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다 노스트라다무스 그X끼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은 계획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대사(“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되거든”)를 남기는데, ‘인생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내가 18살이 된 1999년은 비극적인 해가 아닐 수 없겠다.
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등학교 1학년인 17살 때부터 일기를 썼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연간 계획 혹은 연간 목표를 짜는 법이 없었는데, 18살이 되는 1999년도부터는 매년 되지도 않을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계획을 짜거나 목표를 설장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나는 계획을 실행하기보다 ‘계획을 짜는 일’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계획을 짜는 일이 일종의 취미가 되어버렸다. 그 시작점이 된 1999년의 계획이 적혀있는 일기를 한 번 보도록 (부끄럽지만 공개하도록) 하자.
1999년 1월 1일(금) 11시 30분
드디어 1999년은 시작이 되었다.
(중략)
99년도에는 여러 가지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다.
첫째, 지구의 종말을 막는다
둘째, 언제나 밝은 삶을 산다
셋째. 취미를 공부로 삶는다‘
이것이 내 인생에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첫 번째 연간 목표(과제)이다. 충격적인 것은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예정이었던 친구가 공부를 과제를 첫 번째 과제로 삼지 않고 있다는 것에 있었고, ‘맞춤법의 황태자’ 답게 ‘취미를 공부로 삼지 않고, ‘취미를 공부로 삶아 먹어버리겠다’는 위대한 포식자로서의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기록에 비춰보자면, 나는 세기말 종말을 믿고 있는 ‘종말론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내가 10대 시절을 보냈던 1990년도 20세기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다양한 종말론이 유행했었는데, 특히 우리 동네에 있는 한 교회에서는 1992년에 휴거가 일어난다는 주장을 펼치며, 실제로 그들이 주장하는 휴거날에 주요 방송사가 특집 방송을 편성해주기도 했다. 나는 그때 두렵기도 하고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이들의 운명(?)에 대해서 관심을 지켜봤는데, 결국 그들이 원하는 휴거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새벽에 ‘하늘나라가 아닌 집으로 돌아가는’ 신도가 “오실 예수님 기다리는데 에러가 났으면, 또 오실 예수님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라는 정신 승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점에서도 혀를 찼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에 갑자기 종말이 정말 올 것처럼 신봉했던 이유는 노스트라다무스라는 한 예언가의 말은 뭔가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1999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올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니 많이) 얼간이 같지만, 나는 뭔가 딱딱 떨어지는 1999년 7월의 종말이 뭔가 신뢰가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1990년대 쏟아진 어린이 오컬트 서적들을 몇 권 탐독한 덕분에 이에 대한 생각을 강화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감정을 솔직하게 펼쳐 보이지만, 나는 종말론을 진짜로 믿기보다는 단지 공부를 하지 않을 핑계로 1999년 7월에 (올지 말지 모르는) 종말을 믿었던 척을 했던 거였다. 혹시 공부를 죽어라 열심히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와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종말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공부를 해도 충분하리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종말을 기다리지 않고, 종말을 막겠다니, 이런 중2병 환자 같은 목표를 남겼다니, 비록 어떻게 지구의 종말을 막을지는 상세히 서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무슨 원펀맨에 나오는 S급 히어로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라는 생각을 한다. 당시 나의 상상으로는 하늘에서 내려온 공포의 대왕이 우주에서 떨어질 운석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7월에 운석이 떨어져도 원펀치로 날려버릴 예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종말을 막기 위해서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두 번째 과제처럼) 언제나 밝은 삶을 사는 소위 정신승리의 방법 밖에 없었는데, 지구의 종말 앞에서도 오로지 밝은 삶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봤을 때, 어쩌면 휴거설을 믿던 그 신도들과 나는 결론적으로 큰 차이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결국 아무튼 1999년 7월까지 공포의 대왕을 기다린 대가는 컸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까지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기장 여러 곳에서 ‘어차피 망할 세상 공부해봤자 뭐하냐’ 와 같은 뉘앙스의 기록이 넘쳐나는 것을 보니 나는 실제로 이 빌어먹을 종말론을 단순히 공부를 하지 않는 핑계로 삼았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 당시 특별히 수리탐구 1 영역인 수학 과목에 대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1999년 6월에 진행된 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에서 시험 시간 100분 동안 1초로 빠지지 않고 전력을 다해 문제지를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80점 만점에 13점을 맞았다는 것이다. 백분율을 확인했더니 전국 5% 였는데, 해석을 해보면 전국 상위 5%의 수학 인재가 아니라 ‘하위 5%의 미래의 문송합니다’ 였던 것이다.
당시 나는 진심으로 열심히 풀었다. 예를 들어, 1004년째 순서도의 답을 구하라고 문제도 1번부터 1004번까지 모든 순서도를 그려서 문제를 풀었던 무식하지만 열정적인 학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바로 옆에서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모조리 1번으로 적고, 숙면을 취한’ 내 짝꿍이 20점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13점을 맞은 것이다.
아무튼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부터 구구단을 제대로 외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수험 공부를 시작했으나 그럭저럭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나마 1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동기는 부모님의 권유(?) 혹은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 열망이 아닌 그저 ‘대학은 가야지 맘 놓고 오락을 할 수 있을 거 아냐?’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노스트라다무스’는 어떻게 됐냐고? 과거 종말론자(?)였던 기억을 넘어서 나름의 집중을 하고 있는데, 수능에 가까워서 TV를 보는데 그토록 보고 싶던 그의 모습을 TV에서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능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수능문제에 뭐가 나올지 잘 찍어준다고 붙인 이름인 것 같았는데, 광고 카피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수능시험날 두고봅시다’ 정말이지 수능이 끝나고 아작을 내려고 했지만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인데 누구를 탓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어리석게 1999년도 7월 종말론을 믿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내가 겪은 한 가지 변화는 이후에 무언가를 하늘에 대고 기원하거나 복을 기원하는 소위 ‘기복 행위’를 중단했다라는 것인데, 혼자 믿고 노력을 안한 스스로의 탓을 하지는 않고, 그저 ‘예언자’나 ‘신’들은 모두 사기꾼이라고 믿어버리는 이러한 선택은 역시 나는 나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