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그러니까 여행자의 파라다이스라고2

by 김현임



여행지에서의 관광 시간을 결정짓는 건 역시 배고픔이다.

일찌감치 숙소를 빠져나와 시작한 관광에 쉴 틈 없던 다리가 아파오자 허기마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고민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타이 마사지를 받고 밥을 먹을 것인가, 먹고 마사지를 받을 것인가. 이 얼마나 행복한 고민인지 다시 생각해도 군침이 돌 지경이다. 요가도 공복 상태에서 하는 것이 효과가 좋다고 했던가, 우리는 일단 마사지로 굳은 오장육부를 풀어낸 후 작정하고 먹는 쪽을 택했다.


왕궁에서 카오산로드로 향하는 길목. 짧지않은 거리였지만 이 풍경을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보고 싶었던 우리는 걷기로 한다.


카오산로드에 도착해 관광객들에게 유명하다는 마사지샵에 이르렀을 때는 온몸이 기진맥진해 있었다. 억지로라도 끊임없이 마신 물 덕에 간신히 탈수 상태는 면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불덩이 같은 이마와 불편한 배는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샵에서 내준 차를 마시고 있자니 드디어 차례가 왔다.

아, 정말 혈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이로구나. 한 시간에 걸친 마사지가 끝난 후 다과를 받아 들고 앉아있자니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과 가뿐한 어깨를 체감할 수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홀가분하지? 오, 이럴 수 가 열이 내린 것이다. 나는 이날 이후로 타이마사지 신봉자가 되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본토의 마사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IMG_7693.JPG 한낮의 햇빛에는 개들도 별 수 없다. 골목의 그늘진 구석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는 카오산로드의 자유로운 영혼.


공식적인 첫끼 앞에 우리의 손놀림은 쉴새 없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맛는 육수의 진한 맛이 포인트. 어쩐지, 한국사람 너무 많다 했다.

한국 여행객들에게 카오산로드 맛집으로 유명한 ‘나이쏘이’에서 갈비 쌀국수로 허겁지겁 허기를 달랬다. 진한 고기 육수와 익숙한 식감의 쌀국수 면발이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다. 그래서인지 테이블 여기저기에서 한국어가 심심찮게 들려왔으며, 약속이나 한 듯 모두들 같은 메뉴를 먹고 있다. 여기 메뉴가 하나뿐이었던가? 쌀국수 한 그릇을 보기 좋게 비워 내고 냉장고에서 갓 꺼낸 콜라를 들이켜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는 입에도 대지 않던 콜라였는데. 이날 부로 나는 콜라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콜라는 사람의 기분을 한껏 좋아지게 만드는 마법의 음료다.



여기서 식사는 끝날 줄 알았다. 나는 동행의 먹성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맛집의 대표 메뉴 시식을 위해 그리고 이미 용량이 차 버린 배를 달래기 위해 우리는 카오산로드의 골목길을 조금 걸었다. 한국의 이태원쯤 될까? 유난히 많은 외국인이 눈에 띄었고, 곳곳에 게스트하우스 역시 즐비했다. 젊음의 거리. 길가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젊음 특유의 에너지가 움트는 곳이었다.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가로수 따라 아기자기하게 자리 한 가게를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백 미터만 걸어도 커피집이 수두룩한 한국에 비하면 이곳은 작은 바 bar가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그렇게 걸을 때쯤 두 번째 맛집에 도착했다. ‘로티 마타바’. 이슬람식 로티(기름에 부친 납작한 빵으로 호떡의 식감과 비슷하다.) 가게로 방람푸 지역의 터줏대감 격인 곳이다. 식사보다는 주전부리하기 좋은 메뉴들로 가격 역시 저렴했다. 먹성 좋은 친구는 로티를 주문했고, 나는 평소 궁금했던 그린커리를 시켰다. 보통 이곳에서는 로티와 커리를 함께 곁들여 먹는다고 하니 딱 알맞은 주문이다. 좁은 가게 안은 이미 만석이었지만 우리는 맞은편의 탁 트인 공원에서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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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프라 쑤멘 요새(새하얀 벽과 문양이 꼭 그리스 산토리니의 건물을 닮았다.)를 지나 짜오프라야 강변이 한눈에 펼쳐지는 탁 트인 공원. 잔디밭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여행객들이 보이고, 넓은 공터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에어로빅을 하는 현지인들도 보인다. 마침 석양이 강물 따라 넘실대는 저녁의 공원에서 나는 잠시 삶의 향기를 만끽한다. 가슴 벅찬 삶의 향기는 코를 자극하는 커리 냄새로 잠시 일단락되었다. 배가 부르긴 했지만 로컬푸드에 대한 호기심이 배부름을 이겼다. 바나나와 초코시럽이 가미된 로티를 한 입 배어 문 친구가 신음을 토했고, 나는 기대감에 한 조각 받아 들어본다. 배가 불러서 일까, 생각보다 느끼한 맛이 입맛에 썩 맞지는 않았지만 그린커리는 성공적이었다. 달콤하면서도 적당히 시고 진한 그 맛이란, 지금 생각해도 침샘을 자극한다. 다행히 두 음식 모두 손바닥만 한 용기에 담겨 있어 남길 걱정 없이 맛을 보는데 적당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우리는 근처 작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해 ‘아시아티크’로 향하는 택시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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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에 생긴 이 대형 야시장은 거대한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관광명소인 만큼 다른 야시장에 비해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가득 들어찬 작은 가게들과 강변에 늘어선 큼직한 레스토랑들, 그리고 야시장의 밤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대관람차의 자태가 눈을 즐겁게 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강변에 멋지게 자리 잡은 펍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히또를 마셨다. 모히또를 즐겨하는 편이 아니라 맥주를 마시려던 내게 먹성 좋은 동행이 고급 정보를 흘렸기 때문에. 방콕의 모히또는 지역에서 직접 재배한 민트로 만들어 맛과 향이 풍부하다고. 귀가 얇은 나는 모히또를 주문했고, 그 결과 후회하지 않았다. 이 똑똑이. 이로써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여행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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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대관람차가 기억 속 어딘가 묻혀있던 소녀의 로망을 채워준다. 드디어 눈앞에서 만났다, 대관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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