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수능 도시락의 속설을 믿으시나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날은 올해 11월 13일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지인의 고3 아들이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을 싸달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유가 의외이면서도 신박했다.
"엄마! 수능도시락으로 미역국을 싸주세요. 혹시 시험에 미끄러져도 미역국 핑계를 댈 수 있잖아요."
평소 공부를 좋아하지 않지만, 재치가 있고 성격이 좋은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임의 일원들은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수능도시락에 대한 각자의 일화를 쏟아냈다.
"소화 잘되게 죽을 싸줘요. 수능 도시락으로 죽을 먹으면 시험에 죽 쑨다는 속설이 있지만, 우리 아들은 수능날 죽을 먹고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했어요."
"소고기뭇국이 소화가 잘 되고 자극이 없어서 좋은 메뉴 같아요."
"우리 애는 기숙학원에서 싸준 도시락을 먹고 시험을 쳤어요."
기숙학원 도시락을 먹은 아이는 그해 수능을 아주 잘 쳐서 입시 결과가 좋았다고 한다.
"밥 한번 먹자.", "밥 먹고 해.", "밥 먹었어?"
우리나라는 마음을 주는 대부분의 인사에 '밥'이 빠지지 않는다. 한국인의 이러한 특성이, 엄마표도시락은 '밥으로 하는 응원'이자, '가장 강력한 부적'이라고 믿게 되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사정상 도시락을 싸주기 힘든 부모님들도 계시고, 요즘은 김밥 전문점이나 도시락 전문점도 다양해서, 기원하는 마음만 있다면 엄마표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나도 아이가 "수능 점심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 먹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 프랜차이즈에 줄을 서서라도 그것을 싸줄 것이다.
엄마들이 수능 도시락을 싸는 마음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비숫하다.
12년 동안의 학교 생활에 대한 결실을 맺는'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좋은 컨디션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고 오라는 마음이야 다 같지 않을까?
정말 빵을 먹으면 빵점을 받을까?, 죽을 먹으면 시험에 죽 쑬까?,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질까?
속설일지라도 그날만큼은 불안한 마음을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그런 미신 같은 믿음과 속설을 쉽게 무시하고 넘어가지 못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지켜서 나쁠 것이 없다.'
내가 철저하게 피한 음식은 바로 미역국이다.
수능 전에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에, 첫 아이 시험을 시작으로 적어도 수능 두 달 전부터는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
사실 나는 2022년부터 내리 3년 동안 수능 도시락을 쌌다.
연년생인 첫째, 둘째가 3년 동안 수능을 친 것이다.
나의 도시락 메뉴는 카레나 주먹밥, 유부초밥, 소고기뭇국과 과일, 보리차 등이었다.
초콜릿이나 주스도 챙겨 주었다.
실제로 미역국을 끓이지 않은 것과는 상관없이, 아이는 첫해 수능을 망쳤고, 재수도 큰 성공은 아니었다.
세 번의 수능을 거치며 나는, 입시란 결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올해는 수험생이 없기 때문에, 한해 건너뛰고 내년에 수능도시락을 싸게 된다. 이번엔 셋째 차례다.
대학 입시 유경험 학부모로서, 또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예비 수능 학부모로서, 해마다 이맘때면 긴장된 마음으로 11월을 보내곤 한다.
이맘때의 수험생 부모님들은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러우며, 과도한 긴장 때문에 놓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참에 수능 당일 학부모로서 기억해 두어야 할 사항 몇 가지를 적어볼까 한다.
현관에서 나가기 전 도시락 챙겼는지 확인
차에서 내릴 때 도시락 챙겼는지 확인
교문 앞에서 인사할 때 도시락 들고 갔는지 확인
수저랑 물티슈, 물 챙겼는지 확인
보온도시락 뚜껑 잘 열리도록 한 김 식히고 닫았는지 확인
만약을 대비해 간단한 소화제 챙기기
수험표와 학생증(신분증) 챙겼는지 확인
여분의 필기구와 수정팬, 컴퓨터 사인펜 챙겼는지 확인
아날로그 손목시계 챙겼는지 확인
아이 도시락 가방이나 옷에 실수로 전자기기 넣지 않기
옷은 언제든 벗거나 입을 수 있도록 얇은 옷 겹쳐 입히기
또 아이가 혼자 가고 혼자 올 수 있다고 해도, 웬만하면 직접 데려다주고, 시험이 끝날 때 마중 나가서 교문 앞에서 반겨 주면 좋다.
일 년에 한 번인 날인 만큼 과도한 관심도 괜찮다고 본다.
수능 날 뉴스에 나오는 변수가 우리 아이에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2년 전 아들이 나에게 자기는 식곤증이 올까 봐 도시락을 안 먹을 거라고, 싸주실 필요가 없다고 했었다.
모의고사 때에도 급식을 잘 먹지 않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싸줄게.' 하고 싸준 주먹밥 도시락을 너무 맛있게 먹고 시험을 쳤다고 한다.
도시락 아니었으면 기력이 없어서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끝나고 혼자 오겠다는 말에도 교문까지 데리러 갔더니, 나를 만나자마자 수능 시험이 어땠는지 종알종알 이야기를 쏟아냈다.
수능이 끝나면 긴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가채점 점수와 실제 수능 점수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 성적표가 나올 때까지는 과한 기대도, 성급한 실망도 잠시 접어두었으면 한다.
수능을 잘 쳐도 원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성공이 아닐 수도 있고, 수능을 망쳤다고 생각해도 입시란 원서영역과 예비 번호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사실 입시는 대학에 문 닫고 들어가는 케이스가 가장 성공하는 것이다.
수능을 앞두고 학부모로서 몇 번의 입시를 겪으며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제 딱 1년 뒤 수능을 치게 되는 우리 집 셋째도 언니, 오빠가 겪은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서 수능 날 실수로 변수를 만드는 일이 없도록 잘 챙겨 주고 싶다.
내년 이맘때에도 미역국은 안 끓이지 않을까?
2026학년도 수험생분들 응원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행운이 따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