 거리는 엄마를 스무 살로 돌아가게 한 마법 같은 곳이었을까? 엄마에게는 일상탈출 여행이었던 시간이 나에게는 충전의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엄마표 갈치조림,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다니..... 애를 써도 삐져나오던 경상도 사투리어투에 부끄러워하고 세련된 서울친구들 사이에서 어딘가 주눅 들었던 작아진 마음이 엄마가 부린 마법의 갈치조림에 희석되었다. 고작이 아닌 엄마의 대단한 갈치조림이 나를 다시 서울에서 살게 하는 힘이었으니 말이다.

강산은 두 번이 바뀌고 세 번째 바뀌어 갈 때가 된 지금.. 엄마는 하늘나라로 여행을 가셨고 나는 그때의 꼭 나 같던 딸아이를 기다리며 소고깃국을 끓인다.

딸 보러 서울 간다를 손녀 보러 서울 간다로 바꾸게 한 엄마의 첫 손녀, 바로 내 딸이 그때의 나다. 예쁘다 최고다 다 잘한다 손녀에게 하도 칭찬해 대시던 덕에 할머니 돌아가시던 중학생 때까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예쁜 줄 알았다던 딸이다.

엄마가 아직 계셨으면 삼대의 우리 셋은 같이 호떡 떡볶이를 사 먹고 내리사랑이지만 그 반대이기도 할 애정을 주며 충전의 시간을 가지겠지. 그 시절을 떠올리면 엄마의 설레는 서울여행이 갈치조림의 맵싹 한 맛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던 내 서울살이의 추억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제 엄마 음식솜씨의 절반도 못 따라갈 내 솜씨로 끓여낸 소고깃국을 우리 딸은 엄마 집밥이라고 먹고 힘을 낸다. 딸을 보며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 오늘 밤엔 내 꿈으로 여행 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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