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엷은 미소를 닮은 곳, 아유타야 2

by 김현임

아유타야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장관은 ‘왓 로카야쑤타람’에서 마무리 짓는다. 태국여행에 관련된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면 한 번쯤은 사진으로 접했을지 모르는 거대한 와불, 편안히 옆으로 누워 있는 대형 와불이다. 정말 편안해 보이는 자세의 와불은 길이가 무려 42미터에 달한다. 와불이 입고 있는 채도 높은 태국 특유의 주황빛 승복이 바람에 나부낀다. 모두들이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명소 앞에 장사 없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빠져나갈 때쯤 우리는 냉큼 와불 앞에서 포즈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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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유타야에서의 일정이 마무리되어 간다. 투어 여행객들은 자유시간이 끝나면 입구의 미니밴 앞에 모여야 한다. 카오산로드로 향하기까지 긴 시간 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입구에 두 어명의 관리인이 화장실을 지키고 있다. 이 곳의 화장실은 사용료를 지불해야 이용할 수 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비싼 공동화장실 요금에 대해 이야기한 기억이 언뜻 스친다. 그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사용료지만 나에겐 화장실 이용료를 내는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방콕에서 화장실 사용료를 내는 곳은 여행 중 아유타야 유적지가 처음이다.


주차된 밴으로 향하는 길엔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사실 코끼리 조각이나 모자 등은 슬쩍 보고 지나칠 뿐이었지만 하늘하늘 교태 섞인 몸짓으로 나를 유혹하는 코끼리 치마(그리고 바지)에 우리 일행은 무언가에 홀린 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찌는듯한 더위에 입고 있는 옷을 탓하던 동행들은 결국 마음에 드는 코끼리 바지를 고른 후 잽싸게 갈아입기를 시도했다. 좁아터진 밴안에서 나의 코끼리 치마로 겨우 아랫도리만 가린 후 낑낑거리며 갈아입기에 성공한 동행들의 얼굴엔 마치 쾌변 후의 어떤 상쾌함마저 감돌았다. 아유타야의 하이라이트는 이 코끼리 바지였다.


문을 열자마자 달궈진 공기가 훅 끼치는 밴에 올랐다. 드디어 끝났구나! 긴 하루 동안의 투어가 즐겁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피로했다. 이날, 달리는 차 안에서 태국에 도착해 처음으로 꿀잠을 잤다. 침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 꼭 침을 흘렸을 것만 같은 노곤 노곤한 꿀잠을. 기지개를 펴고 맑은 정신을 기뻐하며 그렇게 카오산로드에 도착했다.


아직 여행을 시작한 지 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구시가지, 신시가지, 유적지, 쇼핑센터, 현지 음식, 그리고 마사지까지 어느 하나 빠트리지 않고 부족함 없이 방콕을 즐겼다. 밀려오는 뿌듯함과 즐거움에 행복한 탄성을 지르며 남은 하루를 어떻게 더 즐겁게 보낼지 궁리한다. 이 순간 나는 진심으로 행복이란 것을 느껴본다.


첫날 만큼의 황홀경은 느끼지 못했지만 여하튼 마사지로(첫 날 내게 열화와 같은 감동을 선사했던 그 마사지샵) 뭉친 근육을 모두 풀어낸 후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큰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뚝뚝 기사 들이아는 한국어를 총동원해 우리를 불러 세운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린 걸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뚝뚝을 한 번 타보자는 의견에 입을 모은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하려는 장소는 택시기사에게 이름만 말해도 단번에 알아들을 유명 팟타이 맛집이다.


IMG_7887.JPG 생각보다 빠르고 격정적이었던 뚝뚝. 덕분에 스릴 넘치는 도로주행을 맛보았다. 그리고 사진 속 동행의 코끼리바지가 바로 아유타야 에서의 기념품. 나의 코끼리 치마는 다음 날 개시.


200 바트에 흥정을 마치고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뚝뚝 에 올라탄다. 뚝뚝을 타고 카오산로드의 교차로를 달리며 본 풍경은 택시 안에서 보던 것과 또 다르다. 피부로 느껴지는 현지의 에너지가 여문 저녁을 더욱 환하게 밝힌다. 뚝뚝 에 오른 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팁싸마이’에 도착한다. 사실 흥정이라고는 했지만 우리는 바가지를 썼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부르는 게 값이 뚝뚝임을 알기에 경험 삼아 타본 것으로 모두 만족했다.


과연, 팟타이 맛집이 분명한 외관이다. 중화요리에 쓰일 법한 화력을 자랑하는 불과 대형 웍이 눈 앞에서 곡예를 하고 있었다. 팁 싸마이의 대표 메뉴는 팟타이로, 쌀국수를 볶아나오는 보통의 팟타이와는 조금 다르게 면이 오므라이스처럼 계란지단에 동그랗게 싸여 나온다. 그 과정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이 솜씨들은 분명 달인의 것이다. 화려한 손목 스냅, 순식간에 완성되는 동그란 팟타이 한 접시에 우리는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가게 안은 굉장히 넓었다.



IMG_7889.JPG 지금껏 보았던 식당 중에 직원 수가 가장 많아 보였던, 분주한 팁싸마이의 가게 앞.


현지에서도 많은 방송을 타고 유명인이 방문했을 만큼 명소인 이곳의 또 다른 대표 메뉴는 바로 ‘오렌지 주스’. 친구가 이 가게를 오고 싶어 했던 이유는 팟타이 보다 오렌지 주스 때문이었다. 오렌지의 질긴 섬유질을 벗겨내 알알이 탱글탱글한 과육 맛이 일품이라는, 아마 여행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 노래를 불렀던 그 오렌지주스. 내 입엔 살짝 느끼한 ‘쌕쌕’ 정도로만 느껴졌지만 친구는 그 맛에 반해 결국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하나 더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흡족한 미소란. 손에 들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비닐봉지의 춤사위가 즐겁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알차고 배부르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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