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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임 Mar 15. 2016

나만 알고 싶은 길 2

이어서,

‘오드리’는 아기자기한 애프터눈 티 카페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 스트라이프로 이루어진 벽과 민트색 나무의자, 그리고 대리석 테이블. 무엇보다 보타이를 매고 메이드복을 입은 직원들의 옷차림에서 클래식한 유럽풍 카페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곳에서 두 번째 브런치를 주문하려는데 의외로 커리가 메뉴에 보인다. 커피와 디저트만을 팔 것만 같은 인테리어에 다소 의아했지만 우리는 배가 고팠기에 커리와 피자(이것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메뉴이긴 마찬가지)를 주문했다. 그렇게 두 번의 브런치로 공식적인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오드리의 대표 디저트 메뉴를 맛보기로 했다. 밀크티 크레이프 케이크. 사실 나는 밀크티를 비롯한 홍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새로운 맛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맛의 선호 여부보다 강했다.


스푼으로 그릇까지 싹싹 긁게 만드는 마성의 밀크티 크림. 마치 카라멜이 흘러넘치는 듯한 비주얼에 박수를 보냈다.


그도 그럴게 이 비주얼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초코와 밀크티 두 가지 종류이지만 초코케이크의 맛은 이미 충분히 경험해봤다. 역시 트립어드바이저는 믿을 수 있는앱이구나. 밀크티의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케이크는 충분히 맛있었다. 겹겹이 쌓인 얇은 크레이프 사이의 부드러운 크림과 그 위를 온통 감싼 진하고 풍부한 맛의 밀크티 시럽 때문에 연신 포크를 놀릴 수밖에 없다. 다시 방콕을 찾는다면 한 번 더 먹어보고 싶은 그런 맛. 정말 한국에 돌아와서도 케이크를 먹을 때면 종종 생각이 나곤 한다.



이렇게 미각에 새로운 맛을 경험시키고 이번엔 에까마이 방향으로 걸어 본다.

드럭스토어에 들어가 살만한 물건이 있는지 구경도 해보고, 유럽의 테라스 카페가 연상되는 한 무리의 카페를 지나고 나자 골목골목에 근사한 인테리어샵이 눈에 띈다. 에까마이 방면으로 가는 도로 양 옆에 심심찮게 보이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가게들도 은근한 볼거리다. 꽤 오랜 시간 우리가 쉬지 않고 걸은 데는 이유가 있다. 오늘은 정갈한 마사지샵에서 피로를 풀기로 했다.



수쿰윗 지역에만 3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오늘의 마사지 샵은 체크 리스트를 통해 정확히 마사지를 받고 싶은 부위나 강도 등을 선택할 수 있었다. 오일 마사지를 받을 경우 오일 종류도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리가 방문한 시간엔 이미 예약이 완료돼서 어깨와 다리 부위의 수기 마사지를 선택했다. 다시 방문한다면 꼭 예약을 해야지. 룸으로 들어가기 전 족욕 서비스로 간단히 발의 피로를 풀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본격적인 마사지를 받았다. 쾌적한 공간과 시설 덕분에 꽤 만족스러운 릴랙스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잠자리 예민하기로 유명한 내가 마사지 도중 잠들어버릴 정도였으니까.


인도 곁에 바로 보이는 유치원. 아이들의 그림과 공작놀이 작품들 역시 방콕의 색을 닮았다.



밖을 나서니 어느덧 연한 주황빛 노을이 건물 사이를 드리운다. 오늘 우리는 숙소 근처의 숨은 맛집인 ‘베스트 비프’에서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 입고 반얀트리 호텔의 루프탑 바에 가기로 했다. 다소 타이트한 일정이지만 이런 즐거운 빡빡함이라면 언제든 대환영이다.


수쿰윗 역 바로 근처에 위치한 ‘베스트 비프’는 태국식 무한리필 고깃집으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전석이 야외에 있으며 테이블마다 돌로 된 숯불 화로를 준비해 준다. 그리고 고기 주문은 태국어와 영어로 이루어진 메뉴판을 이용해 주문하면 되는데 육고기부터 해산물까지 종류가 꽤 다양했다. 한국의 고깃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처음엔 어머 귀엽구나를 외치며 고기를 올렸는데 배고픔이 문제인 건지, 화력에 문제가 있는 건지 도통 마음처럼 익지 않는 고기에 애가 탄다. 무튼, 덕분에 바짝 익혔다고 생각하고 먹은 새우가 얼굴에 미세한 두드러기를 유발했지만 이미 마음은 루프탑 바로 향해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 서둘러 고기 냄새를 씻어내고 한껏 멋을 부려본다. 고된 일정에 절어 있던 청춘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반짝반짝 빛이(착각이면 어떠랴) 난다. 그래 어쩌면 오늘 우리가 가는 이 루프탑 바야 말로 여행의 정점을 찍는 순간일지도 모르니까. 기분 좋은 밤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반얀트리 호텔은 벌써 이용객들로 북적였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높은 층인 59층을 누르자 귀가 먹먹할 정도로 순식간에 호텔의 최고층에 도착한다.


보기보다 까마득히 높았던 반얀트리 호텔의 루프탑.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버티고 그릴’은 이미 모든 테이블이 만석이었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문 바’였기 때문에 상관없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정말 그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게 정말 어마 무시한 높이를 자랑했으니까. 고소공포증은 없지만 난간을 잡고 서 있는대도 아찔함을 느낄 정도다. 연신 카메라를 꺼내 들지만 이 아득함마저 사진에 전달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잠시 잠깐의 포토타임을 즐긴 후 우리는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칵테일을 즐기기 위해 ‘문 바’로 자리를 옮긴다.


야외 테이블이지만 그릴 요리 냄새로 가득했던 버티고와 다르게 문 바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야경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문 바는 버티고 그릴의 바로 아래층에 위치해있다. 달콤한 향기가 감도는 칵테일 그리고 연신 웃음을 자아내는 두 동행을 마주 하고 있으니 가는 이 밤의 끝을 조금 더 연장하고 싶어 진다.

어느덧 여행 마지막 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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