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말다말 무사무탈' 일상 속에 있던 그 말
첫 통신보약 드실 시간 안내
주말 휴무 휴대폰 사용 시간은 19:00~20:00시입니다.
아들의 육군 훈련소 입대 후 첫 주말이 지나갔다. 가족들이 온라인으로 사단 소식을 알 수 있는 네이버 카페에, '통신보약' 가능 시간이 공지로 떴다. 낯선 네 글자 '통신보약'이라는 표현을 보고 나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입대한 훈련병과 전화통화나 카톡연락이 가능하다는 것을 '통신보약'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가족들과 연락하는 시간은 서로에게 보약을 마시는 듯한 시간이겠지.'
"엄... 엄 마!! 흑....."
"아들! 울어??"
"아니... 흑... 난 잘 있어. 흑..."
폰을 든 내 손은 떨리고 질문거리는 넘쳐났다. 입안은 눈물을 삼키느라 말이 삐져나올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사이에 공기는 더 차가워졌고, 오랜만에 듣는 아들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 갈라져 나왔다. 벌써 감기라도 걸린 걸까? 폰 너머 들려오는 아들의 흐느낌과 무거운 분위기 때문인지 앞으로의 540일이 암울하기만 했다.
"아들! 울지 마. 건강 잘 챙기고, 엄마 아빠 걱정은 말고."
나는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수없이 상상했던 대화는 눈물에 젖어 축축했지만, 현실의 통신보약은 그 반대였다. 우리의 대화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산책하는 것처럼 선명하고도 또렷했다. 며칠 사이에 목청이 더 커진 아들의 씩씩한 목소리와 반가움에 들떠 더 또랑또랑해진 내 목소리가 연천과 우리 집을 오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피커 폰 기능을 켜둔 채 통신보약을 마셨다. 남편과 막내까지 동참하여 질문을 쏟아냈다. 아들의 대답 소리가 묻힐세라, 나는 버럭 하고야 말았다.
"잠깐! 아들 목소리 좀 듣게, 다들 조용!!! 차근차근 대답 좀 들읍시다."
정작 제일 많은 질문을 쏟아낸 사람은 나였다.
"잘 때 춥지 않아?"
"밥은 맛있게 잘 나와?"
"화장실은 잘 갔어?"
"동기들이랑 친해졌어?"
30분 넘게 이어진 통화에서, 눈앞에 있는 듯 선명하게 그려지는 아들의 얼굴과 표정이 그대로 재생되었다.
인상 깊었던 대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군대는 군대 맞네. 사회에서 있었던 게 벌써 까마득 해."
이 말속에 많은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보안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였다. 주말마다 통화를 할 수 있으니, 편지도 쓰지 말라고 했다.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같은 날 한 유명아이돌도 자기 훈련소에 입대했다는 것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가까운 생활관에 지내기 때문에 얼굴도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단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폰 갤러리를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한 사진에 아들과 멀지 않은 곳에 그 아이돌이 서 있는 모습이 잘 찍혀 있었다. 알고 찾아보니 보였다.
두 달 전 얼굴천재로 유명한 한 아이돌 겸 배우가 입대했다. 그날 입소식에서 엄마들이 입대하는 아들 얼굴보다 얼굴천재 아이돌 얼굴을 더 열심히 봤다는 재밌는 일화가 떠올랐다.
나는 이번에 동기 훈련병이 된 아이돌의 팬은 아니었다. 하지만, 춤, 노래 다 잘해서 호감으로 생각하는 아이돌이었기에, 왠지 반가운 마음과 내적 친밀감이 들었다. 얼굴천재를 유심히 봤던 엄마들처럼, 아들 수료식 날 나 또한 두리번거리고 있지 않을까?
한 시간 정도의 폰 사용 시간이 끝난 뒤에, 사단 네이버 카페에는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단결! 통신보약 섭취 잘했습니다."
"아들 목소리 들으니 살 것 같습니다."
"통신보약 효과 정말 좋네요."
"내일도 주말이라 좋습니다. 통신보약 또 기대됩니다."
이만한 이심전심이 따로 있을까? 엄마, 아빠들과 '곰신'이라 불리는 여자 친구들이 대동단결하여 '통신보약'을 찬양하고 있었다.
다음 날 저녁에 한번 더 통신보약 시간을 가졌다. 아들의 목소리에는 전날의 씩씩함은 살짝 빠지고 지친 기운이 역력했다. 아들은 주말이라도 일정이 빡빡해서 긴장을 놓을 수 없다고 했다. PX에 잠시 가볼 시간이 주어졌지만, 본인은 힘들어서 휴식을 택했다고 했다. 훈련소에서의 '휴식'은 '대기'와 같은 말이지만, 간식보다는 휴식을 선택한 아들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군대'라는 곳의 특징을 익히 들어왔다. 잘못하면 당연히 혼나고, 잘해도 목소리 크게 하라고 한번 더 시키는 그런 곳이 군대이다. 생명과 안전이 직결되는 곳이기에, 엄격한 규율과 질서는 필수적이다. 비록 아직 훈련병일 뿐이지만, 일주일이란 시간이 군대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짧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본 군대 예능에서는 이 엄격함이 웃음으로 승화되었다. 그렇지만 연예인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그 웃음 속에서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훈련소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딸아이가 얘기해 줘서 떠오른 장면이 있다.
"김영철 훈련병! 눈 떠라! 입 다물어!"
앞사람이 쓴 안경만 삐뚤어져도 웃음이 터질 수 있지만, 긴장을 놓았다가는 '얼차려'를 받을 것이다. 군기가 바짝 들어야 군생활에 더 빨리 적응할 것이기에, 엄마로서 멀리서 응원하는 것 말고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아들이 군대에 간 후 첫날은 아들방을 그냥 두었다. 잠시 아들의 여운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둘째 날 방을 싹 정리하고 나니, 드디어 빈자리가 크게 다가왔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빠 방을 쓰게 된 여동생은 오빠의 입대를 내심 반기는 듯했다.
얼마 전 한 브런치 작가님이, 군대 간 아들의 방과 노트북이 본인 차지가 되었다며 들뜬 분위기로 글을 쓰셨다. 깨끗하게 치운 아들의 방에서 글을 쓰실 생각에 소녀처럼 신나 하시는 작가님의 모습이 생생했다. 나도 아들의 최신형 노트북을 쓰게 되었다. 아들이 입대 전날 마우스의 배터리를 직접 갈아주고, 노트북의 비밀번호도 알려 주었다. 나는 괜히 걱정되어 말했다.
"엄마가 새 노트북 고장내면 어떡해?"
"괜찮아. 오랫동안 안 쓰면 더 안 좋아."
옆에 있던 남편이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아들의 노트북을 쓰지 못하고 있다.
'아말다말 무사무탈'
나보다 군대를 먼저 보낸 언니들의 카톡 대문에서 예전부터 본 메시지이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아무 일 없이 지내기를 기원한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군대, 훈련소, 여행 등 다양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무사함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사용된다고 한다. 2주차가 시작되는 아들의 군대 생활에, 나 또한 매일매일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 될 것 같다.
'아말다말 무사무탈'
지금은 군대 간 아들을 향한 말이지만, 이 말만큼 일상에 가까운 말이 있을까? 어쩌면 공기 같아서 알아채지 못했을지 모른다.
"길 조심히 건너."
"여보! 버스 타러 갈 때 뛰지 마!"
"감기 안 걸리게 창문 닫고 자!"
"가방 너무 무겁게 다니지 마!"
매일의 일상에서 내가 당연하게 해 왔던 말들이, 결국 모두 '아말다말 무사무탈'을 기원하는 말들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별일 없이 지나가는 감사한 일들에 빚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말다말 무사무탈', 입에 착 붙은 이 표현처럼, '감사한 마음' 또한 내 일상에 숨 쉬듯 함께 하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