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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대, 족적을 찾아내다

금붙이와 함께 잃어버린 평온

by 이디뜨

"들어오세요. 이쪽이 베란다예요."

'과학수사 police'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과 경찰분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베란다 쪽으로 안내했다.

긴장감 속에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린다.

'잃어버린 게 금붙이인 게 다행이다.'

뉴스나 드라마에서 강력범죄 수사에 보이던 과학수사대가 도둑 든 우리 집에 온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여기 보이세요? 여기 족적이 남아 있네요. 이쪽으로 타고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어요."

족적, 발로 밟고 지나갈 때 남는 흔적이다.

과학수사대는 베란다 난간에 보일 듯 말 듯 남은 흔적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일단 더 조사해 보고, 특이사항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발견 당시 상황이나 없어진 물건들에 대해

다시 얘기해 주실 수 있어요?"

"뒤늦게 알게 됐는데, 어떻게 알았냐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그때 우리 집은 아파트 2층 끝집이었다.

대단지 아파트이고 늘 사람이 북적대는 곳이라 2층이라도 도둑의 표적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도둑님이 자기가 왔다간 걸 알아채지 못하면 서운할 수도 있을까?

웃픈 얘기지만 이틀이나 지나서야 도둑님이 왔다가신 걸 알았다.

그해 여름 어느 토요일, 외출준비하며 화장대서랍을 열었는데 금붙이들이 없었다.

평소 화장대 서랍에 툭 놓거나, 손바닥 만한 주얼리박스에 두기 때문에 발이 달리지 않는 한 없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막내 낳던 겨울 내 생일에 넷째 낳은 기념으로 남편이 사다준 목걸이며, 외출할 때 꼈다가 집 오면 벗어놓곤 했던 예물 팔찌, 14k 귀걸이 몇 개, 봉투에 현금 얼마까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다행히 장롱 안 한복보자기 아래에 둔 예물상자 속 결혼반지는 그대로 있었다.

부부 둘 다 손이 부어 끼지 않고 보관해 둔 게 다행이었다.

'서둘러 가져가느라 장롱 속은 못 뒤졌구나.'


당시 네 아이 육아가 버거워 겨우 밥 먹이고 씻기고 학교 보내는 것도 힘든 때였으니, 폭탄 맞은 집은 일상이었다.

책, 장난감, 이불, 개지 못한 빨래. 기저귀 등 저학년 아이 둘과 유치원생, 젖먹이 아이 있는 집의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화장대 서랍이 반쯤 열려 있어도, 바닥에 이불이 흩어지고 여기저기 물건들이 드러누워 있어도 아이들 손이 아니라 도둑의 손을 탄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지인들한테 도둑맞았노라 얘기했지만,

도둑님이 언제 왔다 갔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했다.

'아기 있는 집이라 거의 집을 비우지 않는데 언제 왔다 간 걸까?'


금붙이가 사라진 걸 안 건 토요일

목요일 저녁, 아파트 장이 선날 저녁 아이들과 바람 쐬러 집을 비웠었다.

아이들 씽씽이, 자전거, 유모차까지, 좀 요란한 외출이긴 했다.

2층 베란다 앞에는 나무가 우거져 낮엔 해가 가려지고, 저녁이면 넓적한 나뭇잎으로 커튼 친 듯하여, 불 꺼진 걸 확인 후 문 열린 베란다로 타고 넘어온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목요일 저녁이네. 틀림없어."

그즈음 남편은 퇴근이 늦을 때였다.

"이틀이나 지나도록 도둑 든 것도 모르다니, 그게 가능해?"

"부끄럽지만 가능해. 치워도 순식간에 어질러진다고."

"어쨌든, 누구 다치거나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안타까워하는 지인들과 나눈 대화다.

안심하고 사는 일상이 침범당했다는 사실에 무서워졌다.


과학수사대가 다녀간 후, 도둑을 잡았다는 연락은 없었다.

족적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갔기에 베란다를 타고 왔다는 건 확실하니, 괜한 2층에 화살을 돌렸다.

"그때 저층을 택하는 게 아니었어."

집을 구할 때 아무리 끌어모아도 기준층 구할 돈은 안 되고, 급매로 나온 걸 찾다 보니 2층이었다.

이전 집도 같은 이유로 2층이었기에, 이번에도 비용에 맞춰 선택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몇 달 뒤 우리는 이사를 했다.

남편 출근거리도 멀다는 것 포함 여러 가지 이유를 끌어댔지만

도둑님이 왔다가신 집은 더 이상 안온하지 않았다.

아이들 학교, 유치원 2분 거리, 정들었던 지인들...

놓고 싶지 않은 조건도 불안함을 이기지는 못했다.

갑작스럽게 아빠가 돌아가신 지 두 달이 채 안된 때여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상태이기도 했다.


그렇게 선택한 다음 집은 5층이었다.

"도둑이 5층까지 타고올라오진 않겠지? 적어도 5층은 안전해."

새로 이사한 집에서 아이들은 잘 자랐고, 여전히 치우고 살긴 버거웠지만 도둑으로부턴 안전했다.


요즘 아기 키우는 집들처럼 집에 홈캠이 있다면,

폭탄 맞은 집처럼 어수선하지 않았다면,

더 빨리 알아채어 도둑을 신고하지 않았을까?


2층도 살기 좋았다.

엘리베이터 기다릴 것 없이 오르락내리락 가능하고 창밖 눈높이 나무의 사계절을 감상할 수 있으니...

하지만 다시 2층을 선택한다면 문단속은 꼭 하리라.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매일매일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내야 하는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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