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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임 Dec 20. 2017

퇴사 일기

n번째 퇴사 보름 경과.

퇴사라는 것에도 경험치가 있어 횟수에 따라 그 감도가 다르다.

먹고사는 것만큼이나 지긋지긋한 퇴사. 첫 퇴사는 앞에 붙은 그 ‘첫’이라는 단어에 옮아 붙은 설렘만큼이나 일을 그만두고 해보고 싶었던 소소한 즐거움에 대한 기대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한낮에 즐기는 여유로운 티타임, 서점에서 책 고르기, 여유로운 전시 관람 같은. 일을 그만두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평일오후에 대한 설렘 같은 것.


나의 경우 두 번째 직장에서의 일과 중 새로 생긴 힙하다는 카페를 가보고 신간 도서와 함께 이 달의 전시를 소개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평일 오후에 대한 모종의 로망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꽤 부지런히 시간을 쪼개 원고 마감에 무리가 없을 만큼은 시간을 부릴 줄 알았다. 취재와 미팅 사이의 공백을 내 시간으로 만들었을 때의 그 가뿐하고 상큼한 즐거움이란.


아무튼 그래서 내가 n번의 퇴사에서 느끼는 감도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다는 겨울의 아침잠을 얻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만큼. 그 외의 소소한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그간 먹고산다는 일생일대의 우선순위에 밀려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나의 공간을 깨끗이 쓸고 닦고 정돈함으로써 얻는 뿌듯함이 있겠다.

지금의 나로선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고 치우고 옷을 세탁하고 개키는 노동의 뿌듯함 만큼만, 딱 그 정도로만 즐겁다. 사람에 따라서 이 행위는 최대한 미루고 싶은 귀찮은 노동이다. 아마 대부분이 그렇겠지. 그러나 이 지극히 당연한 생활 노동은 나에게 꽤 괜찮은 안식이 되어주었다.


적어도 내가 들인 노동의 대가를 곧바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내가 공들여 쓸고 닦은 만큼 깨끗이 정돈된 나의 공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내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뿌듯함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나의 쓸모를 몸으로 경험할 수있는 시간. 지난 일 년간 빈 껍데기로 살았던 육신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 외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몸을 단장하고 방안을정돈하는 것처럼 생각을 정리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데엔 정리되지 못한 생각이 한몫을 했다. 생각. 그저 놔두면 뇌관을 타고 부유하다 몸집을 키워 나를 집어삼키는 불안이 되는 존재.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시작은 이렇듯 진부한 걱정으로. 살면서 이렇게 의욕이 없던 때가 있었던가. 일을 하면서도 진짜 하고싶은 일을 꿈꾸던 때가 있었는데. 작은 책방을 열고 나는 앉아서 글을 쓰고, 발밑엔 사랑하는 개가 누워 낮잠을 자는, 말 그대로 꿈같은 꿈이라도 꾸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 철모르는 꿈을 두고 밀린 월세와 공과금만을 떠올리는 한없이 염세적인 나를 그저 내버려 두고 있다. 다시 뭐가 하고 싶어질 때가 오겠지. 그때까지만 좀 놔두자.

하지만 늘 그랬듯 삶은 나를 그저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런나를 가만두지 못하는 부모와 고지서 앞에서 나는 다시 불안에 잠식되는 연약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금은 나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주는 연인의 위로에 힘입어 ‘내버려 두는’ 생활을 조금씩 연명할 뿐. 사실 이 글을 쓰면서야 어림잡아 보름이라는시간이 지난 것을 알았다. 꿈속을 걷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나의 사고는 뇌를 짓누르던 현실에서 도피하는 중이다. 그간 받아온 중압감과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주문을 걸고 있는 중이다. 못이기는 척 그 주문을 따르며 나는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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