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갑질이었나?
자꾸 이렇게 하시면 믿고 못 맡겨요!
부아가 치밀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클라이언트의 한마디에 말이다.
내가 담당했던 모 기관의 매거진. 격월로 발행되던 매체는 매호 다른 일러스트를 표지에 싣는다. 하나의 표지로 1년을 쭉 가면 좀 나았을까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1차 시안을 정리해 보낸 어느 오후. 클라이언트가 윗선에 보고를 마친 모양인지 메일 회신이 왔다. 내용을 읽어보니 제시한 시안이 통과하지 못했다고, 다시 해달란다.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딜 더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설명은 전무했다. 하다못해 표지 주제가 마음에 들었는지조차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정답이 없는 영역이니, 저쪽에서 지푸라기라도 내어줘야 일이 진행될 터. 답답한 마음에 전화기를 든다.
안녕하세요 담당자님, 메일 확인했습니다.
주신 내용으로는 어느 부분에 보완이 필요한지 파악이 어려워서요.
디자인 수정이야 으레 있는 일이다. 연차가 쌓이다 보니 수정요청 없이 한 방에 통과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통화음이 울리는 몇 초간 나름대로 어떤 수정일지 예측해본다. 그런데 웬걸, 수화기 너머에선 나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황당한 답변이 들려왔다.
알아서 해 주세요
알아서 해달라니, 이게 웬 말인가. 귀를 의심하며 재차 묻는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일러 톤인지, 다른 주제의 일러스트를 원하는 것인지, 컬러 톤을 바꿔달라는 건지.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짜증 섞인 ‘믿고 못 맡긴다’ 였다.
싸한 정적이 흐른다. 도대체 뭐라 답해야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나름 여러 진상(?)들을 상대해왔다 생각했건만. 아, 이건 차원이 다른 참신함이었다. 더 이상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건 무의미했다. 대화를 이어갈 의지가 없는 이를 상대로 무슨 말을 꺼내랴.
안하느니만 못한 통화를 끝냈다. 이윽고 치솟는 짜증과 화를 삭이며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본다. 배경을 바꿔볼까, 톤을 달리해볼까, 싹 엎고 다른 주제로 새로 시안을 잡을까. 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정답에 근접했는지조차 알 도리가 없는 무한한 스무고개에 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국, 대안이나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담당 디자이너를 호출한다. 상황을 설명하니 이쪽도 마찬가지로 한숨만 내쉰다. 뭐 별 수 있나.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 다시 시안을 잡아 보낸다. 그런데, 그렇게 보낸 시안이 결과가 좋을 리 없다. 디자인 퀄리티는 포기한지 오래.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시안을 수차례 잡아 보낸다. 결국 n번의 수정 끝에 돌고 돌아 제자리다.
고통의 시간 끝에 시안이 통과되긴 했다. 어영부영 하다 보니 하나가 얻어 걸려 윗선의 마음에 들었나보다. 아니, 어쩌면 마감 기한이 임박해서 마지못해 표지가 결정된 걸 수도 있겠다. 그렇게 지옥 같았던 회차를 마무리했다.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책은 나온다
업계에서 종종 들었던, 에디터들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내뱉는 자조 섞인 푸념이다. 직접 겪어보니 알겠다. 정말 (누가 무슨 짓을 하건) 때가 되니 결국 책은 나오더라. 그래서 이후엔 어떻게 됐냐고? 차월호부터 정말 최소한의,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만 해주며 그 이상의 업무역량을 투입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계약된 회차를 채우며 과업이 종료되길 기다릴 뿐이었다.
대화조차 단절했다. 나는 나대로 감정이 상해 그때 뭐가 문제였냐고 묻지 않았다. 그 전까진 나름 내적 친밀감이 충만한 채 클라이언트와 소통을 시도했다. 안부도 묻고, 빈말이라도 이번호 내부 반응은 어떠했냐고 물으며 조금이라도 친밀한 관계 쌓기에 노력했다. 이 일이 있은 후론 조그만 실수에도 꼬투리를 잡는 클라이언트의 반응에 그저 사무적으로, 기계적으로 대응만 했다. 또다시 시안이 반려당해도 원인파악조차 하려들지 않았다. 단지 폴더에 잠들어 있던, B・C급으로 분류했던 무수한 주제들을 던져주고 거기서 선택을 하도록 했을 뿐이었다.
불편한 관계로 일하는 게 나라고 좋겠는가. 시간이 지나 화가 잦아들었을 무렵, 관계를 개선하려 시도했었지만 잘 안됐다. 자존심 따윈 접어두고 화해의 손길을 여럿 내밀었지만, 돌아오는 냉랭한 반응에 이내 포기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참 성인군자는 못되나 싶더라. 그때 취했던 나름의 제스처가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이건 아니지’ 싶었을 수도 있겠다. 을이면 을답게 더 바짝 엎드렸어야 했을까.
편집디자인은 취향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건 클라이언트 잡이다. 나에겐 선택권이 없다. 그저 클라이언트가 결정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나는 A안을 선호하더라도 클라이언트가 보기에 B, C안이 더 좋다면, 그 방향성에 맞춰 콘텐츠를 갈무리하는 게 내 일이다. 이걸 잘하려면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와 말이 잘 통해야 한다. 나는 일정 수준에 도달한 콘텐츠의 질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욱 향상된다고 믿는다. 어깨너머로 배운 업무가 그러했고, 실무에서 직접 경험하며 증명했던 명제다.
일을 잘 한다는 건 참 어렵다. 포트폴리오의 퀄리티 여부를 떠나 내 손으로 다듬어 세상에 나온 매거진이 주목은 못 받을지언정 욕은 먹지 않길 바란다. ‘알아서 해 주세요’라는 건, 저 명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