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껴안은 육아를 추억하다
나는 '독박육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에 '독박'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붙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이는 '부'와 '모' 두 사람이 책임지고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도움의 손길이 있다면 감사한 일일 뿐.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어떤 규칙이 필요하다. 경제적인 부분을 함께 책임진다면 그만큼의 시간할애도 필요하니까, 육아와 가사분담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부부는 각각 일과 육아를 맡았다.
남편은 퇴근 시간이 많이 늦었다. 평일에는 아이들이 잠이 들었을 때에야 퇴근했으니, 온전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나였다. 남편은 가끔 있는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었고, 그땐 주말 특근도 종종 있었다.
연년생 육아가 힘들었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힘들고도 좋은 시간을 온전히 껴안았다.
'힘든데 너무 좋아. 좋은데 너무 힘들어.'
이런 마음이었다. 힘든 것과는 별개로, 남편이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나만 보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다행히 남편이 함께 집에 있는 시간에는 아이들 목욕시키는 일과 재활용 버리기를 맡아 주었다.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 주는 일도 아빠 몫이었기에, 지금도 옛 사진을 보면 아이들이 한 명은 아빠 무릎에 앉고, 한 명은 아빠 목마를 타고 있다. 엄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에게 단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을 한두 살 때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은 드물었다. 나는 큰 아이를 44개월 때 처음 기관에 보냈다.
그 시기 '책육아'가 돌풍을 일으켰고, '엄마표 교육'도 유행이었기에 나 또한 동참했다.
내 하루의 마무리도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끝났다. 양쪽에 두 아이를 눕히고, 한 아이는 수유를 하며 한 아이는 책을 읽어 주며 잠이 들곤 했다. 다음날 일어나 머리맡을 보면 동화책 30권~40권은 쌓여 있었다.
내 관심사가 아이와 동화책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부부간 대화부족으로 이어졌다. 그 때문인지 지금보다 스무 살은 젊었던 그 시절의 남편과 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 위주로 생활하다 보니, 남편은 어느새 후순위가 되었다. 남편에게도 바쁜 바깥일과 오래 볼 수 없는 아이들이 우선으로 보였다.
풍선을 불면 어느 임계점에 도달해 터져 버리듯이, 나 또한 수많은 풍선을 터뜨려야만 견뎌낼 수 있었다. 나만의 출구가 없었기에. 그것은 가끔씩 '바락바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락바락'에 따라온 것은 '버럭버럭'이었다.
아이 넷 다둥이 부모가 되어서까지도, 서로 자기가 더 힘들다고 알아달라고, 얼마나 많은 날을 아내는 '바락바락', 남편은 '버럭버럭' 했던가? 그러면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아이들 덕분에 웃고 나면, 나는 마치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처럼 남편에 대한 서운함도 잊어 갔다. 그때 책육아를 한답시고 동화책만 읽어주지 말고 나를 위한 독서도 할걸 그랬다. 그랬다면, 고생하는 남편에게도 좀 더 현명하게 대할 수 있었을 텐데...
눈앞에서 떨어지는 테트리스처럼 인생이란 블록을 맞추며 살아오다 보니, 이제 대학생, 군인.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 네 보물들이 눈앞에 있다. 그리고 탄력을 많이 잃었지만, 터뜨리지 않고 날려 버릴 수 있는 풍선 같은 중년의 우리가 남았다.
요즘 나는 퇴근하는 남편을 마중 나가 함께 산책하고 오는 것이 즐겁다. "첫째는 뭐 한다고 연락 왔다, 아들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셋째는 저녁을 먹고 스카에 갔고, 막내는 학원을 등록했다." 이런 대화가 매일 반복되지만, 서로가 아니면 또 누가 이 얘기를 궁금해할까?
하지만 아직까지도 주말에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서로 안 맞다며 불꽃이 튄다. 그래도 아이들이 가운데에서, 때로는 아빠 편, 때로는 엄마 편이 되어 팽팽한 줄다리기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중재자가 되어 준다.
오늘은 집 근처 산을 오르내리며, '삶'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시댁에서 펼쳐 본 오래된 앨범 속 젊은 부모님과 남편의 어린 시절 모습처럼, 박제된 시간 속에 삶이 정의된다. 나도 남편도 우리 부모님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분들이 선택한 삶을 온전히 껴안아 50년째 노심초사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의 20년에 30년을 더 해야 다행히도 부모님 같은 위치에 있을 것이다.
힘들다고 지루하다고 멈출 수 없는 매일 하는 일들. 지금까지 떠밀려왔지만 그래도 자발적으로 살아온 시간처럼, 나는 앞으로도 내 앞에 있는 것을 온전히 껴안아 시간 속에 밀려가고 싶다. 우리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