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생일

미완의 스물셋, 딸에게 전하는 응원

by 이디뜨

생크림과 초코가 반반인 생일 케이크를 배경으로 Happy Birthday 축하 장식을 해놓고, 큰아이의 스물셋 생일을 축하했다.

작은 아이가 언니가 등장하기 전에, 아이유의 '스물셋' 노래를 틀었다.

생일인 딸아이는 영상을 찍으며 거실로 나오고, 흥이 많은 남편은 갑자기 춤을 췄다.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둠칫 하는 남편 뒤에서, 아빠가 갑자기 춤을 춘다며 민망해하며 아이 생일을 축하했다.

그 모습이 영상에 고스란히 남았다.


"엄마! 나 벌써 스물셋이야. 스물셋은 이십 대 초반일까? 중반일까?"

"초반이지. 아닌가. 중반인가? 에이! 초반이야. 세상에! 딸이 벌써 스물셋이라니..."

한 살이라도 어리게 살고 싶은 스물셋은 초반으로, 얼른 서른이 되고 싶은 스물셋은 중반으로 말하고 싶을 것이다.

스물셋, 참으로 예쁘고 찬란한 나이이다.

대학생이라면 대학 생활의 절반을 지난 시점이고, 취업을 일찍 한 사람이라면 어엿한 사회인으로도 손색없는 나이이다.




나는 스물셋에 대학교 4학년이었다.

방학 때마다 본가에 내려가 지냈지만, 4학년이 되는 방학이라 학교 도서관에 다니며 토익 공부를 하고 알바를 했었던가?

개강 후 4월쯤에는 교생실습을 나갈 예정이었고, 임용 시험에는 뜻이 없었다.

취업에 대한 막연한 걱정에,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들을 뽑아 읽으며 미지의 길 앞에서 불안함을 잠재웠다.

새 학기가 되고 명동성당 옆의 여고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고1 같은 반에 배정된 영문과 윗 학번 언니 둘은 원래 학교에서도 둘이서만 붙어 다니는 절친이었다.

나는 한 학번 아래이자, 복수전공인 영어 과목으로 실습을 나갔기에 조금은 주눅 든 상태로 실습을 시작했다.

언니들은 교육학 수업들을 들으며 안면을 익혀서인지, 직속 과 후배가 아님에도 나를 잘 챙겨 주었다.

학생들도 "차분한 선생님이 좋아요."라며 내게 다가와 주고 나를 잘 따랐기에 많이 웃으며 지냈다.

한 달간의 실습은 우려와는 다르게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든 채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교생 실습 기간 중반쯤 되던 어느 아침이었다.

지각할까 봐 헐레벌떡 지하철역으로 뛰어내려 가다가 지갑에 차비가 똑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문이 열린 반찬가게에 뛰어들어가 5000원만 빌려 주실 수 있겠냐고 사정했다.

커트머리의 눈이 큰 아주머니께 5000원을 빌려 겨우 그날의 왕복 차비를 썼다.

장사하는 입장에서 마수도 안 한 가게에, 돈을 빌리러 불쑥 들어온 불청책이 반가울 리 없었을 테다.

다시 받을 기대는 1도 없다는 서늘한 시선으로 5000원을 뭉툭하게 건네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마음 한편 얼음장 같은 추억으로 떠오른다.

현금을 찾아놓지 않은, 준비성 없는 나를 자책했다.

여유 있게 일어나지 못해서 헐레벌떡 내리막길로 뛰다가 강도처럼 가게에 들이닥친 내 모습.

지우고 싶었던 초라한 스물셋의 하루였다.




4학년 여름방학도 선풍기 앞 낮잠 속 꿈처럼 지나갔다.

마지막 학기라는 아쉬움 때문인지 시간은 미끄러지듯 나의 스물셋을 빠져나갔다.

IMF 직후, 세기말이었다.

이미 취업한 선배들도 취업 유예 연락을 받거나, 어학연수를 다녀와 몇 군데씩 붙어서 골라가던 2~3년 전에 비해 취업 상황이 좋지 않던 시기였다.

그때의 나는 어문계에다 교육학 수업을 주로 들었기에, 임용 시험 대신 취업을 선택한 것이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임용 시험도 어렵긴 마찬가지였겠지만.

몇 번의 서류 탈락에 어깨가 한껏 쳐진 상태로 학교 컴퓨터실에서 할 일을 마친 어느 저녁이었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를 부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 속에서 내 마음을 읽었을까?

누구도 강요한 적 없지만, 나는 휴학도 안 되고, 빠른 졸업과 취업만이 내게 허락된 선택인 줄 알았다.

"왜? 취업 준비가 힘들어? 대학원 갈래?"

엄마는 불안에 허우적거리던 딸에게 시간유예를 주시고 싶었던 걸까?

여섯 시간의 거리에 있어도 엄마 표정을 볼 수 있었고, 물기 어린 엄마 목소리에 충분히 위로를 받았다.




스물셋 4학년 2학기의 막바지 11월 22일, 나는 학습지와 잡지, 전집을 내는 출판사 공채에 편집부 신입사원으로 추가합격되었다.

운이 좋은 추가 합격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이미 신입사원 연수에 들어갔는데, 나는 합격전화를 받고 하루 뒤엔가 오후에 합류했다.

교생실습 때 복수전공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서 스스로 주눅들며 시작했던 때처럼, 같은 방 동기들에게 늦게 합류했는지 설명이 필요한 합격이었다.

설명이 필요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당당함을 의미한다.

스물셋의 나는 당당함이 필요한 아이였다.


나의 스물셋은 반반 케이크 중간에 꽂힌 초처럼 빛나지만 흔들렸다.

자주 불안하고, 중간에 낀 것 같았다.

내향적 성격 탓에 눈치도 많이 보았던 시기였다.

그러지 않아도 됐었다.

충분히 열심히 했고, 아직 어렸다.

추가합격이어도, 어떤 선택을 했어도 다 괜찮은 시기였다.

휴학을 했어도, 아직 대학생이 아니었어도 어떠랴.

엄마가 어렵게 선택지로 제시한 대학원을 갔어도 어떤 길이 열렸을 것이다.

지금이야 유연하게 생각할 여유가 있지만 그땐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복수전공 과목으로 교생실습해도 당당해도 돼. 회사도 추가로 합격하면 운이 더 좋은 거지."




스물셋 딸아이 생일날, 아이에게 생일 편지를 건넸다.

너무 잘하고 있고, 그래줘서 고맙다고 썼다.

딸아이는 학교도 잘 다니고 알바도 하고, 그 맘때 나는 엄두도 못 냈던 방학 해외여행도 다니며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스물셋이 이십 대 초반인지 중반인지 정의 내리고 싶어 하는 마음 한켠에 자리한 아득함과 불안함을 알 것 같다.

딸에게 말해 주고 싶다.

스물셋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열정을 식히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재능을 찾아 마음껏 방황해도 된다고.

세월이 변해 살기가 팍팍해졌다고 해도, 그래도 되는 나이라고.


I'm twenty three.

난 수수께끼 Question

뭐게요. 맞혀봐요.


아이유의 '스물셋' 노래의 가사처럼, 수수께끼 같은 너의 스물셋을 너만의 답으로 찾아가길.

그리고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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