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구상의 지옥문이 열렸다

by 퇴고의 늪


지난 9월 19일. <시급 500원짜리 웹소설 작가> 연재형 브런치북 완결을 내고, 곧바로 웹소설 신작 구상이 시작되었다.

어떤 작가들은 신작 구상을 할 때만큼 도파민이 솟구칠 때가 없다고들 하던데, 나는 조금 다르다. 마감 못지않게 고통받기 때문이다. 그 기저에는 아마도 '불안감'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장르, 소재, 캐릭터, 플롯, 대략적인 글의 톤이 정해지면 우선 1화부터 5화까지, 많게는 7화 분량의 글을 만들어본다. 가볍게 초고를 쓰듯 작업하는 게 아니라, 트리트먼트부터 초고, 원고, 퇴고까지 전 과정을 지나가는 것이다. (언제부터 시작된 습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버릇을 잘못 들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글을 일주일 정도 묵힌다. 버려둔 것처럼 아예 꺼내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장르의 소설을 메가도스 요법으로 인풋 하며 틈틈이 자료조사를 한다.


그런 매일이 슬슬 지겨워지면서 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끓으면(나에게는 그게 일주일이다) 다시 파일을 열어본다. 이때는 꼭 웹소설 조판 양식으로 만든 파일을 PDF 형식으로 따로 저장하고, 가급적 휴대폰으로 읽는다.

어김없이 이 글은 살아남지 못하겠다는 판단이 선다. 늘 그래왔다. 언제쯤... 자가 검열에서 한 번에 통과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이때부터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다. 소재의 문제인가. 시장성이 떨어지는가. 캐릭터 조형이 약한가. 지나치게 무겁게 썼나. 전개 속도가 느린가. 기대감이 약한가. 온갖 가능성을 두고 이리 보고 저리 들여다보며 고민해 본다. 글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다 못해 지하를 뚫고 하강했다가,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명쾌하게 한 문장으로 만들어지면 그때부터 첫 파일을 계단 삼아,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주인공이 왜 저런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하지? 왜? 도대체 왜? 개연성을 하나하나 따져보다가 놓친 부분을 발견했다. 그래서 기존 1화를 엎고, 오직 주인공만을 진하게 보여주기로 결정 내렸다.

천만 다행히도 내가 잘 쓸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한 덕분에 빠른 시간 내에 1화 원고가 완성되었다. 물론 앞으로 또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겠지만, 다음 화를 쓰고 싶은 기대감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큰 동력이 생긴 셈이다.


기대감은 독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간다. 글을 쓰는 사람 역시, 다음 회차에서 보여주고 싶은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이 필요하다.


소설 쓰기는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작업이다. 다만, 이 고통을 자꾸 자처하는 나 자신을 보면 가끔 의심스럽다. 혹시 전생에 고문관이었나.......

괴로움이 필력으로 환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님 마일리지라도 쌓이면 좋겠다.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라, 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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