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그러니까 여행자의 파라다이스라고

#2. 첫날의 가장 중요한 여행 포인트는 드디어 열이 내렸다는 것이다.

by 김현임
여긴 그러니까 여행자의 파라다이스라고, 이제 겨우 한 번 와본 여행길에서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왕궁 바로 앞의 도로에서는 택시나 뚝뚝 등 차를 세워 둘 수 없다. 혹여 정차중인 차를 발견하면 경비원이 어서 차를 출발 시키라며 제제한다.


왕궁에 가까워질수록 수많은 인파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에어컨을 켠 실내에서 조차 느껴지는 정오의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단단한 각오의 침을 꿀꺽 삼킨다. ‘이거 좀 힘들겠구나’ 생각하며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태국 한 낮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훅 끼친다.


이 열이 내 안에서 나는 건지 햇볕이 따가운 건지(사실 둘 다 맞는 이야기) 알 수 없는 고행길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왕궁의 아름다운 사원과 탑이 이루는 장관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연신 ‘우와’만을 내뱉으며 한시바삐 눈에 담아두기 바빴다. 화려하다는 수식어로는 차마 담기지 못할 광경이 계속해서 눈앞에 펼쳐졌으니까. 가장 먼저 만난 거대한 황금 탑(프라씨 랏따나 쩨디: 부처님의 가슴뼈를 보존하고 있는 황금 탑)은 단번에 이곳이 이국땅 임을 실감케 했다.



태국이 왕정국가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채 내디딘 왕궁이었지만 근엄하고 화려한 왕궁의 자태를 보고 있자니 그런 것쯤 모르면 어떻겠냐는 뜻 모를 자신감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태국의 역사는 몰랐지만 이곳 왕궁을 출입하기 위한 에티켓 정도는 미리 파악해둔 덕에 긴 줄을 서서 바가지 잔뜩 씌운 옷가지를 사지 않을 수 있었다. 왕궁은 태국에서 가장 경건한 장소인 만큼 이곳을 출입하는 여행객들의 짧은 옷차림을 단속한다. 민소매나 남성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스키니진은 출입이 불가하니 반팔과 적당한 길이의 반바지 등을 챙겨 입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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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사원을 중심으로 빼곡히 놓인 화려한 탑들은 한국의 궁에서 익히 보았던 비슷한 조형물들과는 달리 저마다 독특한 형태와 색을 갖고 있어 제각기 다른 모습을 띤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라마 1세부터 왕들이 거처하던 이 왕궁터에는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마다 새로운 건물들이 계속해서 지어졌다고. 가이드북에는 에메랄드 사원을 꼭 거쳐야 할 명소로 소개하지만 나는 그보다 귀빈 접견실, ‘짜끄리 마하 쁘라쌋’의 자태에 매료되었다. 웅장한 건물의 크기와 유럽의 건축양식을 연상케 하는 발코니들은 가본 적은 없지만 내가 상상하던 베르사유 궁전을 떠올리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라마 5세 때 영국인 건축가 존 치니츠가 설계한 건물로, 아직도 귀빈 접견실로서 혹은 연회장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지붕의 색과 디테일은 태국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유럽 양식의 몸체가 풍기는 오묘한 분위기가 발걸음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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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678.JPG 귀빈 접견실, ‘짜끄리 마하 쁘라쌋’


-카톡이 울린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온 문자. “거긴 천국일지 몰라도 여긴 아니야.” 뭐 이런 당연한 소릴. 급작스런 한파가 몰아친 한국은 그 시간 꽁꽁 얼어붙었고 그렇게 지긋지긋한 출근길을 견뎌낸 친구의 입에선 부러움 섞인 투정이 흘러나온다. 아무렴 어때, 난 지금 방콕에 있어. 5박 6일의 일정이 끝나면 나 역시 그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꼭 다른 나라 일 같달 까(정말 다른 나라에 있긴 하지만), 그런 사실 따위 지금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나는 지금 방콕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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