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니즈를 고민하자

[글쓰기에서 타깃독자의 중요성②]

by 임효진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봅시다. 누구에게 읽힐 것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굳이 왜 내 글을 읽을까요? 터치 한 번이면 너무나 손쉽게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를 수 있는데, 내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요? 쉽게 답하기 어려울 겁니다. 때로는 작가 본인도 잘 모르겠거든요.


앞서 <미생>의 예를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상사맨 선배들이 술 취한 장그래와 장백기가 파는 싸구려 양말과 속옷을 사려고 1만 원씩이나 턱턱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품질이 좋아서? 가격이 싸서? 당장 필요하니까? 어느 정도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결정적 이유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사실 이들이 파는 양말과 속옷은 품질도 그닥, 가격도 그닥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당장 필요한 물건이라고 보기도 어렵지요. 만약 장그래와 장백기가 없었더라도 선배들은 사우나에 갔을 테니까요.


그러면 대체 왜 샀을까요? 정답은 ‘그냥 사주고 싶어서’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네, 압니다. 무척 기운 빠지는 대답이죠. 하지만 아마 그 선배들한테 직접 물어봐도 그 이상의 대답이 나오기는 힘들 겁니다. “그냥, 신입 때 생각도 나고, 짠하기도 하고 그래서”라는 식으로 답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심리의 밑바닥을 잘 살펴보면 좀 더 근원적인 욕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좋은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봅니다. 곤경에 처한 후배들에게 손을 내미는 선배! 나한테도 이런 선배 하나만 있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나라도 그렇게 해줘야지. 그래, 이런 게 낭만이지, 크흑….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좋은 선배의 역할을 해냈다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었을 겁니다. 말로는 “그냥 사주고 싶어서”라고 하지만 진짜로 그냥은 아니었던 거지요.


이러한 만족감에 대한 욕망은 선배들 스스로도 몰랐을 겁니다. 장그래와 장백기는 그런 숨은 욕망을 제대로 건드린 것이지요. 마케팅에서는 이것을 원츠(wants)와 니즈(needs)라는 개념으로 표현합니다. 둘 다 욕구를 의미하지만, 원츠는 스스로 깨닫고 있는 구체적 욕구를 뜻하고, 니즈는 본인들도 알지 못했던 숨은 욕구를 뜻합니다.


둘 중에 더 강력한 것은 니즈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니즈가 뭔지 잘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 그걸 건드리는 순간 강하게 반응합니다.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원츠의 영역보다 수면 아래에 숨어있는 니즈의 영역은 훨씬 거대합니다. 그래서 마케팅 이론에서는 고객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숨은 니즈를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강조합니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좋은 글이 나옵니다. 자신들도 몰랐던 니즈를 아주 살짝만 건드렸을 때 독자들은 바로 반응할 것입니다. 소설가 김영하 작가는 어떤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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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을 읽으면 그냥 감탄만 하는 소설도 있지만, 어떤 소설을 읽어보면, 나도 이런 걸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할 때 있죠? 또 어떤 소설은 내가 쓰고 싶어 했던 것을 이 작가가 먼저 썼다. 라는 느낌을 받는 소설도 있어요. 그런 느낌이 들면 작가들끼리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매우 성공한 소설이다. 독자가 ‘자기 얘기를 빼앗겼다’라고 생각할 때 작가가 뭔가 정말로 잘 썼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김영하 강연 <나와 세상을 바꾸는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독자도 미처 몰랐던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해 줄 때 독자는 관심을 갖게 됩니다. 물론 니즈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찾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게 쉬우면 세상의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거 아닙니까. 저희 출판편집자들에게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독자의 니즈를 찾아내는 거랍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상대가 누구인지를 한 번쯤 깊이 고민해본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는 출발선부터 다를 겁니다.


어쩌면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그럴 수도 있지요. 내 글을 읽어줄 독자가 누구인지, 그의 니즈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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