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내가 먼저 이별을 말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누군가는 말해야 했고,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by 디트라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우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연인의 점심 식사.


하지만 나는 그날,

남자 친구가 던진 한마디에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딸깍— 하고 버튼 하나가 눌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 늦을 것 같아.”
남자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우리가 만나기로 한 바로 그 날.


나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에서는 이미 파도가 치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잘 모르는 사람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 했을 땐

미안하다고 하는 게 예의인데,
왜 너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


사실, 이 상황 하나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오랫동안 눌러온 억울함의 고백이었고,
이 관계를 조심스럽게 지켜내려 했던
내 감정의 응축이 터진 순간이었다.


그는 말했다.
“이렇게까지 화낼 일이야?

그냥 날짜 다시 잡자고 하면 되는 거잖아.”
그 말에 나는 무력함을 느꼈다.


내 감정도, 내 말도,
그에게는 그저 ‘예민함’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소중하게 대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의 많은 순간들에서
내 질문을 눌러왔다.

내 의문을 감췄고, 감정을 덮었다.

그 감정을 싸매던 포장지가
그날 식당 테이블 위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그 후 일주일 동안
그에게도, 나에게도 연락은 없었다.
나는 그 일주일 동안 분노했다가, 기대했다가, 슬펐다가, 무기력해졌다가 다시 화가 나는

감정의 회오리 속에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늘 갈등을 회피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오늘은 우선 이만 하자”라며 자리를 피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이해”라는 이름의 빛좋은 포장지를 꺼내 들었다.


그와 나 사이의 감정적 불균형을
나 혼자 감당하려 했다.

사실 그건 ‘이해’가 아니었고,
나를 속이는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예상대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그가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그리고 알면서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달라져야겠다고,
이번엔 내가 나를 지키겠다고,
이번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그래서 일기를 썼다.
내 마음의 모양을 기록했고, 나를 향한 문장을 붙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작게 용기가 올라왔을 때 문자를 보냈다.


“우리, 그만 정리하자.”

예전의 나였다면
‘카톡으로 이별하는 건 예의가 아니야’

라고 말했을 거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정면으로 마주하면 무너질 걸 알기에
글자로라도 내 마음을 밀어내야 했다.


그에게 나는
억지로 끊어내야만 하는 질긴 무언가 같았다.
사랑을 붙들던 손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쥔 마지막 결정이었다.

그날 밤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망설이는 걸까.
헤어지자는 말은 곧 혼자가 되겠다는 선언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누군가는 말해야 했고,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지만,
그 순간 내가 그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나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사랑은 계속되었지만,
그 사랑 안의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글은

상처받은 나를 위한 기록이자,

다시 나를 지키기 시작한 날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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