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동기들의 수제맥주 양조체험
빈티지한 느낌의 허름한 건물과, 힙한 감성이 가득한 문래창작촌.
색다른 매력으로 꽉 찬 이곳에는 한 맥주 브루어리가 자리하고 있다.
직접 만드는 수제맥주 체험을 위해 네 명의 사우가 문래동을 찾았다.
맥주 완성 첫 단계, 당화 과정
일제강점기 방적공장이 들어섰던 것에서 지명이 유래한 문래동. 한때 철강산업을 주도했던 이곳은 IMF가 찾아오며 뜨거웠던 그 열기가 식어갔다. 이와 함께 환경문제로 철공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며 점차 비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빈틈을 메우기 시작한 것은 저렴한 임대공간과 힙한 감성을 찾던 예술가, 바리스타, 그리고 소규모 브루어리들이었다.
신도림역과 문래역 사이 애매한 위치.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지만, 한 번쯤은 찾아올만한 가치가 충분한 맥주공방 브루스카. 빈티지와 힙한 느낌 가득한 이곳을 찾은 이는 지난 2016년 입사동기 4인. 이들은 그간 근무지가 겹쳤던 적은 없지만, 이들이 우정을 이어간 데는 한 사우의 주도로 결성된 동기모임 덕이었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네 사우의 본격적인 수제맥주 만들기 체험이 시작됐다. 오늘 직접 만들어볼 수제맥주는 인디아 페일 에일(IPA, India Pale Ale). 과거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오늘날처럼 냉장기술이 없던 시기 영국에서 수출된 맥주는 인도의 더운 기후로 맥주 양조를 망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좀 더 높이고, 방부제 역할을 하는 홉을 많이 넣은 것에서 유래한게 바로 IPA다.
맥주 만들기 첫 번째 체험은 바로 당화 과정. 알코올을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나 발포주가 아닌 모든 술은 발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발효를 위해서는 효소가 필요한데, 맥주에 사용되는 보리에는 효소가 없기 때문에 보리를 한 번 가공해야 효소가 생성된다. 발효에 필요한 당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당화 과정. 보통 65~70℃ 정도에 맞춰 물을 끓이며 한 시간 정도 몰트를 불려주는 단계다.
이 모든 과정은 맥주의 재료가 되는 ‘맥즙’을 만들기 위한 것. 당화조에 연결된 꼭지를 열어 당화가 진행된 몰트와 뜨거운 물을 받아낸 후, 다시 당화조에 붓는 과정을 반복한다. 네 사우가 각자 돌아가며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여과&스파징 단계를 거친다. 호스를 연결해 거름망을 대고 발효통에 맑은 맥즙을 받아내는 것. 호스를 잡은 손이 뜨거울 정도다. 이렇게 추출된 맥즙에 홉과 이스트를 넣고 끓인 뒤 식히면 맥주 발효준비는 끝이 난다.
알고 마시면 더욱 맛있는 수제맥주 만들기
사실, 수제맥주를 제조하는 공정은 약 한 달 정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수제맥주 제조는 크게 몰팅-보일링-냉각 및 발효-숙성 네 단계를 거친다. 기호에 따른 바디감, 톡 쏘는 탄산 등 맥주의 풍미를 완성하기 위해선 발효가 필수적인데, 이를 만드는 것이 다름 아닌 효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맛있는 맥주를 맛보기 위해서는 예민한 미생물인 효모를 잘 번식시키고, 맥주가 완성되기까지 이들을 잘 돌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효모가 잘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이것이 브루어의 역할이다.
완성된 맥즙을 발효통에 넣은 뒤, 강사님의 수제맥주 강의가 시작됐다. 앞서 체험한 맥즙 제조를 포함한 맥주 제조 공정과 술의 기초를 간략하게 배워보는 네 사우. 우리가 마시는 술은 공법과 당원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발효주는 곡물(A), 과일(B) 중 어떤 당원을 사용하냐에 따라 맥주, 와인 등이 분류된다. 발효된 당원에서 더 순수한 에탄올을 추출해 술을 만들면 우리가 흔히 아는 증류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당원 중 곡물을 증류하면(C) 위스키·보드카가, 과일을 증류(D)하면 브랜디, 코냑 등을 만들 수 있는 것.
이어 최근 수제맥주 펍, 소규모 브루어리가 증가한 이유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맥주를 만들기 위해선 크게 곡물, 물, 홉, 이스트 네 가지 원료가 필요하다. 이중 물을 제외한 나머지 재료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주류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강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우리나라 주류 제조면허는 제조시설의 규모를 기준으로 발급되기에 대기업처럼 대규모 시설을 갖출 수 있어야만 술을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이 지난 2002년을 기점으로 완화되며 소규모 브루어리의 성장으로 이어졌고, 수제맥주 시장이 커질 수 있었던 것. 물론 이외에도 전통주 등 다른 주류 시장과 비교해 수제맥주 시장이 성장이 늦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잘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작업대로 모인 네 사우. 여과한 맥즙을 한 컵 덜어낸 뒤, 얼음이 담긴 통에 넣어 차갑게 식힌다. 직접 만들어질 맥주의 알코올 도수를 계산해보는 시간. 완성된 맥즙을 살짝 맛보니, 식혜와 비슷한 맛이 난다. 곡물의 당을 끌어내 데우고 여과하는 과정이 유사해 그런 건 아닐까 싶다.
한정된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모든 수제맥주 제조 과정을 체험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 아쉬운대로 공방의 IPA를 시음해보고, 수제맥주 만들기 체험을 마친다. 맥주공방을 뒤로 하고 나서는 길. 오랜만에 만난 네 사우는 그간의 회포를 풀기 위해 감성 가득한 이곳 문래동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맥주의 풍미가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네 사우의 우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진한 풍미를 만들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