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베르' 이대양 웹툰작가
남다른 '일상툰'이 있다. 바로 아빠의 육아를 다룬 '육아일기', 혈액암 투병을 다룬 '병원일기'다.
범상치 않은 일상을 살아내며 그 속에서 긍정의 메시지를 발견한 웹툰작가 '닥터베르'의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공학박사, 웹툰작가의 꿈을 꾸다
만화와 디지털 플랫폼이 결합해 탄생한 웹툰.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웹툰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특히 '일상툰'은 인기가 높은 장르 중 하나다. 육아, 연애, 결혼, 직장 등 일상과 친숙한 소재로 독자들이 쉽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남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상툰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이가 있다. 바로 웹툰작가 '닥터베르'다.
사실 육아일기는 아내가 처음 낸 아이디어에요.
저는 연재 중인 일상툰이 너무 많아 이 소재는 성공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자가 전업으로 육아를 하고, 박사학위를 그만두고 경력 단절로 고민하는 그런 작품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보니 정말로 남자가 육아를 전담하는 고민을 그린 작품이 없었어요. 그렇게 베스트도전 연재 5개월 만에 정식 웹툰으로 승격할 수 있었죠.
그의 별명 '닥터(Ph.D)'에서 알 수 있듯, 본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던 공학도였다. 그런 그가 웹툰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척추 골절이라는 큰 사고를 겪은 것이 계기였다. 오른팔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웹툰을 시작하게 된 것.
그가 웹툰작가에 도전할 때 선택한 소재는 육아였다. 베스트도전에 '닥터앤닥터 육아일기'를 연재할 당시 전체 웹툰은 약 4,000개. 그중 일상툰은 약 1,000여 작품이나 됐다. 그러나 그의 육아일기가 다른 일상툰과 차별화된 점은 자신이 직접 육아를 전담하며 겪은, 또 당시로선 유일했던 아빠의 육아를 소재로 했던 점이 참신함과 독자의 공감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좌절을 딛고 이뤄낸 웹툰작가 데뷔
짧은 준비기간이었지만,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육아일기'가 전체조회수 2위를 기록하고 있을 때, 1위를 하던 작품의 정식 연재 승격 실패를 보았던 것. 이로 인해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나'에 대한 회의감이 들며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포텐업'이라고, 어찌 보면 정식 연재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단계가 있어요.
1위 작품이 포텐업을 거쳐 정식 연재로 승격되면,
'다음은 내 차례겠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작품이 정식 연재에 실패하는 걸 보고, 저도 회의감이 몰려와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때 동료 작가님들이 위로를 많이 해주셨어요.
또 어떤 부분이 좋은지, 어디를 더 보완하면 좋을지도 조언을 해주셔서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제 작품 중에 아빠가 혼자 육아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실제로 다윈개구리랑 해마가 그런 습성을 갖고 있는데요. 이분들을 개구리와 해마로 묘사한 것처럼, 작품의 전체적인 디테일을 높인 게 연재 확정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깨알 같은 재미를 더하고, 좀 더 특색을 가질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고민했거든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동물이 모티프다. 귀여운 그림체로 각 동물의 특징을 잘 살린 캐릭터들은 단역일지라도 당시 공부했던 배경지식이 치밀하게 녹아들어 있다. 이렇듯 육아일기가 정식 연재를 시작하기까지는 난관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2019년 7월, 여러 좌절을 딛고 웹툰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혈액암 진단, 생애 가장 다이내믹했던 1개월
연재 확정과 동시에 그에게 림프종 4기라는 불행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고, 심지어 화가 났던 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교롭게도 웹툰작가 데뷔와 암 확진이 겹쳤기 때문. 그러다가 병원에서 마주친 소아암 환자를 보고 '나라고 암에 걸리지 않을 이유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비로소 암 환자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암투병 속에서도 꾸준히 연재를 이어나갔다. 한 번 항암치료를 받고 나면 거동조차 힘들었다. 그는 2L 정도 되는 주사를 맞고 나면 마치 '두통만 없는 정말 심한 숙취'와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구토도 심해 포도당 사탕 같은 것밖에 먹을 수 없었다.
잦은 주사치료로 혈관이 딱딱하게 굳은 데다, 혈관염으로 인해 팔에 주사를 맞을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발등에 주사를 맞다 보니 화장실 가는 것조차 어려웠고, 다리가 너무 아파 치료를 버티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2년 동안 휴재 한번 없이 무사히 연재를 마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아내의 덕이 컸다.
당시 아내가 제 간병을 해줬어요. 주사를 한 번 맞고 나면 몸 가누기도 힘들고,
속도 안 좋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 괜찮아지면 뭐가 가장 먹고 싶냐고 물어봤죠. 가장 생각나는 요리가 참치비빔면을 해줬을 땐데요. 정말 눈물 날 정도로 맛있더라고요.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이겨낸 투병생활
투병생활을 이겨낸 또 다른 요소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이었다. 정해진 치료를 꾸준히 잘 받고, 그 외엔 나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병에 대한 걱정에 스스로 매몰되지 않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꾸준히 연재를 이어가고, 세이브를 쌓다 보니 어느새 18회에 걸친 항암치료가 끝났다는 게 그의 설명. 치료 주기 예상이 가능해지자 완결을 2~3주 앞둔 시기에는 쌓아둔 세이브가 남았을 정도로 일상을 잘 유지하는 데 힘썼다.
항암치료를 몇 번 받아보니 주기가 예상이 되더라고요.
그 후 몸이 안 좋을 때를 대비해 세이브를 쌓아놨다가 많이 아플 때는 푹 쉬고,
다시 괜찮아지면 연재에 집중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하니 오히려 완결보다 작업이 일찍 끝나서 말미에는 마음 편히 쉴 수 있었어요.
그의 병명은 소포성 림프종. 전체 환자 중 약 40%가 재발을 겪을 정도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다행히 그는 지난 2022년 1월, 항암치료를 마치고 완전관해 판정을 받았다. 앞으로 약 1년 6개월여의 추적관찰이 끝나면, 비로소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그는 현재 자신의 투병 경험을 다룬 웹툰 '닥터앤닥터 병원일기'를 연재 중이다. 그의 웹툰을 보고 투병을 이어가는 암 환자와 가족들이 조언을 구해오기도 한다. '암 경험자'로서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큰 병을 앓아보니 가장 그리운 게 일상적인 것들이었어요.
평소 누리던 것들에 감사하고, 가족, 친구들처럼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는 시간이었죠. 행복이 그리 멀리 있던 게 아니더라고요.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이해하는 것. 그게 진짜 행복의 모습이라 생각해요.
평소 대하는 온도에서 1도 정도만 높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