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마주했을 때

직접적 표현보다 잠깐의 침묵이 나은 순간

by 이디뜨

가족들과 저녁 외식을 하기 위해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한 상가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로 가는 복도에,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긴 줄에 묶여 통로 한가운데에 있었다.

아마 약국에서 볼일을 보는 주인을 기다리는 듯했다.

강아지에 닿거나 스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강아지를 이렇게 두면 어떻게 지나가?"

나는 지나가지 못하고 잠시 서서 말했다.

곧이어 주인인 듯 보이는 분이 나타나 강아지를 안아 길을 터주었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막내딸이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엄마! 방금 엄마의 태도가 좀 그랬어."

"왜? 줄을 길게 묶어놓아서 강아지가 좁은 통로 가운데 있었잖아. 엄마 무서워서 못 지나가는데?"

"엄마! 그럴 땐, '무섭다' 생각만 하면서 기다려주는 게 좋겠어. 강아지 주인이 그 소리를 들을 수도 있잖아."

나지막한 목소리에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식구들만 듣는다 생각하고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금세 주인분이 와서 강아지를 안았다.

내 소리를 들었거나 발길을 멈춘 것을 보고 달려왔으리라.

편하게 나오는 사투리 억양이, 불평 가득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었을까?

딸의 표현에 의하면, 무서워하는 줄 모르면, 강아지에게 짜증 내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란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큰 개는 물론이고 작은 아기 강아지, 고양이까지, 동물들이 가까이 있으면 무서워한다.

누가 잘 안고 있거나 잘 묶여 있으면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을 하지만, 닿을 것 같으면 무섭다.

멀리 혼자 돌아다니는 강아지가 있으면, 살짝 공포를 느끼고 가던 길도 돌아간다.

제일 당황스러웠던 상황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 어느 층에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강아지만 먼저 뛰어들어와 타고 주인분은 나중에 타는 경우이다.

그럴 때 내가 티 나게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딸들이 상대방 감정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강아지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키우시는 분들이 보기에, 나처럼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 시장통에서 달려오는 개가 무서워서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던 트라우마가 있다.


"엄마는 무서워서 그랬지. 나도 무서워서 못 지나가고 있었고."

나처럼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큰딸이 살짝 엄마 입장을 옹호해 주었다.

둘째 딸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한 마디 보탰다.

"무섭다고 너무 직접적으로 싫은 표현을 하지 않는 게 낫긴 해."


식당에서 나는 옆에 앉은 막내에게 내 생각을 전했다.

"엄마가 네 말 듣고 생각해 봤어. 그런 상황에서 누가 직접 듣던 안 듣던 무섭다 생각만 하거나 말조심하는 게 낫겠어. 그게 품위 있는 행동 같아."

듣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는 태도, 배려 없어 보이는 말투를 지적해 준 딸아이가 내 눈에 다시 보였다.

새해가 되어 중2가 되는 딸아이가 오히려 엄마에게 예절교육을 시키는 것 같은 상황이 아이러니하지만, 말이 앞서기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신중한 태도가 몸에 배었다면 그것도 칭찬할 일이다.
무섭거나 불편한 상황에 너무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침묵 속 기다림이 낫다는 당부.

비슷한 상황이 오면, 막내딸의 말이 먼저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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