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나는 나를 돌봐야 했으니까
이별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내 플래너는 더 빼곡해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사업을 정리하고,
인생의 다음 챕터를 준비하느라
바쁜 사람처럼 보였지만
내 마음은 매일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누군가 “잘 지내?”라고 묻는 순간,
그 말에 진심으로 대답할 자신이 없어
웃음을 잃어갔다.
일도, 사랑도,
모든 것에 진심으로 노력했던 나였기에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잃는다는 건
가벼운 안부 인사조차 감당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간 나를 잃을 것 같았고,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데
훨씬 더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보란 듯이 하루를 빽빽하게 채우는 게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이었다.
이별 직후는 담담했던 것 같다.
변화에 적응하려는 몸의 본능적인 반응이었을지도.
하지만 1~2주가 지나자,
감정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어느날, 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후회 없고, 너무 후련하고, 다가올 날들이 기대된다'
그리고 몇일 뒤엔 이렇게 적었다.
'자신감이 치솟다가도,
이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열심히 살고 싶다가도 아무것도 하기 싫다.'
가장 바닥으로 떨어졌던 그 시기,
나는 나의 가치를 하늘 끝까지 끌어올려
이력서를 써야 했다.
스스로도 우습고, 기이하고, 슬펐다.
그렇게 하루에도 10번씩
마이너스와 99도를 오가며,
나는 조금씩 내가 우울하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으며,
예전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던 그때,
처음으로 병원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을 먹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던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그냥, 뭔가에 기대고 싶었다.
약은 내 마음을 바꿔주진 않았지만
잠을 조금 더 잘 자게 해줬고
상념의 물꼬를 조금은 막아줬고
내가 다시 ‘하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나를 무기력에서 구한 루틴’이라는 영상을 보게 됐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나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새로운 리듬이 필요하겠구나.
그래서 사소한 것부터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기분 확인하기
창문 열고 새소리 듣기
따뜻한 티 마시기
이어폰 없이 주변 소리에 집중해보기
나를 위해 요리하기
짧게라도 산책하기
가볍게 자주 명상하기
이 작은 루틴들은
내 마음이 ‘지금 이곳’에 머무를 수 있게 도와주는 장치였다.
물론 뭐든 열심히 하려는 내 특성상
그 루틴들을 곧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도구로
만들어버린 날도 있었다.
“이걸 못하면 나는 더 무너질지도 몰라”
그런 압박감은 결국 다시 나를 번아웃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루틴과 나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는 데
1~2주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시기, 나를 살린건 바로 ‘일기 쓰기’였다.
예전 상담 선생님이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00씨는 면접처럼 대답해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기만큼은 아주 철저하게
내 감정의 날것 그대로를 꺼내 적었다.
절망, 좌절, 외로움, 우울,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속상함까지,
가감 없이 적었다.
필요하면 욕도 적었다.
내 마음속 쓰레기장을 노트 위에 그대로 옮기는 일.
그러다 문득 며칠이 지나고 그 일기를 다시 보면,
“아, 이때 이렇게까지 무너졌구나.”
“이날은 그래도 조금 기분이 좋았네.”
그게 이상하게 재밌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일기를 안 쓴 날은 대부분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그래서 내 일기장은 지금도
좌절 그 자체의 기록이다.
하지만 두 달쯤 지나고 나서야
그 노트 안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즐거웠던 일, 열심히 살았던 날,
뿌듯했던 감정도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일기는 내 감정을 정리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 감정을 환기하는 루틴이 되었다.
솔직히, 이런 루틴들이
내 삶을 ‘구원’하진 않았다.
여전히 가끔은 나를 다독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감정을 살릴 수 있는 건 결국 나밖에 없다는 걸.
그리고 내가 무너졌다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것도 내 몫이라는 걸.
나는 지금도 나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 경험이 어떤 멋진 성장으로
포장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저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토닥이고 싶을 뿐이다.
잘했다고.
그 시절을 잘 버텨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어느 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작은 식물을 사러 나갔다.
예쁜 화분에 옮겨 담고,
햇빛 잘 드는 곳에 두고,
하루에 한 번씩 들여다봤다.
누군가가 나를 봐주길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나를, 조용히 예쁘게 바라보듯한 마음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무너져 있다면,
자기만의 루틴을 아직 못 찾았다면,
괜찮다.
나는 아직도 나만의 작은 버팀목을 찾는 중이니까.
우리, 함께 우리만의 작은 구원을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