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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임 Mar 11. 2016

어제의 구 시가지, 오늘의 첨단 방콕 2

이어서,


그렇게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센트럴 엠바시의 구석구석을(지하 아케이드까지 속속들이) 둘러본 후 우리는 본격적인 점심 식사를 위해 아쏙 역으로 향했다. 이쯤 보면 첨단은 그만 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규모로 보나 구성으로 보나 뛰어난 공간들임은 알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방콕의 로컬이 주는 분위기에 조금 더 심취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고로 여행은 현지 음식을 제대로 즐기면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이번이 첫 해외여행인 주제에 떠벌린다. 우리가 향한 점심식사 장소‘수다’는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소박한 식당이다. 


어제의 그 똑똑이가 한 사전조사에 따르면 이곳은 왕새우튀김으로 유명하다고. 새우 킬러인 나의 가슴은 그 한마디로 한껏 설렜다. 오픈형 구조를 띤 가게는 후끈한 열로 가득했다. 해가 가장 높게 뜬 시간의 개방형 가게는 튀김요리를 먹기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현지 요리 베스트 3안에 드는 메뉴를 만났다. 물론 내 기준에서. 똠양꿍과 팟타이가 유명한 줄은 다들 알고 있지만 이 음식은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름하야, ‘팟 팍붕 화이댕’. 모닝글로리 줄기를 볶은 것으로 생김도 재료도 간단하다. 사진으로도 전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이 초록색 줄기뿐인 야채볶음이 이렇게 나의 입맛을 사로잡을 줄이야.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음식 사진을 메뉴에서 발견해 호기심에 주문했다가 수지맞았다. 숨은 보석을 찾은 기분이랄까, 다시 태국을 찾는다면 꼭 먹고 싶은 음식이 이 팟 팍붕 화이댕이다. 이름이 너무 어려우니 그냥 모닝글로리 볶음 정도로 해 두자.


태국 음식이 유난히 콜라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시원하게 이 마법의 음료를 들이킨 후 우리는 발마사지를 위해 방콕 최고의 발마사지 샵이라는 ‘닥터핏’으로 향했다. 텅러 역 근처에 위치한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섬세한 마사지로 유명하다. 그 명성에 부푼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정말 이 작은 발을 이렇게 구석구석 다양한 손길로 마사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마사지를 받을 의자에 앉으면 한국인 여행객을 위한 발 모양의 한글 안내판을 주는데 각 부위별로 신체 어느 기관이 연결되어 있는지 적혀있다.) 내 담당 마사지사의 손길은 새털과도 같았다. 마사지는 무조건 센 강도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내 기준의 마사지는 응당 고통을 견딘 후 찾아오는 개운함과 도 같아서 성에 차지 않았다. 다음번 마사지에는 세기를 부탁해야지.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는 이미 만석이라 야외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해가 졌다. 그 말인즉슨 우리는 저녁을 먹을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오늘은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로컬 맛집 ‘쏜통’에서 거한 저녁을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대망의 똠양꿍을 맛보기로 합의 봤다. 이태원에 위치한 태국인이 운영하는 태국 음식점에서 처음 똠양꿍을 맛 본 후 한동안 똠양꿍에 흠뻑 취해 있던 나는 늘 현지의 맛이 궁금했다. 그렇게 고대했던 메뉴인만큼 똠양꿍을 최고로 잘 한다는 로컬 음식점에서 영예의 순간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 날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똠양꿍과 태국식 양념게장, 볶음밥과 모닝글로리 볶음을 주문한다. 세 사람이지만 주문은 늘 4인분으로. 대식가들이라서 라기보다 사실 태국 음식은 양이 적은 편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운명의 똠양꿍이 우리 테이블을 향해 오고 있다. 비실비실한 새우 몇 마리만 동동 떠다니는 비싼 한국의 똠양꿍이 아닌 실하고 굵직한 새우가 국자를 휘저을 때마다 덜컥 딸려 나오는 시원시원한 한 대접이 등장했다. 한국의 신선로를 연상케 하는 화로 일체형의 조리기구가 심장에 불을 붙이는 것만 같았다. 얼큰하고 새콤하며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인 똠양꿍을 연신 땀을 흘려가며 들이킨다. 이것이 진정한 이열치열 아니겠는가. 식사에 열중한 세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 이젠 정말 배가 터질 것만 같다. 도저히 음식을 우겨넣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못 먹을 것 같다는 말은 왜 했을까. 거짓말처럼 숙소로 돌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태국의 대형마트 빅C로 향했다. 여행루트를 짜기 위해선 간식이 필요하다며. 암, 머리 쓰는 일처럼 당분을 요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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