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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년 만의 폭염, 찜통 속 만두가 된 우리

쉽게 터지지도 부대끼지도 말고 견뎌내자

by 이디뜨

"오늘 최고 기온은 35도를 기록하겠습니다."


등굣길 차 안 라디오에서 아나운서 멘트가 흘러나오자, 뒷자리에서 딸아이가 말한다.

"오늘도 다들 찜통 속 만두가 되어 살아가겠네."

듣자마자 머릿속에 그려지는 동그란 찜통 속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요즘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져 무릎을 탁!


118년 만의 폭염을 기록한 요즘날씨는 찜통과 다르지 않다.

딸아이의 말이 더 듣고 싶어 물음표를 띄운다.

"응?"

"찜통 속 만두가 되어 다들 괜찮은 척 학교에서 사회생활해."

"엄마! 이번 주까지 내야 하는 세특이 7개야."

시험은 끝났지만,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진 딸아이의 하소연이 생각났다.

찜통 속이 아무리 뜨거워도 쉬이 터지거나 옆에 들러붙어서는 안 된다.

뛰쳐나갈 수도 없다.

열기 속에 익고 물러져서 제 역할 다 할 수 있게 견뎌내야 한다.


"찜통 속에 갇히느니 차라리 멸치육수로 뛰어들겠어. 찐만두로 부대끼느니 내 만둣국이 되고 말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만두처럼 동그란 딸아이는 오늘도 찜통 속에서 뜨거움을 견디며 속을 채워 오겠지.

영어, 수학. 국어. 과학에 우정 한 스푼


우리 집 대왕만두는 다행히 시원한 프리미엄 통근버스에 몸을 실어 출근하셨다,

갸름한 큰딸 만두는 지구 반대편 추운 호주에서 신나는 냉동만두가 되어 열심히 굴러다니고 있다.

오늘이 호주여행 3일 차이다.

몸 키우기에 한창인 아들 만두는 원래도 만두킬러이니, 오늘은 단골 24시 멸치국숫집에서 만두와 국수를 사 먹으라고 권해 봐야겠다.

물만두처럼 귀여운 막내만두는 오늘 학교에서 영어리딩 이벤트로 학교에 푸드트럭이 와서 츄러스를 먹는다고 신나서 학교에 갔다.

교육청에서 나와 촬영도 하고, 포인트 쌓인 순으로 한 학년 90명까지 먹게 해 주는데, 자기가 딱 90등이라는 '럭키만두'다.

나는 납작한 만두피에 갖가지 야채와 매콤한 소스를 버무려 먹는 납작 만두다.

내가 좋아하는 만두이니 내 정체성은 납작 만두로 정했다.


내일 약속을 앞두고 추레한 머리가 거슬려 아침에 미용실을 예약했다.

식구들이 오기 전에 오래간만에 미용실 호사를 누려야겠다.

그런데 펌 할 때 머리에 뒤집어쓰는 커버를 쓰면 영락없는 만두가 되겠네. 셀카를 찍어 가족단톡에 올리면 우리 가족들 잠시나마 웃음 짓겠지.

오늘도 찜통을 잘 견디고 돌아오면 잘했다고 시원하게 반겨 줘야겠다.


집에 온 가족이 모이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함께 웃는 만두소가 된다.

서로의 다른 모습에 깔깔거리고 웃어도, 진짜 중요한 순간에 서로를 감싸주는 만두피가 될 테니까

속이 터질 듯한 찜통더위도 함께 이겨내자!

내가 빚은 아롱이다롱이 4인4색 만두 어디서나 속이 꽉 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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