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책은 돈이 돼요, 정말로

‘책이 혁명을 일으킨다.사양산업은 없다.’이토록 센세이션 한 발언이라니.

by 김현임

하루가 멀다 하고 폐간하는 잡지들, 책을 읽지 않는 사회, 붐은 일었지만 수익 창출에는 어려움이 여실한 독립 서적 시장. 이 가운데, ‘책’은 절대 사양 산업이 될 수 없으며 심지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자, 지역사회 자본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 전국에 14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츠타야 서점>의 최고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의 이야기다.


현재 우리의 소비사회, ‘써드 스테이지 third-stage’

마스다는 우리가 현재 당면한 소비사회를 써드 스테이지 third-stage라고 부른다.

소비 사회의 첫 단계, '퍼스트 스테이지'는 물건이 부족한 시대. 고객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물건을 팔기만 해도 구입할 수밖에 없는 시기이다. 마스다는 일본을 예로 전후의 고도성장기까지를 ‘퍼스트 스테이지’라 말한다. 그 후로 차차 인프라가 구축되며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세컨드 스테이지'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는 고객들이 좀 더 효율적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에 주목하게 된다. 상품은 이미 넘쳐흐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간 형태의 소비 사회가 바로 지금의'써드 스테이지'. 넘치는 상품도, 인터넷에조차 넘치는 플랫폼도, 더 이상 구매를 하는데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 소비자들까지, 보다 고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소비 사회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동시대의 이와 같은 소비사회의 형태를 기반으로 마스다는 ‘다음 단계’ 의대 비책을 모색한다. 여전히 ‘책’으로.


디자이너만이 살아남는다

디자인은 더 이상 부가가치가 아니다. 상품을 판매하는 데 있어 부수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 마스다는 더 나아가 이러한 제품들 사이에서 고객으로 하여금 더 나은 물건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일을 통칭해 ‘디자인’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그가 생각하는 우수한 디자인이란, 제품에 담긴 이미지를 통해 ‘이것을 사용함으로써 즐길 수 있다고 예상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디자인'인 것이다. 제품 속에 담긴 제안을 구입하는 행위. 이는 곧 써드 스테이지의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입하는 방식이자, 모든 기획자들이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츠타야 서점의 상품은 책이 아닙니다.

서점의 상품이 책이 아니라니.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그는 눈에 보이는 단순한 상품으로써의 책이 아닌, 각 상품들이 이면에 품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고객들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츠타야의 진정한 의미의 상품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서점을 운영하면서도 책을 상품이라 단언하지 않는 그의 사고방식인 것.


"하드보일드 영화의 팬이라면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도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좋아하는 차분한 느낌의 재즈를 듣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나의 상점에서 그것들을 모두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략) 이것 역시 디자인이다.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라는 이념을 MPS(멀티 패키지 스토어)라는 형태로 가시화하는 작업.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형태를 부여한다는, 그야말로 디자인의 본질을 이끌어내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지적 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예로든 '모든 기업은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한다.'라는 테제에는, 장차 기업에 그런 지적인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환경이 얼마나 잘 갖추어져 있는가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내용이 암시돼 있다."


제목부터가 고루하기 그지없는 이 책을 서슴지 않고 고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띠지에 '츠타야 서점'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책이 혁명을 일으킨다'는 장 제목 때문이다. 책을 삶 자체이자 숨을 쉬는 것과 같이 여기는이들에게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문장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폐간하는 잡지들을 헤아리면 이 한 문장은 내게는 너무도 자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혁명을 일으킨다

우리가 서점 하면 떠오르는 매장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입구 가장 가까운 쪽에 놓인 소설과 비소설의 베스트셀러들, 그리고 그 안쪽에 따로 마련된 잡지 코너. 서점 중앙에 도서관처럼 분류된 여행서, 참고서, 출판사별 문고 등이 연상된다. 우리에겐 아주 익숙한 서점의 풍경일 테지만 마스다는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기존 서점의 디스플레이 방식은 '판매 장소'일뿐 '구입 장소'(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 유럽여행을 앞둔 고객이 서점을 찾았다고 가정했을 때 어느 코너를 찾을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지역 가이드를 위한 최신 도서를 찾을 수도 있고, 유럽을 무대로 삼은 소설에 흥미를 느낄지 모른다. 그렇다면 여행 코너에 들렀다가 소설 코너로 동선을 바꾸고, 혹시 잡지에 유럽여행에 대한 정보가 실렸는지 보기 위해 다시 잡지 코너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인가?


마스다는 바로 이점을 지적한다. 그가 처음 츠타야 서점에 대한 기획을 염두에 둘 무렵, ‘이미 사양산업'인 출판 시장에 뛰어드는 그를 나무라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문제는 책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분명 책 자체는 그 한 권 한 권이 가치 있는 '제안'이다. 그러나 기존 서점에서는 책을 그저 책 자체만을 판매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인즉슨, 책이라는 물질적인 상품을 판매하겠다기보다 '책 속에 담긴 제안'을 판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CCC(마스다가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 주식회사’)는 책의 형태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그 제안 내용에 따른 분류로 서점 공간을 재구축했다. 이것이 서점의 이노베이션이다. 지금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방문해보면 그곳은 여행, 음식과 요리, 인문과 문학, 디자인과 건축, 아트, 자동차…라는 식으로 장르에 따라 구분이 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내용이 가까운 것들끼리 단행본이든 문고본이든 틀을 넘어 횡단적으로 진열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한 고객은 “유럽을 여행한다면 이런 문화를 접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거나 “건강을 생각한다면 매일의 식사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물론 말은 쉽다. 요약한 이야기만 듣는다면 ‘뭐야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시키는 과정은 역시 현실이었다. 그가 츠타야 서점의 기획을 실현하는 동안 당면한 어려움은 책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클라우드 도식’ 즉,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의 병렬형 조직관계로서 극복해 나간다.


“서적은 제안 덩어리다. 그런 서적을 집적한 서점이나 도서관의 이노베이션이 각지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결국 각지에 지적자본을 고양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전국에 츠타야 서점을 운영하며 지역사회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을 만들어 갔고 그가 꿈꿔온 ‘컬처 인프라’를 만들어냈다. 이익활동을 위한 기업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컬처 인프라를 지역의 사회자본으로서 확장시켜낸 것이다.


마스다가 운영하는 CCC(컬처 컨비니언스 클럽) 본사 사무실

언뜻 보면 정갈한 일본식 디자인의 표지에, 서브타이틀 마저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라고 적혀 있으니, 디자이너의 길을 걷는 이들만을 위한 책으로 오인하기 쉽다. 나는 이 책의 코어 타깃을 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들로 한정 지어본다. 이 놀라운 발상과 실행력을 가진 마스다 무네아키도, 책 속에 함께 등장하는 다케오 시의 시장 히와타시 게이스케도, 한기업의, 도시의 수장이다. 결국 리더들의 통찰력 있는 지적자본과 자유로운 발상에 의해 이뤄진 성과들이며, 이들의 확고한 리더십으로 인해 역사와 같은 브랜딩이 일궈진 것이다. 때문에 과연 이 지적 자본론들이 특히나 한국의 실정에 대입했을 때 CCC와 같은 거대 기업의 형태로 실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녔다.


디자이너든 마케터든 개인들이 깨우친다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직도 수직적이며 상명하달이 당연시되는 한국식 기업문화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깨우친 인재들이 있다 한들 제2의 츠타야 서점 같은 써드 스테이지의 진정한 산물이 나올 수 있겠냐는 불신이 드는 것이다. 마스다의 사고와 경영방침은 반드시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역시나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한국에서는 무리, 뜬구름 잡는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한국기업의 책임자들이 읽어야 할 경영지침서쯤으로 여기고 싶다. 물론 직업을 막론하고 개인에게도 더 없이 좋은 책이다. 얄따란 책이지만 버릴 것이 없다. 과연 정체된 사고를 흔들어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사유의 시간이 되어 줄 것임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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