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험실의 축소판 '나는 solo'를 보다
"엄마! '나는 solo' 할 시간인데?"
설거지를 하다가 급하게 마무리하고 소파에 자리한다.
수요일 밤의 내 루틴,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solo' 시청을 위해서다.
소파 한편에 빨랫감을 쌓아두고 개면서, 때로는 맥주 한잔과 오징어 땅콩을 먹으면서 본방사수를 한다.
가족들도 잘 알고 있는 수요일 밤 엄마의 루틴이다.
안방에서 쉬고 있던 남편이 '나는 solo' 할 시간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와 한마디 한다.
"또 봐? 그게 그렇게 재밌어? "
"재밌지. 당신은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도 했잖아."
"얘들아! 집에서 보지 말고, 너네 크면 저런 프로그램에 꼭 나가. 아빠처럼... 저런 경험은 젊을 때 해보는 거야."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남편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우리 남편은 90년대 후반 연애 예능 프로그램인 '사랑의 스튜디오' 출연자이다.
시대를 건너 2000년대 중반에 솔로였다면 '짝'이라는 프로그램의 남자 3호나 4호로, 요즘 시대에 라면 '나는 solo' 프로그램에 '상철'이나 '광수'로 출연했을 사람이다.
활달한 성격의 남편은 본인을 드러내는 것에 거침이 없다.
소위 얼굴을 팔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흥미로운 경험을 선택한 것이다.
그 옛날 엄마가 즐겨 보시던 '사랑의 스튜디오'에 남편이 출연했다는 사실은 처음에도 놀라웠지만, 우리 집에서는 계속 두고두고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되는 주제이다.
그때 녹화해 둔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화해서 한 번씩 볼 수 있게 집안 '가보'처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에게 자식들이 생겨도 할아버지 20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결혼해서는 '짝'이라는 연애프로그램을 함께 즐겨 봤었다.
본인의 '사랑의 스튜디오' 출연 경험을 또 들으면서...
"저런 프로그램에 나가는 사람들은 용기가 대단해. 나라면 못 나가. 출연료가 1억이라도..."
아이들 중 누군가 덧붙인다.
"엄마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이렇게 TV로 보는 건 너무 재미있는 걸, "
나는 나를 드러내기보단 혼자 있을 때 편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다.
카메라 앞에 선 남자, TV 앞에 앉은 여자
바로 우리 부부의 이야기이다.
남편이 나온 '사랑의 스튜디오'의 녹화본을 보았다.
그땐 '자기소개 시간'이라는 코너도 없어서, 등장과 동시에 나이와 직업, 실명을 자막과 함께 공개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미남)을 얻는다'
'용기 있게' 개인 신상을 온전히 오픈하여 짝을 찾는 것이다.
출연자의 실제 모습과 편집된 모습에 괴리가 클 수 있다는 것을 방송녹화본을 보고 알았다.
남편은 TV 출연이라는 떨리는 경험 속에서 잔뜩 긴장한 것 같았다.
임성훈 아나운서와 어느 미스코리아, 두 진행자가 부여하는 어떤 코믹한 '캐릭터'를 입고, 짝을 찾는 데 진지하게 임하지 못했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 자주 몰이당하는 모습이었다.
아마 지금 '나는 solo'에서 '상철', '영식' 등 어떤 이름들에 부여된 이미지였을 것이다.
결국 그 방송에서 세 커플이 탄생했다.
남편은 다시 '다시 solo'가 되어 가족들과 지인들로부터 방송 본 후기를 들으며 한동안 웃음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solo'는 그저 연애 프로그램이 아니다.
'사람을 본다'라는 이름의 장르, 인간실험실의 축소판이다.
사랑은 남의 것일수록 더 뚜렷하게 보인다.
화면 속에는 자막도 있고 편집도 되어 있고, 무엇보다 감정도 또렷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누굴 좋아하고,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은 상처받고, 썸 타는 상대가 없거나 러브라인이 안 잡히는 사람은 거침없이 편집된다.
좋은 스펙과 외모,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연애에 있어서는 서툴고, 이성들한테 몰표를 받는 출연자가 정작 짝 찾는 데 관심이 없을 때도 있다.
몇 회만 지나면, 시청자들은 감정의 재판관이 되어 "영수는 진심이 없어 보여", "정숙은 너무 계산적이야." 같은 말을 쏟아낸다.
모임의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연인이나 배우자를 찾으러 온 사람들은 연애보다 빠른 속도로 평가당하고, 짧은 시간 안에 스펙과 외모를 비교당하고, 최커(최종커플)가 되었는지, 지금은 현커(현재커플)인지 관심받는다.
정제되지 않은 모습으로 실수라도 하는 날엔 악플세례를 받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방송이 끝난 후에도 마치 연예인처럼, 좋거나 나쁜 유명세를 치른다.
행동과 감정은 공개되었지만, 진심을 완전히 보여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나는 solo'를 본다는 건 사실 그들의 감정이 아닌 우리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영수, 영호, 영식, 광수, 순자, 현숙, 옥순 등등 익명의 이름 속에 감정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거 같고, 어떤 사람은 나를 닮았다고 느낀다.
그들이 보여 주는 감정에 몰입하는 건 사실 나 자신의 마음에 반응하는 것,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과 같다.
나 또한 어렸을 때, 젊었을 때 서툰 감정과 미숙한 행동으로, 떠올리면 이불속 발차기 할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을 테니...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우정을 쌓고, 방송이 아니라면 만나지 못할 먼 지역의 사람,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거나 갈등하는 모습도 볼거리이다.
단체생활에서 좋아 보이는 태도나, 저런 행동은 지양해야지 하는 것도 타산지석으로 배운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을 보는 것이 너무 흥미롭다.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고 '짝'을 찾는 그런 류(?)의 사람이 내 배우자인 것도 재미있다.
그렇게 나는 매주 수요일 밤 TV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